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따로 (2010)
2년 만에 유럽을 향한 꿈을 다시 꿨다.
나이는 서른을 훌쩍 뛰어넘었고, 체력은 바닥이고, 그래도 쉬고 싶다는 욕구와 떠나고 싶다는 충동이 섞여서 나를 설레게 한다.
북유럽을 가겠다고 작정한 것은 독일에서 만난 동행을 통해서이다. 작년부터 북유럽을 노래를 불렀는데 정작 은경은 사정이 생겨서 못 가고 난 비행기표를 덜컥 사버렸다. 나와 함께 떠나겠다는 친구들과 3월부터 티켓을 잡겠다고 난리였다. 어딜 가겠다는 세부 사항도 계획하지 않은 채, 무작정 헬싱키 보담 오슬로가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오슬로 IN 헬싱키 OUT을 결재한다.
3월부터 9월까지는 6개월이란 긴긴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준비를 할 수 없었다. 인사이동으로 인해서 받는 변화는 내게 컸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 셋이라는 안정감이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거라는 안심을 던져준 거 같다.
북유럽 국가들은 다녀온 사람이라면 혀를 내두를 정도의 살인적인 물가이기에 잘 계산하고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충이란 단어로 일정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항공. 이 비행기는 나와 유난히도 사연이 많다. 아무래도 내가 가장 많이 이용해서 그렇겠지. 그나마 일찍 도착하는 오슬로부터의 일정을 따져보니, 오슬로에서 피오르드를 보기 위해 베르겐으로의 이동이 가장 효율적으로 보였고, 그 후 스웨덴의 스톡홀름 그리고 헬싱키 아웃을 하기 위해 핀란드로 GoGo!
한 교통수단만을 이용하다 보면 넓디넓은 북유럽이 자칫 지루해질 수 있기에 여러 가지 수단을 다 이용해 보기로 했다. 가상의 이동경로 생각해 보기다. 실천 가능할지 안 할지는 그다지 고민하지 않는 편이 아마도 나의 여행 스타일일 거다. 여유롭게 오슬로를 2박 3일 구경하고 8시 피오르드 넛셀 프로그램을 따라 베르겐까지 가기로 했다.
피오르드 구간구간을 내리는 코스가 있는데 일단 제일 길다는(그래서 더 힘들었을까?) 송네 피오르드를 고르니 기차-산악열차-배-버스-기차 이런 교통수단이 나온다. 저녁에 도착한 베르겐에서 잠시 쉬었다가 하루 종일 구경 뒤에 늦은 밤 비행기로 스톡홀름으로 들어가기. 아쉽지만 오후까지의 짧은 스톡홀름 산책을 마치고 바이킹 라인인 크루즈를 타고 헬싱키로 이동하기. 얼추 윤곽선이 잡히고 나니 다른 큰일들인 숙소만 알아보면 될 거 같았다. 나라 밖으로만 나가면 지독한 애국자라도 되는 양 꼭 밥을 먹어야 하는 나. 그래서 최대 가지고 갈 수 있는 햇반 두 개를 빨리 처리하기 위해 오슬로 이틀은 유스호스텔로 선택하고 나머지는 호텔과 크루즈 그리고 호스텔을 섞어서 예약했다. 대충 완료가 되고 나니 어느새 책 보기는 뒷전이 되어버린다.
늦은 여름을 맞이하고 나니 환율이 올라가는 걸 잡지 못해 비싸디 비싼 돈으로 환전을 할 때쯤에야 여행을 가는구나 하는 느낌이 온다. 아무 일 없겠지 라는 안도감은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 e-ticket를 내밀 때부터 사라지기 시작되었다.
한 친구와 나의 발권을 마치고 난 데스크 여직원,
"이분은 다른 일행분과 달리 헬싱키를 가는 건가요?"
"아닐 텐데요"
"e-ticket을 좀 보여주시겠어요?"
