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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Jun 14. 2020

독심술사는 없어

연남동에서 파나마로

채리에게


‘꽤나’ 오랜만에 답장을 쓰는 것 같아. 한 주 동안 오랜만에 하는 강의 준비와 + 디자인 미팅 3건(다 강남이었음 망할) + 새로운 원고 작업의 시놉시스 덕분에 정신없이 보냈어. 우선 네가 말한 ‘꽤나’라는 말을 내가 많이 쓰는 줄 전혀 몰랐지 뭐야? ㅎㅎ 네 편지에 답장을 해야 하니까 상대방의 편지를 몇 번이나 더 읽기는 하지만 오히려 내가 쓴 편지는 다시 확인을 하거나 읽어보거나 하지 않는 편(?)인 것 같아. 조금은 즉흥적이랄까! 그래서 네가 글을 쓸 때 내가 자주 쓴다는 그 ‘꽤나’라는 부사에 대해서 생각해봤어. 참으로 내가 자주 쓸 법한 언어야. 왜냐하면 나는 무언가 정확한 걸 좋아하지 않거든. (ㅋㅋ) 예를 들어 이런 식이지, “나는 너를 많이 좋아해.” 보다 “나는 너를 꽤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라는 말이 내 마음을 반쯤은 숨긴 채로 주관적인 질량을 표현하잖아. 나는 그런데 상대방의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항상 고려하는.... 좋게 말해 배려, 나쁘게 말해 소심하고 지적받기 싫어하는 성향의 내가 쓰기에 아주 적절한 말이지. 30대 중반이 되면서 이상한 버릇이 생겼는데 그중 하나가 약속시간을 정확히 잡지 않는 거야. 물론 ‘일’이나 불편한 자리의 경우는 ‘3시에 만나요!’라고 하면 짤 없이 30분 전에 도착해서 근처를 배회하다가 5분 전에 들어가. 그만큼 나는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는 걸 싫어하고,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하는 자리라면 예상한 시간에, 예상 가능한 얼굴로 그 자리에 있고 싶은 거지. 그런데 이성의 경우는 또 좀 다르다? 가령, 아직 사귀지 않은 어색한 사이일 경우, “내일 8시까지 만날까요?”라고 연락이 온다면 나는 오늘부터 내일 8시까지 불안에 휩싸여. 갑자기 오후 2시쯤 돼서는 엄청 약속을 펑크내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기도 했어.(이정도면 거의 남자 알레르기 수준ㅋㅋ) 나에게 생각할 시간 따위를 안 주는 게 남자들은 유리하거든. 지금 나와, 하면 고민 없이 어이쿠, 나가야 되네 하면서 빼도 박도 못하게 되지. ‘꽤나’라는 부사에서 시작해 연애 얘기로 귀결되지만, 나는 ‘급 만추가 좋다’라고 마무리하도록 하지. (급 만추:급 만남 추구)


네가 자주 쓴다는 ‘뭔지 알지?’는 아무래도 공감의 영역인 거 같아. 나는 정확한 수치를 회피하는 형태로 쓰는 습관이라면 너는 지속적으로 공감을 받기 위한 습관이겠지? 내 친구 중에도 그 ‘뭔지 알지’에 중독된 친구가 있는데 하루는 이런 말을 하더라.

야, 그거 있지. 그 왜왜 그런 거 있지. 뭔지 알지?

ㅂ.. 말 똑바로 안 하냐? 독심술사야?ㅋㅋㅋㅋ

한참을 웃어버렸지. 너도 뭔지 알지에 중독되어 상대가 내 마음을 훤히 꿰뚫었으면 좋겠다는 실수를 범하지 않길 바라며.



한참 전에 스마트 체중계를 주문했다고 쓴 것 같은데 아직도 도착을 안 했어. 체지방을 확인하고 다이어트를 멈추려 했는데 분해 죽겠다. 그래도 어제는 다이어트로 고생한 나를 위해 고추짬뽕과 볶탕밥에 소맥을 선물해주었어 :)

1일 1식 하는 채리네는 매일이 선물 같더구나. 인스타그램에 손가락을 집어넣을 수 있다면 수육 한 점과 도가니 한 점을 뺏아서 부추와 함께 겨자소스에 찍어 먹고 싶더라.

오늘도 선물 같은 식사와 공감받는 하루가 되길 :)




ps. 안 바쁠 때 답장 좀

연남동에서 도연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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