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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채리 Jun 08. 2020

찾았다, 내 집!

-파나마에서 연남동으로

도연에게.



너는 '꽤나'라는 단어를 꽤나 많이 쓴다는 걸 알고 있어?? 네 편지에서 꽤나라는 표현이 빠진 적이 없어. 내 남편이 그러는데 나는 말 끝에 "뭔지 알지?"라는 말을 자주 붙인대. 예를 들면 이런 식이야. "우리 어제 남은 치킨으로 덮밥 해 먹을까? 간장 양념에 양파랑 사악- 졸여가지고 밥 위에 얹어서. 뭔지 알지?" 공감을 구걸하는 타입이더라고 나는. 


드디어 이사 갈 집이 정해졌어. 네가 바라는 집의 조건이 해가 잘 드는 테라스, 트인 구조, 산책이 가능한 동네라면 내가 이번에 이사하면서 생각한 조건들은 이래. 첫 째, 테라스가 있을 것. 비 내릴 때 테라스에 앉아 커피 마시기를 하고 싶거든.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테라스가 몇 곱절은 더 절실해졌지. 나는 고작 창문만 열 수 있는데(그마저도 비 올 땐 열어둘 수 없어. 지금 집은 바닥이 나무 마루라서 비가 들이치면 나무마루가 들뜨거든) 앞에 아파트에서 테라스에 나와 앉아 있는 사람을 보면 여간 부러운 게 아니더라고. 아! 코로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여긴 일주일 만에 다시 전면 통행금지가 되었어. 통행금지가 축소된 일주일 동안 확진자가 매일 두배씩 늘어났거든.(ㅠㅠ) 두 번째 조건은, 비교적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집. 너도 알다시피 서양에선 집에서 신발을 신고 생활하잖아. 그 묵은 때가... 어마어마하더라고. 청소를 하고 또 해도 까만 때가 걸레에 묻어 나오는데.. 시호가 그 바닥을  기어 다니는 게 영 마음에 걸리더라고. 그래서 묵은 때가 적으려면 지은 지 얼마 안 된 집이 답이더라고! 마지막으로 층이 높을 것. 파나마는 늘 덥잖아. 그래서 벌레가 '꽤나' 많아. 지금 집은 5층인데 요즘 모기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어. 사실 난 모기 물려도 잘 가려워하는 편이 아니라서 괜찮은데(과테말라 살 적에 벼룩에 자주 물려서 모기 정도는 가렵지도 않더라. 벼룩에 물리면 피날 때까지 긁은 다음 물파스나 라임을 발라서 날 학대하고 싶어져), 중남미 모기엔 지카와 뎅기열 위험이 있어서 신경이 쓰이더라고.


결국 내 조건들을 충족해주는 집을 선택했어. 무려 32층이라 모기 걱정은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아. 게다가 가구까지 새 거인 데다 내 취향의 나무 가구들이라 앞으로의 stay at home 생활에 큰 활력이 될 것 같아. 집을 사서 이사 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렌트하는 집인데도 이사 가는 게 설레서 찍어둔 동영상을 하루에 20번씩 보고 있어. 아참! 그리고 그 집에도 게스트룸은 있으니 이번 집에 네가 올 수 있다면 좋겠어! 집 보러 갔을 때 찍어둔 동영상에서 테라스 부분을 캡처해서 편지 말미에 첨부해둘게. 파나마는 산책하기에 좋은 날씨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른 아침이나 저녁 즈음엔 할 만하니까 산책을 좋아하는 네가 파나마에서도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그런 날이 얼른 오면 좋겠다. 도대체 코로나는 언제 끝날는지. 요즘은 '언제 밥 한 번 먹자!' 식의 인사만큼이나 '코로나 끝나면 보자'라는 말을 자주 쓰게 되었네.



홈트는 꾸준히 하고 있어. 생리통으로 아팠던 이틀과 시호 소아과 다녀오느라 바빴던 하루를 빼고 매일 했어. 아! 생리통 얘기를 하니까 생각났는데 출산하고 나면 생리통이 없어진다더니 나는 생리통은 여전하고 거기에 이제 배란통까지 생겼지 뭐냐??!!!!! 배란통은 처음 겪어봤는데 진짜 생리통처럼 싸르르 기분 나쁘게 배가 아프더라고. 아무튼 다시 홈트 얘기로 돌아와서, 나 은근 끈기 있는 타입이지 않니??? 홈트를 시작한 지 50일 정도 되어 가는데 나는 3.5kg이 빠져서 이제 1.5kg만 빼면 임신 전으로 돌아갈 수 있어! 물론 임신 전 몸무게도 과체중이라서 그거보다 더 감량을 할 계획이긴 해. 그리고 놀라지 마! 남편은 무려 9kg이 빠졌어. 나도 오빠도 건강하고 예뻐진 모습으로 한국에 갈 수 있다면 좋겠어! 물론 그것도 코로나가 좀 잦아들어야 가능한 일이겠지. 휴. 모든 기약은 몽땅 포스트 코로나로 미뤄지는구나. 연남동에서도 늘 건강 유념하렴!





p.s. 시간 날 때 답장 좀.

파나마에서 채리가.

이사 갈 집은 바다가 보이는 곳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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