독립된 여행의 첫 시작?(2006)
올 추석이 유난히 길다는 걸 1월부터 알아버렸다. 조사하는 탐정 같은 재주가 없기에 나에게 있어 여행이란 단어는 한해의 계획을 세울 때 어디를 갈까 고민할 때와 여행지에 도착해 방황할 때에 비로소 느껴지는 단어인 듯하다. 올해 추석에는 움직일 수 있는 친구가 없었다. 그래서 네이버에 가장 유명한 유럽여행 사이트를 통해 동행을 구하기로 했다. 낯선이와 떠난다는 건 굉장한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줄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좋은 여행 단짝을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기에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행은 혼자 떠나는 것과 둘이 함께 할 때, 아님 셋, 그보다 더 많은 숫자가 주는 느낌이 다 각각 다르다고 생각한다.
혼자가 좋은 이유는 언제든 여행 계획지를 이탈해도 된다는 거다. 가다 힘들면 쉬면 되고, 쇼핑 안 좋아하면 그냥 건너뛰면 되고, 밥 먹고 싶으면 맘에 드는 식당을 발견했을 때 먹어도 되고, 현지인과의 좀 더 밀착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대신 좋은 풍경을 봤을 때 같이 감탄사 내질러줄 사람이 없어서 외롭고, 사진 찍어야 할 때 포커스가 다른 이의 손에 카메라를 맡겨서 온전한 모습이 나오지 않은 사진을 각오해야 하고, 소매치기한테 당할 위험률이 높아지고,
둘은 외롭지 않고 같이 감탄사 발사할 준비 가득한 대신, 한 명이 쉬고 싶으면 보고 싶더라도 참아줘야 하고, 수다에 몰입하다 보면 좋은 풍경들 어느새 휙휙 지나쳐 갈 수 있고,
셋은 감탄사가 배로 늘어나고 준비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분배가 많아져 노력이 조금 들고, 비용이 절감되는 부분이 많은 대신, 마실 나온 건지, 여행을 온 건지 구별이 잘 안되고, 외국인과의 대화도 점점 멀어지고 ㅎ,
셋 이상이 되었을 땐, 안전하고, 유쾌한 일이 많이 발생하지만, 배낭여행인지, 패키지여행인지 고개가 계속 갸우뚱 되면서 의견 일치가 쉽게 안될 수도 있다는?
어떤 여행이든 나의 유난스러움을 참아줄 수 있는 친구라면 모두 동행이 될 수 있는 거 같다. 오스트리아와 체코를 가겠다는 동행이 나와의 스케줄이 안 맞아서 포기할 무렵,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처음 떠나는데 동행해보고 싶다고. 학교 선생님이란다. 왠지 꼼꼼할 것 같아, 무조건 오케이를 외치고, 준비 작업에 들어갔는데 흐음~ 교감선생님이 샌드위치데이를 쉬지 못하게 하셨단다. 대신 여름휴가로 그녀가 먼저 오스트리아와 체코로 출발한다. 나와 같이 세웠던 대략의 스케줄에 그녀만의 살을 붙여서. 역시나 그녀는 꼼꼼헀다. 다녀온 그녀의 여행지를 내가 다시 가도 될 만큼. 날짜는 다가오는데 동지가 구해지지 않는다. 혼자 유럽을 떠돌아볼까??
내 가방은 어디로?
결국 떠난다. 혼자다. 지난번에 물로 인한 극심한 알러지 예방을 위해 촌스럽게 물 3리터를 가방에 담았다. 혼자 떠나는 건데 준비 잘 했을까? 가고 싶은 여행지에 먼저 다녀온 학교 선생님인 미성씨의 루트를 접목했다. 철저한 준비를 잘 못하는 나로서는 최상의 시나리오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곳곳에 허점이 숨겨져 있었다. 그 도사리고 있는 모험도 모른 채 출발했다. 지난번 여행 때는 독일항공을 이용했는데 독일 항공이 요금을 많이 인상시켰다. 그래서 이번엔 네덜란드항공으로 바꿨다. 여행지를 선택함에 있어 in-out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in-out를 동일하게 하는데 다르게 지정하는 게 더 효율적인 여행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난 오스트리아 빈을 in으로 하고, 체코의 프라하를 out으로 정했다. 경유시간은 지난번 경험도 있고 하니 2시간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예약한다. 인아웃이 동일한 예약밖에는 안 되는 상황이라 일단 예약하고 여행사에 전화해서 아웃을 바꿨다.