잠시 후, 나는 악! 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녀의 e-ticket에는 분명히 helsinki 이렇게 적혀있는 거다. 어찌된 걸까 싶은 마음에 머릿속은 과거로 과거로 돌아간다. 채팅 중 헬싱키 이야기가 나왔고 내가 오슬로 비행기를 잡으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헬싱키가 너무도 크게 각인이 되었나 보다. 그녀는 처음 우리의 루트였던 대로 표를 구입한 것이다. 어쩔 수 없다는 직원을 뒤로한 채, 어찌해야 하는지를 정말 마하의 속도쯤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느닷없는 공포에 그녀는 "가지 말까 봐" 이러기 시작하고, 같이 출발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그냥 집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것인지 감이 안 왔다. 벌써 들어간 비용은 2백만 원 정도인데 여기서 멈춘다면.
일단
일단 네덜란드에서 오슬로 들어가는 비행기가 남아 있는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있긴 한데 결재가 안 된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주말 당일 결재는 안 된다고 ㅠ.ㅠ 다른 저가를 알아보고 있지만 쉽지가 않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난 그녀를 반강제로 비행기에 태워버렸다. 네덜란드 도착하기까지의 그녀의 걱정과 나의 걱정과 생각만으로 비행기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11시간 정도의 비행시간은 지나가버렸다. 일단은 암스테르담에 내려 돈을 추가 지불하고서라도 비행기 티켓을 바꾸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네덜란드에 도착하니 우리가 산 티켓이 너무 저렴한 거라서 그들 공항 내에서는 어떻게 해도 변경이 안 된다고, 차라리 여행사에 물어보라고 한다. 서울은 주말이라 연락도 안 되는데 말이다. 그럼 암스테르담→헬싱키 표를 버리고 암스테르담→오슬로 가는 티켓을 새로 사서 가는 건 할 수 있냐고 했더니, 그렇게 된다면 서울로 돌아가는 여정이 모두 지워진단다.
나의 표 (서울→암스테르담, 암스테르담→오슬로) & (헬싱키→암스테르담, 암스테르담→오슬로)
그녀의 표(서울→-암스테르담, 암스테르담→헬싱키 )& (오슬로-암스테르담, 암스테르담-서울)
오슬로-암스테르담이야 버린다 쳐도 암스테르담-서울이 버려지면 다시 2,3백은 버리고 왕복을 사야 하는데. 최선의 방법이 무어냐고 했더니 일단은 헬싱키를 건너가라고 한다. 거기 가서 다시 오슬로로 들어오는 비행기 티켓을 사서 오는 수밖에 없다고. 암스테르담 인터넷으로 결재를 다시 시도해보아도 결재는 계속 안되고, 최선을 다해도 그 수밖에 없다면 도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간략한 메모와 함께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 그녀에게 알려줬다. 공항 밖으로 나가서 숙소를 잡을 수 있음 자고 난 뒤 다시 공항으로 들어와서 티켓을 사라고. 핀에어와 블루 1중에 더 저렴한 티켓을 구입해서 오라는 얘기와 함께. 나머지 친구와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D82를 향해 뛰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 5분이다. 암스테르담 공항은 인천공항보다 더 크다는 생각이 항상 드는 곳이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 오슬로에 셋이 아닌 둘은 도착했다. 공항 밖은 생각보다 훨씬 춥다. 초겨울 날씨쯤? 한 친구를 다른 곳으로 보내 마음에 추운 바람이 더 시리게 느껴진다. 다행인 건 여러 차례 3D 화면으로 지도를 보고 온 친구 덕분에 언덕 위에 위치한 유스호스텔을 한 번에 찾아갔다.
2시간 정도 지나서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잘 도착했다는 문자. 잠을 잔 건지 고민으로 밤을 새운 건지 모른 채 누워 새벽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녀한테서 전화가 왔다. 티켓이 핀에어가 시간이 더 빨라서 그것을 사서 들어오겠다고 하면서 돌아가는 비행기는 시간표가 안 맞아서 살 수 없을 거 같다는 말과 함께. 생각해보니 그녀는 오슬로 시내까지 들어오는 방법도 모르고 있었다. 부랴부랴 들어오는 방법의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잠시 더 누워있었다. 안도의 한숨.
