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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Jun 06. 2020

내가 살고 싶은 집

연남동에서 파나마로

채리에게


벌써 이사를 해야 하는구나, 이사는 꽤나 돈이 많이 들고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데, 사실 나도 이사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야. 왜냐하면 새로운 공간에서 살 기회가 생기는 거잖아. 퍽 설레는 일이지. 어릴 적부터 이사를 많이 다녀서 그런지 그런 안정감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나에게도 이사는 익숙한 행사야. 나도 내년 6월이면 감나무집의 계약이 종료되는 시점이라 이사를 어렴풋이 계획하고 있어. 너의 다음 집에 내가 가볼 수 있길 바라. 그러니까 새로 이사하는 집에도 게스트 룸을 만들어 주길.


요즘에 이사를 생각하면서 부동산 카페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집 구경을 종종 하고 있어. 감나무집에 살면서 마음먹은 집의 몇 가지 조건들이 있는데, 첫 번째로는 집에 테라스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야. 테라스가 있으면 언제든지 문을 열고 나가서 날씨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고, 집에서 일을 주로 하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이 들면 밖으로 나가서 기분 전환을 하기가 좋거든. 그리고 햇볕에 말리는 빨래도 너무 좋아. 빨래에 볕이 스며서 섬유유연제 냄새와 해의 냄새가 섞인 향을 맡는 일은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거든. 그리고 두 번째는 공간이 답답하지 않게 분리된 집을 선호해. 10년 동안 자취를 하면서 답답한 원룸에 오래 살아 그런지, 벽으로 구역을 나눠놓은 구조보다 뻥 뚫린 공간 하나가 있는 게 좋더라고. 책장이나 커튼으로 공간을 분리해두면 눈과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기분이랄까. 뭐가 됐든 나는 답답한 걸 싫어하는 모양이야. 나는 밖으로 나가는 일이 적기 때문에 접근성, 역세권 따위는 필요 없어. 대신 걸어서 한강이나 공원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 숲세권이라고 하나? 산책을 너무 좋아하니까 반드시 이 세 번째 조건도 충족되었으면 좋겠어.


남자 친구한테 얼마 전, 날씨가 너무 좋은데 걸으러 나가자는 연락을 받았어. 내가 워낙 산책을 좋아하니까 날씨가 좋은 날에 내 생각이 나더래. '산책하면 또 이도연이잖아' 이런 말을 하는데 심쿵했어. 파란 하늘을 보고, 걷는 걸 좋아하는 내가 떠올라 같이 걷고 싶어 진다는 마음이 너무 예쁘잖아. 오늘 연남동은 꽤나 더웠는데, 배철수의 음악캠프 시간에 맞춰서 혼자서 한강을 두 시간쯤 걷다가 들어왔어. 지는 해의 오렌지 빛깔이 한강 위로 찰랑이는 걸 보고 있으니 이 순간 모든 것이 감사하고 행복한 기분이 들었어. 만보를 가볍게 찍고 들어와 샤워를 하고 나왔더니 세상을 다 가진 듯 충만하다.


채리는 요즘도 꾸준히 홈트를 하고 있니? 네가 준 체중계가 고장 나서 새로운 스마트 체중계를 주문했어. 어릴 땐 다이어트 따위 하지 않아도 군살이 찌지 않았는데, 이젠 여기저기에 군살이 붙어 잘 떨어지지 않네. ㅠㅠ 우리 건강하고 예쁘게 늙자. 그럼 이번 한주도 건강하고 맛있는 식사를 하는 날들이 이어지길!


ps. 안 바쁠 때 답장 좀.

연남동에서 도연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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