9월의 유럽은 또 추웠다. 그러나 생각 못하고 옷을 또 얇게 챙겨 왔다. 항상 허술한 옷 준비부터가 여행의 시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암스테르담에서 빈 넘어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로 코트가 얼뜻 얼뜻 보인다. 암스테르담에서 빈으로 넘어가는 비행기에 탔을 때 옆좌석 여자아이가 내 짐 올리는 것을 도와준다. 이름이 다그마라고한다. 체격으로 봐선 내가 더 건장한데 다그마가 베푸는 친절에 감동하며, 빈으로 들어가는 비행기 속에서 담소를 나눈다. 그녀는 공부하러 북유럽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라며 본인의 집 방향이 빈에서 나의 숙소 가는 방향과 비슷하니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혼자 떠나오니 이런 운도 오나보다. ㅎ 1시간여 비행 끝에 빈으로 들어오고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다그마의 짐과 나의 짐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녀의 커다란 여행가방 2개가 나오도록 내 가방은 나오지 않았다. 그냥 무작정 기다리는 나에게 그녀가 아무래도 분실 신고를 해야 할 거 같다고 말해준다. 분실신고? 분명히 가방 집어넣었는데 그새 도둑이라도 비행기에 침입이라도 했다는 말인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30여분 기다리다 하는 수 없이 lost & found라 써져 있는 곳을 그녀와 함께 갔다. 쌀쌀맞게 생긴 데스크 여직원은 빠른 영어로 말하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다. 다그마가 독일어로 의사소통을 한 뒤 내게 영어로 다시 통역을 해준다. 어떻게 생긴 가방이며 색깔을 말하라고 한다. 아차차!! 싶다. 내 가방이 아니고 JOEL거라서 색깔이 기억나지 않는다. 블랙 아님 네이비인데 뭘 선택하지? 많은 여행 가방이 그려진 모니터를 보며 고민이 되었다. 칼라를 잘 못 말하면 안 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밀려왔다. 눈 질끈 감고 네이비를 선택했더니 그 직원 왈 암스테르담에 있단다. 응? 암스테르담? 왜?? 이랬더니 거기가 나의 마지막 도착지라고 생각한 이들이 짐을 내려버렸다고. 형식적인 목소리로 SORRY라는 말과 함께 나의 주소를 기입하라고 한다. ㅠㅠ 하는 수 없이 숙소 주소를 남겨두고 나와야 했다. 다그마가 아니었다면 난 무작정 컨베이어 벨트만 응시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녀가 괜찮을 거라고 숙소를 가자고 해서 버스를 타러 나온다. 홀가분(?)하게 짐도 없이 차에 오르고 빈 숙소 근처에 내려 그녀가 잡아주는 방향 쪽으로 걸어간다. 혹시 모르니 무슨 일 생기면 전화하라고 연락처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나 난 유럽에서 전화하는 방법을 모른다. ㅎ(설마 유럽에서 유럽 사람에게 전화하는 일이 생길 거라고는 1%도 생각해보지 못한 거다. 너무 짧게 생각을 했나 보다)
짐 찾는다고 지체를 했더니 12시 체크인 제한 시간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잊고 있었다. 짐도 없이 걷다 보니 너무 빨리 걸었던 걸까. 숙소로 들어가는 갈래길을 지나가버린 거다.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어보니 흑인 한 명을 잡아주면서 이 사람이 알려줄 수 있을 거라고 말하시고는 가버리신다. 흑인과의 동행. 기분이 묘하다. 깜깜한 밤이라 하얀 치아와 눈 밖에는 보이지 않아 살짝 무섭긴 하다. 갈래길에 들어선 순간 더 데려다 줄까 아님 여기서부터는 혼자 갈래? 하고 물어보는 그 사람. 나름대로 호의를 베푼 건데 그냥 혼자 찾아가 본다고 말한다. wombat이라는 유명한 호스텔인데 설마 못 찾을라고 이런 각오를 다시 해보며. 밤 12시를 향해가니 저으기 무섭다. 다행히 5분 정도를 남겨두고 숙소로 골인! 휴~ 한숨과 함께 체크인을 하고, 내일 아침에 짐이 올 테니 그거 좀 맡겨달라는 부탁까지 한다. 그러는 사이 관리인으로 보이는 듯한 아저씨가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가는 나에게 나의 열쇠를 낚아채며 본다. 엇. 4층이네 이러면서 엘리베이터 타고 가라고.. 그때까지는 그런가 했다. 뒤에 닥쳐온 나의 여행 습관을 바꿀 사건이 일어날 거는 생각도 못하고..