시간은 기다려줌 없이 아침을 보내왔고, 우리는 그날 하기로 했던 일정들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뭉크 미술관과 국립미술관 중 그녀가 더 어느 곳을 보고 싶어 할지 몰라 물어봐야 했지만, 비행 중일 거기에 뭉크가 더 보고 싶을 거란 생각으로 우린 국립 미술관을 먼저 가기로 했다. 숙소 앞에 있는 트램 정류장에 가서 새로운 유럽의 맛을 보기 위해 트램을 기다린다. 큰 체구의 탄자니아에서 왔다는 아주머니는 내게 어디서 왔냐고 여행자인 나의 안부를 묻는다. 또한 그녀는 거침없이 그녀의 인생사를 얘기했다. 탄자니아에서 결혼하기 위해 여기로 왔고, 이혼했다고, 물가가 비싸서 살기가 힘들다고. 아무래도 그녀가 가지고 왔던 티켓은 왕복이 아니었나 보다. 하긴 결혼을 해서 온다면 왕복 티켓을 사지는 않았을 테고. 종교, 비행기 티켓의 가격, 왜 아프리카는 안 가고 여기 왔냐는 등의 질문들을 내게 했다. 땃땃하게 내려 쪼이는 트램 정거장 아래서. 그러다 보니 어느덧 트램이 들어왔고 운전사에게 돈을 지불하고 앉았는데 트램 안에서는 1 Day-pass를 파는 게 아니라서 1회권을 사야만 했다. 1회권은 우리나라 돈으로 8,000원 정도니까 꽤 비싼 편인 거다. 마을버스 격인 트램을 타면서도 8,000원을 지불한다는 건 여행자에겐 큰 부담인 거 같다. 얼른 1 Day-pass를 사야겠다는 맘이 든다.
오슬로 국립 미술관은 그간 둘러본 미술관들에 비해 크지 않은 미술관이었다. 미술을 보고 있지만, 난 그녀를 생각하고 있는 거 같다. 이 글을 쓰고 있음에도 어떤 그림도 안 떠오르는 걸 보면 이럴 땐 미술에 대한 예의는 아니지만 사진을 찍게 해줬다면 조금이라도 기억이 남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광고 카피처럼 기록이 기억을 지배해줬을 텐데. 그림이 많지 않아 미술책도 사지 않았더니 조금 더 아쉽다. 3시쯤 오슬로 중앙역으로 나가 그녀를 기다린다. 밖에 나가신 엄마를 기다리듯 빠꼼히 다른 그녀와 둘이 앉아서. 중앙역 근처의 트램과 버스 기차 오는 곳이 모두 달라서 어디서 내릴지를 몰라 한참을 방황하다 드디어 만났다. 이 많은 정류장에서 핸드폰이 없었더라도 가능했을까? 이산가족 상봉도 이만큼 기쁘겠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가고 한시가 아까운 터라 우리는 1 day pass를 중앙역에서 구입해 뭉크 미술관으로 향한다. 트램 타고 두 정거장 정도를 갔다. 햇볕 아래 큰 침엽수들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쭉쭉 뻗어있는 나무들은 나의 마음도 쭉쭉 뻗게 해줄 거 같은 기분. 뭉크 미술관도 작았다. 예전에 피카소 미술관에서 느꼈던 것처럼 뭉크도 일관된 그림만이 아니라 의외의 그림들을 볼 수 있었다.
