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뤄두고 미뤄두다가 시기적절하게 읽은 듯 한 책.
언제부터 책꽂이에 넣어두었는지 기억이 안 날만큼 지난 것은 확실하다.
읽고 나니 “읽기 싫어서”라기보다는 아껴두었다고 변명하게 만든다.
책을 구입했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오늘이 며칠인지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ㅋ
마침 필요한 책을 시기적절하게 집어 들었으나 게으름으로 인해서 장편을 읽듯 오래도록 읽었다.
시장은 이미 플랫폼이 지배하고 있다. 이 문장 하나만으로도 책은 나를 집중하게 했다. 나 또한 나도 모르게 플랫폼 안에서 많은 생활을 하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디자인을 의뢰해야 할 일이 있었다. 기존에 알아두었던 플랫폼 하나를 선택하여 의뢰했다. 의뢰라는 단어 대신 그들은 다른 단어를 선택했다. 그 단어를 보면서 탁월한 선택이라고 과거엔 생각했었는데, 막상 내가 의뢰를 하다 보니 치열한 생태계가 느껴졌다.
그들의 수익구조를 다 알아본 것이 아니니 내가 틀렸을 수도 있으나, 그들의 시스템을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내가 선정한 디자인에 대해서만 비용이 지출될 뿐 다른 디자인에 대한 비용 지불은 없는 시스템이었다. (물론 많은 비용을 배분하여 나눠 지급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비용을 지불하는 입장으로 보면 우선순위에서 밀릴 듯하다)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경험의 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플랫폼은 타인의 노동을 자신의 플랫폼을 키우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그 플랫폼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는 덕분에 원하는 디자인을 얻을 수 있으니까. 디자인이라는 것이 디자이너가 매기는 값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고, 제작 전에 이뤄지는 것이므로, 디자이너에게 우선권이 있다 보니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이 사용자에게는 꽤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네트워크에 단 한 개의 노드만이 존재할 때 연결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아는 한 MIT 교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세일즈맨 상'은 최초의 전화기를 판 사람에게 줘야 한다고 농담 삼아 말하곤 한다. 틀림없이 그 상황에서는 전화기의 가치란 0이었다. 단 한 대의 전화기만 가지고는 누구에게도 전화를 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전화기를 더 많이 구매하면 할수록 전화기의 가치는 늘어난다. 2대의 전화기로는 1개의 연결이 가능하다. 4대의 전화기로는 6개의 연결을 생성하고 12대가 있으면 66개가 된다. 그리고 전화기 100대가 있으면 가능한 연결 수가 4950개가 된다. 이를 가리켜 비선형 성장(nonliner growth) 또는 볼록 성장(convex growth)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장 패턴은 정확히 1990년대의 마이크로소프트와 지금의 애플 및 페이스북, 내일의 우버와 같은 기업들에서 볼 수 있는 성장 패턴이다.(이를 뒤집으면, 2000년대 블랙베리의 볼록 붕괴 convex collaspse를 설명할 수 있다. 사용자들이 블랙베리 플랫폼을 떠나면서 네트워크 노드 손실로 인해 네트워크 가치 자체가 곤두박질쳤으며, 이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블랙베리를 버리로 다른 기기로 갈아탔다.)
위 인용 문구는 플랫폼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점을 정확히 짚어주고 있다. 네트워크라는 것은 단 한 개의 노드만 존재할 때는 연결이 불가능하다는 것. 플랫폼이 거대해지면 어느 순간 그들은 네트워크의 소중함을 잃어버린다.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블랙베리처럼 많은 사람들은 네트워크를 버릴 것이다.
또한 과거에 읽었던 플랫폼의 또 다른 책이 떠오른다. 우버 인사이드. 그 책도 이 책만큼 매력적이었는데, 그 책 어딘가에서도 플랫폼 노동자에 관해 이야기했던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언젠가부터 플랫폼 노동자로 변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플랫폼이 많아지고 있는 이 세계에 나는 적응이 안 되고 있다. 유연해지지 않는 징조인 것인지.
2020.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