European Superman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어라~ 그 관리인 아저씨로 보였던 사람이 서 있다. 어떻게 왔을까를 고민하는 사이 느닷없이 슈퍼맨 쇼를 한다. 서울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으윽 아찔한 광경.. 열쇠를 집어넣어도 방문이 열려지 않으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무작정 목놓아 울기부터 한다. 그러면서 저리 가라고 소리 지르는 수밖에는 없었다. 한국말 알아들을 리 만무한데 말이다. 다행히 한참의 실랑이 끝에 방안에서 열어주는 룸메이트 덕분에 들어갔다. 모두들 1층에 있는 클럽이라도 갔는지, 그 아이만 다시 침대로 자러 가고. 진정이 안 되는 마음을 무서운 2층 침대에 걸터앉아 마음을 추스른다. 쉽게 가라앉혀지지 않는 몸과 마음.
좀 씻으면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세면도구를 챙겨보고 싶지만 내게 있는 건, 언니가 부탁한 수분크림과 사은품으로 받은 폼크린싱 비매품. 간단히 비매품 폼크린싱으로 샤워하고, 수분크림으로 마무리한다. 자야 하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그 슈퍼맨 아저씨 때문에 놀란 맘이 경기하느라 숙면이 취해지지 않으면서 1시를 넘어간 그 시간의 그 밤이 너무도 길게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며 밤을 새운다. 내일 오전에 온다는 짐을 찾아 다시 비행기 타고 집으로 가야 하는 건 아닐는지. 몸이 아파져 오는 듯해서 속상하다.
그래도
햇살이 창가로 들어올 무렵 혼자 우두커니 2층 침대에 걸터앉아 고민해보았지만 이렇게 돌아가면 다시는 여행을 올 수 없을 거 같단 기분이 더 많이 들었다. 놀라신 부모님이 다시 보내주실리 만무할 것 같고, 짐이 오기까지는 기다려야 하니 일단 오늘 일정은 돌아보자고..
기운내기 위해 간단히 아침을 먹고 전철역을 향해서 간다. 다시 돌아오는 길 까먹을지 모르니 간간히 사진도 찍어둔다. 여행하고자 하는 맘이 놀란 맘을 아직 다스리지 못해서 지하철역 바라보면서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사이 한 여자아이가 와서 도와줄까 하며 말을 건넨다. 그러는 그녀에게 미술사 박물관과 벨베데레 궁전을 가고 싶다고 말하니, 본인은 비행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다른 궁전을 가야 한다면서 미술사 박물관 가는 방향을 알려주겠다면서 따라오라고 한다. 어느새 열심히 끄덕이며 터벅터벅 그녀를 따라가고 있다. 지하철 표 사는 방법부터 펀칭하고 들어가는 방법, 그리고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갈아타야 한다며 갈아타는 방법까지! 특히나 지하철 펀칭을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까지 해준다. 펀칭 안 하고 들어가면 벌금 물어야 하는데 펀칭하는 기계 찾기가 쉽지 않아 못 찾고 본인이 들어간지도 모른 채 지하철 역으로 들어가게 되어 검표원에게 잡히면 벌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란다. 모르는 사실은 아니지만 이렇게 친절을 베풀어주는 사람을 만나니 어느덧 다시 기분이 상승하며. 이 핀란드 아이 덕분에 다시 여행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무작정 핀란드가 더 좋아지기도 하고, 어젯밤의 무서웠던 기분도 잠시 잊어버렸는지 박물관 구경이 끝나갈 즈음에는 다음 여행지로 생각해두었던 벨베데레 궁전을 가기 위한 고민을 하며 지도를 들여다본다. 트램을 타야 하는데 수월치 않음이다.. 유럽에서 트램을 타본 적이 없는 데다가 아직 방향 감각 안테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듯하다. 일단 박물관 주변을 한 바퀴째 배회하면서 벨베데레로 가는 D트램을 찾는다. 방향이 문젠데, 만약 반대면 어쩌지? 그러다 정류장인듯한 곳에 서 있는 아저씨의 가방끈을 살짜기 잡아당겼다. "실례합니다," 하는 순간 돌아다보는 그.