어쩜 우린 뭉크의 절규보다는 절규 초콜릿이 얹어진 케이크가 먹고 싶어서 뭉크 미술관을 간 건 아닐까? 주문을 하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 여유를 만끽하다 절규 케이크가 나와서 들여다보니 사뭇 실망스럽다. 역시 책을 100% 믿고 기대하는 건 여행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없는 듯. 어제의 사건들을 이야기하며 저녁을 해 먹기 위해 우리는 숙소를 향했다. 내가 좋아하는 유럽의 유스호스텔 체인. 시내에서 멀리 있다는 게 단점일 수 있지만, 그만큼 정원과 같은 넓은 자연 장소가 있는 곳이 많고, 한적하며, 가끔은 인터넷이 무료인 경우도 있으니 저렴한 비용의 여행자에게는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식사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건 번거로울 수 있지만 내가 먹고 싶은걸 먹을 수 있다는 혜택이 포함된 거다. 조금의 수고로 말이다. 우선은 그녀의 비행기 티켓부터 예약하기 위해 시도를 한다. 여러 가지 항공사들 중에서 그나마 저렴하고, 시간이 맞는 것을 찾아 예약을 했다. 오늘은 주말이 아니라서 그런지 비행기 티켓을 사기 위한 프로세스가 잘 진행이 된다. 그 후 우리는 짐을 모두 바닥에 풀어가면서 음식들을 챙겨 부엌으로 갔다. 햇반을 전기 오븐 끓는 물에 집어넣고 인내심을 테스트하면서, 컵라면은 물을 붓기 위해 비닐을 제거할 때였다. 캐나다에서 오셨다는 아저씨는 컵라면 겉 포장만 보고 한국에서 왔냐고 물어보신다. 어떻게 아시냐고 했더니, 본 적 있다면서 한국 라면 참 맛있다고 하셨다. 다양한 음식에 관한 이야기는 새로운 사람과의 대화를 만들어 준다. 아주 편안하게 ^^
저녁 식사를 마치고 대략의 일정 속에 내일 갈 곳을 상세하게 나눠 이야기한다. 제일 큰 일정은 아무래도 비겔란 공원이 될듯하다.
다음날 날씨가 더 추워진 듯한데 우리는 비겔란 공원을 가기 위해 트램을 탔다. 크지 않은 도시라서 여유가 있다면 걸어 다녀도 되겠지만 많은 일정을 소화하려면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서두른다고 서둘렀어도 공원은 부지런한 사람들로 한적하지만은 않는다.
비겔란 조각 공원은 우리나라 외도에 세워진 조각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의 숫자의 조각들이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인상과 행동을 나타내며 넓디넓은 공원을 채우고 있었다.
공원 한편에는 왠지 체육 수업을 받는 듯한 어린아이들이 있었는데 10명이 채 안될듯한 숫자의 학생과 선생님과의 수업은 참으로 평화로워 보이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유.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저들이 느끼는 게 여유가 아닐는지.
여러 모양의 조각상을 따라 하며 사진 찍기 놀이를 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은 지나가고 오늘도 맛집 찾기는 식사시간 안에 포기해야 할 듯해서 맛있어 보이는 집이 보이면 바로 들어가기로 합의를 봤다.
카페와 식당을 겸하고 있는 듯한 이 집. 산뜻함이 맘에 들어서 둘에게 물어봤다. 어떠냐고. 모두 오케이. 저녁 코스를 먹고 싶었지만 그건 저녁에만 된다고 해서 런치 메뉴를 시켰다. 물도 주문해야겠기에 tap water please라는 말도 곁들였다. 다른 유럽과는 달리 수돗물을 먹어도 된다고 하니 시도해본다. 우리나라 물을 사 먹을 땐 몰랐는데 나라마다 물 맛은 다르다. 알러지 때문에 몇 통의 물을 챙겨가는 촌스러운 나로서는 이 맘 때쯤이면 서울의 물이 그리워지는데 북유럽의 물은 서울의 물 맛과 많이 다른 거 같지는 않다. 기대하지 않아서 일까? 아님 배 고파서 일까? 우리는 스테이크 두 개와 생선요리를 하나 시켰는데, 환상의 맛이다. 마냥 앉아서 햇볕을 쏘이며 앉아 있고 싶어 지는 날씨. 하지만 아직 덜 둘러본 곳이 있기에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광장 쪽으로 내려간다.
광장은 어느새 북적북적한 사람들로 활기가 넘친다. 우리도 카푸치노 한잔씩 사 들고 성벽이며 오슬로의 기분을 즐겨본다.
