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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채리 Jun 18. 2020

지독한 한 주

-파나마에서 연남동으로

도연에게.



  정말 바쁜 한 주를 보냈구나? 나는 지독한 한 주를 보냈어. 흔히들 말하는 '육아는 체력전'이라는 말을 실감했다고나 할까. 왜 그런 말을 하는가.. 했더니 체력이 달리면 단순히 '아 힘들다. 피곤하다.'에서 끝나는 게 아니더라고. 아, 개나 한 마리 키우면서 살았어야 하는데(심지어 나는 개도 안 좋아하는데..) 왜 애를 낳아가지고... 엄마 될 자격도 없는 내가 괜히 애를 낳아서는! 어휴- 뭐가 이렇게 다 힘이 들어.. 어쩜 이렇게 쉴 틈이 없어!!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시호한테 해선 안 될 말이 입 밖으로 나오곤 해. 그런 말은 주로 밤에 나오곤 하지. 나는 본능 중에 1순위가 무조건 잠이야. 잠을 못 자면 아무것도 못하는 타입이거든. 그런데 시호가 이앓이를 하느라 그런지 새벽에 한 시간마다 깨서 울어재끼는 거야. 결국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와버린 거지. 

"너 진짜 갖다 버린다!!!"

오빠가 애가 다 알아듣는다고 하길래 조금 돌려서 말하기도 했어.

 "시호야, 다른 엄마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 엄마는 인내심이 없어서 엄마가 될 자격이 없는 거 같다.."


그러다가도 아침에 일어나서 내 품에 비비고 들어와 방긋방긋 웃는 시호를 보면 너무 예쁜 거야. 지난밤 내가 뱉어낸 모진 말들이 너무 미안해져. 오늘은 짜증 내지 않고 더 많은 사랑을 주고 더 잘해줘야지! 하는데.. 인내심이 없는 나는 또...

 "왜!! 뭐 도대체 어떻게 하라고~ 말을 해! 엄마가 안고 있는데 왜 그래 왜!!!"

근데 왜 칭얼대겠어? 당연히 원하는 게 안 됐으니까 칭얼대는 건데 나는 그걸 알면서도 '내가 이 정도 해줬으면 너도 인간적으로다가 이제 그만 울고 좀 혼자 놀아야 되는 거 아니냐' 이런 마음이 들어. 그러면서 제발 그냥 얼른 커버려라. 어느날 갑자기 다 커서 나타나라!라고 생각하다가,  장난감을 꼬물꼬물 만지는 그 작은 손이랑 빨대컵을 빠느라 입을 조물조물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너무 사랑스럽고 천사 같아서 크는 게 아깝고 천천히 컸으면 좋겠어. 그냥 내가 미친 사람인가 싶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즘 "시호 크는 거 잘 보고 있어. 파나마에서 세 식구 너무 행복해 보여."라는 말을 자주 들어. 안부를 묻는 가벼운 인사말 치레로.

행복해. 그걸 부정할 수는 없어. 아이가 주는 행복은 어마어마해. 그런데 불행도 따라와. 그것도 부정할 수 없어. 혼자일 때 나를 행복하게 했던 것들을 하지 못하게 될 때 그건 얼마쯤 불행으로 남아 문득문득 날 우울하게 해. 내가 지난번에 출산을 장려했던가?? 오늘은 이렇게 말하고 싶어. 그냥 개든 고양이든 햄스터든, 그런 거 한 마리 키우면서 사는 것도 좋을 거 같다. 잘 생각해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참! 남편이 그러는데, 도연이는 연애하더니 예뻐졌대.



p.s 시간 날 때 답장 좀.

파나마에서 채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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