아저씨라기보담 청년인듯하다. 벨베데레 궁전을 가고 싶은데 여기서 트램을 타도 괜찮겠냐는 나의 질문에 끄덕여준다.(방향 질문을 할 때는 잠깐 동안의 질문과 대답 뒤에 헤어져야 덜 어색한 거 같다) 다가오는 트램에 올라타서는 나 보고도 타라고 한다. 같이 가야 하는 상황인가 보다. 어색하고 묘한 침묵이 흘러간다. 친근한 척해보고 싶지만 막상 조각같이 생긴 청년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아까까지 잊어버리고 있던 나의 꼬질함이 기억났다. 조용히 있는 내게 그는 그가 가지고 있는 전철 노선도와 지도를 준다. 그도 어색했는지 어디서 왔냐는 질문과 함께 말이다. 밤에 들어온지라 아무것도 없는 내게 아주 요긴할 것 같아 고맙다고 말하며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하고는 가방에 챙겨 넣었다. 자기 내리고 세 정거장 더 가서 내리면 된다는 대화 뒤에 또다시 침묵. 차라리 아저씨였음 덜 어색했을까. 꽃미남 청년이라 오스트리에 대해 물어보기가 더더욱 어색해질 무렵. 그가 내리자고 한다. 상황 파악할 수 없어 말똥거리는 나. 계속 내리자 해서 이상하다 하며 내리는데 내려서 앞서 걸어준다. 뭘까 뭘까? 하는 고민하는 사이 갈래길에 서서 궁전 방향을 가리키며 그 방향으로 가면 된다고, 말을 건네준 뒤 그는 트램이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간다. 그는 내가 너무도 어리버리해 보여서 세 정거장을 더 와서 내려 걸어가나 보다. 계속 이어지는 감동은 여행을 계속하라는 속삭임처럼 들린다.
벨베데레 궁전을 둘러보다 보니 건너뛰었던 점심 탓에 배가 고파온다. 여행지의 음식을 먹으면 좋겠지만 책도 없고 해서 제일 가까워 보이는 맥도널드에 들어가 간단히 식사를 한다.
점심을 먹은 후 쿤스트하우스를 보러 출발한다. 또다시 도전하게 되는 트램. 내가 타고난 다음 역쯤이었을까 중국인 아주머니로 보이는 분이 이불 한 보따리를 가지고 타신다. 같은 동포로 착각하신 아주머니는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로 내게 뭐라 뭐라 하시는데, 난 정말 이기적으로 sorry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랬더니 영어로 어디서 왔냐고 간단하게 물어보신다. 같은 아시아 민족이라 그랬을까. 그때부터 시작되는 바디 랭귀지. 어디를 가냐는 질문 뒤에 쿤스트하우스 간다 하니, 아주머니 내리시고, 3번째 정거장에서 내리면 된다는 설명을 몸으로 부여하신다. 첫 번째 모션, 손가락으로 3을 나타내기. 두 번째 모션, 3개 봉우리가 있는 식빵 모양처럼 3개의 곡선⌒⌒⌒으로 내가 내려야 할 곳을 말씀해 주신다. 계속 알아들었다 해도 언어가 서로 소통이 안되고 있음인지, 이번엔 손바닥에 곡선⌒⌒⌒을 그려주시기도. 꽤 많이 걱정되시는지 내리면서도 잘 가라는 듯한 모션을 보여주신다. 이럴 땐 정말 혼자 여행해도 외롭지 않고 포근해짐이 밀려온다. 여행이란 이런 거라면서 어느덧 어제의 슈퍼맨은 잊어버리고 여행에 몰입해 있는 나를 발견한다. 시간이 늦었는지 쿤스트 하우스에 내리니 관람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그냥 외관만 관람을 했다.