저녁을 먹기 위해 숙소로 들어와서 저녁 먹을 준비를 한다. 베르겐 가는 기차를 일찍 타기 위해 조금은 수고로운 숙소(기차역 근처의 호텔) 옮기기를 오늘 아침에 했다. 아침을 만들어 먹기 보담 챙겨주는 아침을 먹는 게 시간 절약이 될 수 있기에 이럴 땐 호텔이 유리한 거라. (단 아침을 일찍 주는 호텔이어야겠지만) 시간을 알아보고 오지 못했지만 다행히 출발 전에 먹고 떠날 수 있을듯하다. 유난히 난 아침을 푸짐하게 먹는 편이라서 아침은 내게 중요하다. ㅎ 새로운 호텔인지 아직 방 호실도 임시로 붙여있다. 3인실이라 숙박비도 저렴한데 생각보다 공간이 넓다. 단 뜨거운 물을 먹을 수 있는 포트 종류의 기기가 없어서 우리는 오늘 아침에 유스호스텔에서 나오기 전 미리 조리해 둔 햇반에 컵라면을 저녁으로 먹고자 했으나 결국 로비에 내려가 벤딩머신에서 티백을 담글 수 있는 뜨거운 물 두 잔 정도를 사야만 했다. 한잔에 2천 원 정도였으니 결국 어마어마한 가격의 컵라면이 되어버린다. 짐을 줄이고자 먹어야 했던 라면이라 여행 내내 그리울 거 같다. ㅎ 내일은 베르겐으로 넘어간다. 이른 시각부터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말이다. 그러려면 부지런함과 동시에 민첩함이 필요하므로 포털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짐 한 개당 5만 원 돈으로 오슬로에서 베르겐까지 붙여주는 시스템인데 우린 3명이니까 15만 원이나 들어야 하는 거라서 고민을 했다. 결국 우린 무모함을 도전하기로 했다. 가방을 3개에서 2개로 줄이기. 가능할까 싶었는데 여행 온 내내 줄여놓은 가방은 2개로 줄어들었고, 짐을 실으러 할아버지는 새벽부터 오셨다.
이른 아침을 먹고 중앙역을 향해가는 우리는 베르겐까지 가는 피오르드 볼 생각에 맘이 한껏 부풀었다. 그 이후 내게 닥쳐올 것은 생각도 못하고. 추위를 준비해라 준비해라 하는 말에 내 나름은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겨울도 아닌 북유럽 가을은 유난히 추웠다. 어쩜 만반의 준비가 안된 것 일수도.
피요르드(fjord)
8시쯤 출발한 기차는 4시간 정도 구불구불 피오르드를 향해 간다. 내리쬐는 햇빛과 산등성이에 맺히는 구름의 그림자를 보니 참으로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단 한 번도 구름의 그림자를 본 적이 없었던 거 같은데 이곳은 산자락에 구름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강에는 산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정말 아름다운 나라라는 생각에 다른 이에게 민폐가 되는지도 모르고 셔터 누르기에 여념이 없지만, 정작 기차의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사진기 속에 담긴 풍경은 내 눈에 맺히는 것만큼이나 아름답지 않아서 아쉬웠다.
12시가 조금 넘어섰을 때 산악열차로 갈아타기 위해 우리는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렸다. 그때부터 추위는 시작된듯하다. 한참을 기다리니 산악 열차가 들어오고 우리는 다시 감탄할 자세로 돌아간다. 피요르드. 어찌 보면 산골짜기에서 굽이굽이 폭포처럼 물이 내려오는 거니까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춥지만 시원함이 느껴지는 거라던지 하늘, 구름, 산, 그리고 피요르드가 절묘하게 만들어내는 그건 감동적이었다. 내게는..
1시간 정도의 산악 열차로 이동한 뒤 배로 갈아타기 위해 잠시 대기한다. 가장 더울 수 있는 하루의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추위가 느껴져 온다. 그나마 짐이 없으니 모든 교통수단으로의 이동이 많이 불편하지는 않다. 어느덧 배는 출발하고, 한국어까지 안내 방송이 나와주지만 바람이 꽤 세서 갑판 위에 있기가 쉽지 않다. 거북이만큼 느린 여객선. 여유를 느끼라고 하는 거 같은데 어느새 난 갑판이 아니라 선실의 긴 의자에 널브러졌다. 우리나라 겨울 날씨보다는 따듯할 텐데 북유럽 추위는 내가 버틸 수 있는 범위가 아닌지 불량식품이 된 듯한 기분이다. 그 느리고 느리던 배가 쾌속선이었음 하는 바램으로 지쳐갈 무렵. 보스로 들어온듯하다.
