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에게.
요 며칠 우울감이 짙다가 오늘은 또 활기가 돌아서(맞아.. 생리가 끝났어.) 뭐라도 쓰고 싶은 거야. 너에게 빨리 답장을 내놓으라고 닦달하는 메시지를 보낼까 말까 고민하다가 '에이 뭐. 바쁠 텐데. 쓸 때 되면 쓰겠지.' 하고서 교환일기를 쓰는 대신 블로그에 일기를 업로드하자마자 브런치에서 알림이 왔지 뭐니? 그렇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으므로 오늘은 이만 자고 내일 답장을 써야겠다.
역시 드라마빠인 네가 '부부의 세계'를 안 봤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어. 넌 그걸 보면서 결혼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구나. 난 이미 결혼을 한 입장으로서 '이혼을 하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했어. 특히 이혼소송만큼은 안 된다!라는 생각. 그거 아주 흙탕물 개싸움이더라고. 상대방이 괘씸해서 '널 불행하게 하는 게 내 목표다!!'식의 마음으로 이혼을 진행하는 동안 결국 불행해지는 건 나 스스로가 아닐까.. 하고 드라마나 영화들로 간접 경험하며 이혼은 참 힘든 거라고 깨달았지.
네 말대로 결혼은 미친 짓일까? 나는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걸 즐기는 편이고 대한민국에서 결혼이라는 제도는 전적으로 여성에게 불리하다는 이유로 엄마한테 결혼을 안 하면 어떨까?라고 말했을 때 엄마는 결혼을 해야 한다고 했어. 이유는 친구들이 다 시집가고 나면 놀 사람이 없어서 심심하니까. 내가 결혼을 하게 되면서 대신 애는 안 낳을 거라고 개나 한 마리 키우면서 살지 뭐-라고 했을 땐 개는 절대 키우지 말라는 거야. 이유는 개는 사람보다 먼저 죽으니까 슬퍼서. 인생 선배의 지혜로움이 깃든 대답이었달까. 아무튼, 결혼을 해서 좋지 않은 점은 무수히 많겠지만 좋은 점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면 몇 가지 정도가 떠올라.
내가 낮잠 자는 동안 비 오면 깨워줄 사람이 있다
크리스마스에 외롭지 않다(나는 명절이고 생일이고 다 괜찮은데 유난히 크리스마스 때 쓸쓸하더라)
아플 때 병원에 데리고 가 줄 사람이 있다는 건 실비보험만큼 의지가 된다
정말 열심히 생각해낸 것들인데 고작 이런 게 결혼의 장점이라니.. 나는 혼밥도 전혀 거리낌이 없고 혼술도 좋아하고 혼영도 좋고.. 그런 사람으로서 뭐든 둘이 함께 할 수 있는 결혼생활만의 장점을 찾으려고 하니 솔직히 딱히 없더라고.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같이 살 수 있으며 이 사랑의 약속은 법적 보호 하에 있다-라고 쓸 수는 없잖아? 근데 솔직히 내 결혼생활은.. 그냥 재밌어! 웃을 일이 더 많아지는 거 같아. 그런 질문들 많이 하잖아. "결혼한 게 좋아 하기 전이 좋아?" 이런 말도 안 되는 질문. 싱글일 때와 결혼 후의 삶은 애초에 비교대상이 될 수가 없어. 예를 들면 이런 거야. 기본 맛 한방 족발이랑 매운 양념족발 중에 뭐가 더 맛있는 족발이냐를 따지는 것만큼의 차이 같은 거지. 그게 대체 비교가 되는 거냐고. 각각의 매력과 맛이 아예 다른데. 난 그래서 혼자 시켜 먹어도 무조건 두 가지를 다 먹을 수 있는 메뉴로 시키곤 했지(쓰다 보니 족발이 너무 먹고 싶다). 결혼도 비슷한 마음이야. 혼자여도 온전한 행복과 충만함을 느꼈던 싱글라이프를 지내봤으니 이제 내 가족을 이루어서도 살아보면 어떨까, 전혀 다른 맛의 행복도 느껴보는 거지! 그런 맥락에서 나는 혹시라도 네가 만약 비혼 주의자가 아니라 언젠가 결혼을 하긴 해야지..라는 생각이라면, 우리 나이가 결혼하기 딱 좋은 나이라고 생각해. 해 뜰 때까지 술 쳐마시고 여기저기 여행도 자유로이 다녀보는 등 할 수 있는 거 다 해보고~ 그런 것들이 시시해지려고 할 때(가령 밖에서 노는 거보다 집에서 후딱 혼술을 하고 자는 게 좋아졌을 때랄까..)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건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고 맞춰야 할 것들이 산더미라는 걸 아는 나이가 되었을 때. 그때쯤 만약 좋은 사람이 있다면 새로운 환경에서 아내라는 새로운 역할을 맡아보는 거지. 아! 근데 오해는 마. 내가 뭐 너 결혼하라고 부추기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어. 너희 엄마한테 입금받은 것도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해둘게.
P.s. 시간 날 때 답장 좀.
파나마에서 채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