어느덧 뉘엿뉘엿 해는 저물어오고, 야경 보러 시내로 들어온다 사진을 찍고 싶지만 삼각대가 없어 셀카도 어렵고, 하는 수 없이 지나가는 아저씨를 또 잡았다. 점점 늘어만 가는 뻔뻔함. 그래도 이런 대담함이 좋아진다. ㅋㅋㅋ "사진 좀 찍어주세요~" 하면서 씨익 웃으니 카메라를 달라고 하신다. 하루 종일 겪은 노하우!! 절대 한번 찍어서는 흔들린 사진밖에는 얻을 수 없다는 결론에 한번 더 찍어달라고 부탁해서 두 번 찍히고 다시 건네받은 카메라.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서울서 왔다고 하니 그분은 터키서 왔다 하셨다. 그렇지만 난 터어키~~를 못 알아들어버리고 말았다. 뭐라고요?를 연신 하면서 이내 못 알아들어 그런 나라를 모르겠다했더니 가버리셨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가야 하는 방향으로 못 가고 멈칫멈칫하고 있는 나. 그러다가. 아~ 터~키하며 인지가 뒤늦게 따라온다. 항상 소리보다 지각속도는 느리다. ㅠ.ㅠ 냉큼 달려가 저 터키 알아요 했더니 좋아하던 아저씨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저씨는 회의차 왔는데 자기에게 시간이 좀 있으니 어디 가는지 데려다주시겠단다. '오늘 하루는 진짜 수월타!' 하는 생각에 슬며시 나오는 웃음. 무모할 수 있지만 사람을 믿어야 내 맘도 편하다는 생각이 스쳐가고 여러 가지 구경을 끝내고, 아저씨가 안내해 준 슈니첼 가게에 들어가 저녁을 맛있게 먹는다. 아마 아저씨를 안 만났음 이번 여행에 여행지 음식은 한 번도 못 먹을 뻔했다.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주셨다. 어느덧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오늘만큼은 슈퍼맨 아저씨를 보고 싶지 않아 부지런히 숙소를 간다. 신기하게도 길치인데 헤매지 않고 한 번에 도착, 나를 반기고 있는 게 있다. 나의 커다란 배낭. ㅎㅎㅎ 반가운 마음에 와락 껴안으며 울 거 같은 나의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들. 방으로 들어가 꼬질함과 무서운 기억들을 잊기 위해 씻기에 몰입하고 내일의 일정을 위해 잠을 청해 본다. 역시나 타지에서 잠자는 건 쉽지 않은 거 같다.
다음날 일정은 들여다보니 쇤부르 궁전과 짤즈로 넘어가야 하는 빡빡한 코스다. 왜 이렇게 짰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든다. 여행이 가져다주는 욕심을 가득 넣은 스케줄.
베르사유 궁전 못 갔던 한을 오스트리아에서 풀기라도 할 것처럼 계속 궁전 기행이다. 쇤부르는 벨베데레와는 다르다. 쇤부르 곳곳의 꽃도 아름답고 여유롭게 누워있는 벤치의 사람도 부럽고. ㅎ
짤즈로 들어와 버스 정류장을 두리번 거릴때였다. 호주에서 오신 부부에게 표 사는 곳을 물어보니 타박(TABAK)에서 사야 한다고 하신다. 타박을 못 알아들어 눈을 껌뻑이는 내게 아저씨가 손가락으로 타~~박을 가르쳐 주신다.. 분명 책에서 표는 타박에서 판다고 읽었는데 제대로 안 읽었음이다. 담배가게로. 후다닥(나의 어마어마한 힘은 이럴 때 발휘되는거 같다) 그 무거운 배낭을 메고 다녀오니 아주머니 아저씨가 기다려주고 계셨다. 가는 방향이 비슷하다며 같은 버스를 타도 된다는 그분들. 어디서 왔냐고 물어봐주시는 아주머니는 서울서 왔다는 나의 얘기에 자기 이름에도 KIM이 들어가지만 자긴 한국인은 아니라고 웃으셨다. 아저씨의 배려로 난 그날의 숙소를 수월하게 찾아들어간다.
짤즈 유스호스텔에 들어가 간단히 짐을 풀고 호엔잘쯔부르크 성을 둘러보러 나왔다. 기막힌 야경이 나의 어설픈 카메라찍기 놀이에 절경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무슨 심정이었는지 어두컴컴 해져 올 때까지 내려가고 싶지 않다. 긴장이 풀려오는 걸까. 결국 또 숙소로 내려오는 길을 잠시 잃어버린다.