다시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버스가 달리는 구간을 버스 안에서 찍어보고자 노력했더니 각도가 잘 안 잡힌다. 기분상 미시령 고개보다 훨씬 더 가파르고 좁았다. 이러다 버스가 뒤집히기라도 하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어느덧 저녁으로 시간은 접어들었고, 베르겐 들어가는 마지막 코스 기차가 남았다. 하루에 몇 번의 이동수단으로 갈아타는지 기억이 안 날만큼 시간이 지난 후인 이 시간에 몸을 기차에 태우자마자 아무렇지도 않게 노숙자 모드로 잠들어 버렸다. 내게 있어 추위는 정말 어떻게 해 볼 도리가.. 그래도 친구가 숙소까지 가는 방법을 상세하게 알아와서 숙소를 무난하게 찾아오니 우리의 반가운 짐들이 먼저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저녁 해먹을 기운이 내게 남아있지 않은 관계로 숙소로 들어오기 전 봐 두었던 가까운 베트남 쌀 국숫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무작정 들어간 집. 밖의 외관과는 달리 럭셔리한 인테리어가 왠지 불안감을 조성해온다. 비싼 집은 아닐런지. 다행히 많이 비싸지 않고(북유럽 기준) 음식도 꽤 맛있었다. 내일을 준비하며 이것저것의 대화를 나누는 우리, 어느덧 베르겐까지 왔다.
비 오는 베르겐(Bergen)
여행 중 꼭 한 번은 비가 오던데 그날이 오늘인가 보다. 창 밖에선 해는 나오지 않고 대신 비가 사선으로 내리고 있다. 베르겐은 북유럽 중에 묘미라고 했는데 어쩐다지. 어제 장 본 것으로 이것저것 아침을 만들어 먹으며 오늘의 여행지에 대해 다시 얘기한다. 비가 오는 관계로 조금은 포기해야 할 곳도 생겨날 것 같고.
우선은 케이블카를 타러 출발했다. 사선으로 내리는 비는 생각보다 세차다. 우산이 뒤집어질 듯한 바람과 추위에 손이 얼어붙는 것 같다. 케이블카 타고 올라가 바라보는 베르겐은 멋있었다. 걸어서 내려오면 볼 수 있는 골목 하나하나가 더 아름답다 하던데 그건 포기해야 할 듯하다. 시야를 제대로 확보하려면 윈도 와이퍼가 필요한 시점이다. 숙소로 들어와 체크 아웃하고, 짐은 숙소에 맡긴 뒤 시내와 어시장 구경을 하기로 했다. 시내에 가는 길. 점심시간이라 배도 고프고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베르겐 시내의 한 귀퉁이를 두 바퀴째 돌고 있다. 맛집을 안 찾아오니 이런 경우가 생기지만 그래도 이걸 여유라 생각하면 더없이 좋다. 호텔을 개조한 듯한 레스토랑이 눈에 들어온다. 고민해도 요기만 해 보이는 곳이 없어서 들어가기 위해 계단을 밟을 때 북유럽만의 특성이 이해되는 순간이 된다. 오슬로의 산악 열차에서도, 이곳 식당에서도, 길거리에서도 남자들끼리 데이트 비슷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삼삼오오도 아니고, 딱 둘만의 대화는 굉장히 친밀해 보인다. 성에 관해 관대해서 그런 건지 아님 내가 잘못 판단하고 바라보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풍경인 건 맞는듯하다. 남자 둘 끼리라면 여행도 안 가겠다는 한국의 그들과 이렇게 오붓하게 여행을 떠나는 이들을 보면. 흠. 뭐라 얘기해야 할까. 나빠 보이지만은 않다. 어찌 되었건 그래도 그들은 남자끼리라도 여행을 가는 거니 말이다. 남자랑은 여행도 안 가고 그냥 집에 있겠다는 것보다는 더 현명한 거 아닐까라는 나만의 생각을 해본다. 하긴 우리도 여자끼리 셋이다. ㅎ
메뉴를 시키고 보니 체인점은 아니더라도 캐주얼 레스토랑인듯하다. 북유럽의 음식은 저렴하지 않은 대신 음식의 양이 작지는 않은 듯하다. 물론 소화를 잘 못하는 내 기준이지만.
식사를 마치고 한자 박물관과 베르겐 박물관을 찾아갔는데 2~3시면 문을 닫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보다 더 심한데? 이 시간에 문을 닫는다면 박물관은 아이들 말고 누가 갈 수 있는 걸까? 한자 박물관은 포기할 수밖에 없어서 베르겐 박물관을 갔는데 베르겐의 족보를 보는 듯한 이 박물관은 기대와는 달리 약간은 실망스러웠다. 약 1시간의 관람 후 밖으로 나와 어시장 쪽을 향해 간다.
북유럽에서 흥정을 시도하다.
손이 시리다 보니 길거리 노점상에서 파는 모자와 장갑에 나 혼자 정신이 팔린다. 물건 파는 아저씨는 멜 깁슨처럼 생겼는데 왠지 시장의 아저씨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모자는 유럽 사람 머리 기준인지 머리와의 여유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고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겨울용이라 타이트함을 주기 위한 착용 모자일까? 갑갑함을 참을 자신이 없어 모자는 포기하고 장갑을 골랐다. 내피가 기모로 만들어져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나누어 19,900원과 9,900원 정도로 팔았다. (숫자에 약한 나로서는 정확한 금액일지 잘 모르겠다) 우린 모두 하나씩 맘에 드는 걸 집어 들었고, 어느새 난 흥정 모드에 들어갔다. 3개씩이나 사니 깎아달라고. 아저씨의 기분이 좋으셨던 걸까? 각각 약 900원 정도를 깎아주셨다. 여행 다니면서 깎아보기는 처음인데 기분이 꽤 좋다. 나의 입 꼬리가 므흣한지 쓰윽. ㅎㅎ 각각의 손에 장갑 끼우고, 우리는 어시장을 둘러보러 갔는데 어라~ 이게 시장일까? 시장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도 작다.
훼일? 훼일?? 아! whale!
10개도 안 되는 회를 파는 노점상. 아저씨라고 말하기보다는 청년들이 일하는 곳.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사이 속으로 흥정과 호객을 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쩌다 보니 회를 칼날 위에 올려놓고 맛 보라 하는 한 청년의 가게에 난 멈춰 섰다. 그냥 맛만 보리라 했던 것이 어느새 30 nok어치 연어 회를 사고 있다.
청년은 연어 회를 많이 주려면 세 접시에 나눠 담아줘야 한다며 그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고래고기를 시식하라고 칼을 다시 내밀었으나 whale을 훼일이라 말하는 그의 발음을 눈치 없이 계속 못 알아듣고 있는 나. 어느새 그는 접영의 모션으로 whale을 취하고 있다. 아~whale? 외쿡인과의 대화는 눈치가 백 단이어야 하는데 난 참으로 센스 없는 사람이다. ㅎ 이곳 북유럽의 연어는 어떤 맛일까 계속 궁금했는데 바게트 빵을 주지 않았다면 그 느끼하고도 짭조름한 연어를 기어이 다 먹지 못했을 거다. 빵을 주겠다는 걸 거절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챙겨준 청년이 참으로 고맙단 생각을 먹는 내내 한다. 노르웨이 참새는 비둘기보다 훨씬 영악해서 우리가 흘리는 빵 부스러기를 끊임없이 주워 먹는다.
어느덧 맡겨둔 짐을 찾아 공항을 가야 할 듯하다. 멀지 않겠지만 베르겐 공항은 처음 가는 곳이니 시간에 여유를 두는 게 좋을 듯하여 공항버스를 5시쯤 탔는데 밖의 풍경은 기억나지 않는다. 시차적응이 아직도 안된 건지 이 시간만 되면 눈은 천근만근이 된다. 유리창을 쿵쿵쿵 계속 머리로 노크하며 공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