이른 아침 눈이 떠져 번외로 넣어두었던 헬브룬 궁전을 잠시 다녀온다. 8시 반이라 아직 관광객이 들어오지 않은 이곳은 한적함을 내게 안겨준다. 어느덧 짤즈의 마지막 코스다. 미라벨정원. 신기하게도 처음엔 익숙해지느라 시간이 걸리지만 이내 떠나고 싶지 않은 감정에 항상 계획한 시간을 넘어 뭉그적 거려 지게 되었다. 미라벨 정원을 찾아 트램에서 내리긴 내렸는데 아무리 봐도 건너편은 정원처럼 안보였다. 너무 기웃거렸던 걸까, 곁에 서 계신던 아주머니는 어디 찾느냐고 하신다. 미라벨 정원이요~라 얘기하니 내가 기웃거리던 그곳을 가리키시네. 건너가고자 하지만 횡단보도가 없다. 그 옆에서 같이 대화를 나누시던 할머니가 무단횡단을 내게 권하신다. 손가락으로 할머니도 ⌒⌒⌒←요 표시 중 우린 바디 랭귀지 대화 중? 그런 할머니만 믿고 난 후다닥 100미터 질주 중…
Oriental
짤즈는 기대했던 것보다 아름다웠기에 짤즈에 대한 미련으로 미라벨정원을 방황하며 삼각대를 조절하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한국인이죠 이러면서 걸어오는 사람이 있다. 너무 내가 한국인 티를 내고 있었나 싶다. (한 손에는 인포에 물어봐서 한가득 산 초밥 봉지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고, 다른 손에는 조작하다 만 카메라와 삼각대 그날도 역시나 꼬질꼬질한 복장에 휙 둘러맨 가방) 며칠 만에 들어보는 한국어가 반갑기도 하고해서 바라보니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한다. 반기는 표정을 지어야 했는데 내 표정은 난감한 표정이었을 거다. 여행에 지쳐 고장 난 삼각대를 간신히 고정시키고 있는데 다시 풀라는 거니까 망설여질 수밖에. 그래도 달려와서 찍어주겠다는 그의 성의를 무시할 수도 없고 내내 나를 냉담하게만 바라보던 다른 한국인들과는 달리 따뜻한 그의 한마디가 너무 고마워 다시 느그적느그적 나사를 풀고 있다. 찰칵.. 한 장과 함께 여러 오가는 이야기들 그리고 그는 떠나고 혼자 남은 난 다시 조작해야 하는 삼각대를 두고 할슈타트 들어가는 버스를 놓쳐버렸다.
아니! 대체 무얼 믿고 숙소도 예약을 안 하고 할슈타트를 훌쩍 들와버린 걸까?? 인포는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시간이 넘어 문이 닫혀있었다.
짤즈의 같은 도미토리 외국인 친구가 건네준 유스호스텔 이름이 있었지만 할슈타트에서만큼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펜션에서 자고 싶었다. 그러나 가정집과 펜션을 구별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강가 쪽 방은 턱없이 비쌌다. 물론 하룻밤이니 그냥 바가지를 감안해서 잘 수 있지만 그래도 어차피 나의 꼬질함은 계속될 거라서 험난함을 다시 택했다. 도미토리 친구가 알려준 그 유스호스텔을 찾기로 한 거다.
어쩌지? 찾긴 찾았는데 주인이 없다는 메모가 문 앞에 떡하니 붙어있다. 왜 하루하루가 심심한 날이 없는 건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을 두드렸더니 내려오는 발걸음. 어어~ 소리가 난다. 삐걱~. 동양인이다. 주인이신가요?라고 물었더니 일본 학생이며, 투숙객이라 그러고 주인은 집에 갔다는데 힘이 쭉 빠진다. 자기 혼자밖에 없으니 일단 자고 낼 체크인을 하라는 그. 자기도 혼자 있기 무섭다는데 실상 난 차라리 혼자가 덜 무서울 거 같단 생각이 든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험난함을 떠올려보면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전화를 하겠다고 난 고집을 부렸고, 결국 우리 둘은 공중전화를 찾아 나선다. (안타깝게도 내 전화기는 그 당시 자동 로밍이 안 되는 전화였다) 그 깜깜한 밤. 다행히 아주머니가 체크인 해주러 오셨고 노숙할뻔한 나의 여행기는 독방을 쓰는 호화로움으로 바뀌었다. 생각지도 못한 라면도 끓여먹으면서 말이다. 올 사람도 없는데 문을 열어준 그 청년 덕분이다. 가지 말라는 청년을 남겨두고 다음날 체스키를 가기위해 새벽부터 가방을 꾸린다.
밖에는 또다시 안개비가 내린다. 어젯밤 전화기 찾아 헤매느라 할슈타트는 구경도 못했는데, 아무래도 다시 오라는 할슈타트의 메시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