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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채리 Jun 29. 2020

그런 밤이었어

-파나마에서 연남동으로

도연에게.



내가 너의 몸 사이즈를 아는데 몸무게 앞자리가 바뀌었다는 것은 너는 40kg 대가 되었다는 것이로군. 많이 나가봐야 49kg 나가는 너도 닭가슴살이나 계란, 두유 따위를 먹는데.. 너보다 10kg는 더 나가는 나는 왜.. 오늘 치킨을 먹은 것인지... 역시 체지방 부익부 빈익빈에는 이유가 명확하게 있구나 싶다.


  답장이 좀 늦었지? 이미 인스타나 블로그로 봤겠지만, 이사를 했어. 이번 주 내내 야금야금 짐을 옮기고 정리하느라고 글 같은 건 쓸 정신이 없었지. 심지어 매일 밤 뒤적이는 이유식 레시피 책도 넘겨보지도 못했고 말이야. 지난 편지에서 내가 육아의 고됨을 하소연했던가? 요새는 또 시호가 잘 자고 잘 먹고 잘 놀고 그래 가지고.. (이는 안 났는데 이앓이가 끝난 것 같아.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지??? 이럴 수도 있는 건가? 하긴 물어볼 사람한테 물어겠지..?ㅋㅋ) 마냥 예쁘기만 하네. 이럴 땐 시호를 보면서 내가 얘를 안 낳았으면 어쩔뻔했나~ 싶어(이중성 졸라 소름 끼친다ㅋㅋㅋㅋ). 내가 한창 힘들 때 시호한테 짜증내고선 친구에게 '나는 좋은 엄마는 아닌가 봐.'라고 했더니 친구가 그러더라고. '그냥 엄마 해~ 뭘 좋은 엄마까지 해.' 그래, 나는 그냥 좋은 엄마 말고 사랑 많이 주는 엄마가 되기로 했어. 뭐 거기에 나의 에너지 범위 내에서 아이를 위해 노력도 좀 하면 좋겠지.

  그나저나 새로운 시놉시스?? 연애소설 이후로 또 다른 작업을 하고 있는 거야? 네가 쓰고 있는 새로운 이야기도 무척 궁금하다. 다음 편지에선 그 이야기 좀 해주련.

아! 나는 이사한 집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지. 이사를 하고 이사한 집에서 맞은 첫 번째 밤에 나는 네 생각을 했어. 그날 밤 너에게 새벽 감성의 카톡을 보내기도 했다만.. 남편은 이사하느라 고단했는지 잠든 시호 옆에서 일찌감치 코를 골았고, 나는 잠자리가 바뀐 탓인지 잠이 오지 않는 거야. 시계를 보니 새벽 1시도 넘었더라고. 그래서 와인 한 잔 마시고 잠을 청해봐야겠다 싶었지. 와인 한 잔이랑 치즈 두 개 들고 쫄래쫄래 테라스에 나갔는데 반짝반짝 빛나는 야경이 얼마나 근사한지. 고층에서 바라보는 익숙지 않은 창밖 풍경이 생경한 게 꼭 내가 여행을 떠나온 것 같은 망상에 빠지게 했어. 그러다 마침내 틀어둔 음악에서 검정치마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거야. 마음이 벅차고 충만해졌어. 지금의 내 기분과 행복을 누구와 나누고 싶은지 생각했는데 나의 몽골 여행을 함께 한 너와 중호였어. 이 순간 그들과 이 공간에서 함께였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어. 그러더니 이내 정말이지 순식간에 아주 마음에 드는 여행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짙은 감상에 빠져들었어. 그래서 와인을 한 잔 더 마셨지. 이사한 첫날은 그런 밤이었어. 마치 내일도 모레도 행복한 일만 생길 것 같은 밤.

성격 급한 나는 쉬엄쉬엄 천천히 짐 정리를 할 수는 없는 사람이라 이사한 날부터 늦게까지 짐 정리를 했고 다음 날에도 눈뜨자마자 짐 정리를 했어. 이틀 만에 짐 정리를 끝내버렸다. 이제 나는 다시 시호를 재운 밤, 글을 쓸 수도 있고 책을 읽을 수도 있어. 이 집에서의 루틴도 차근차근 만들어가야지. 이사하느라 일주일 간 못 한 홈트도 내일부턴 다시 해야겠어!! 그렇지만 난 밥은 양보 못한다.(역시 부익부 빈익빈에는 이유가 확실하다고 ㅋㅋ)


p.s.

1. 시간 날 때 답장 좀.

2. 아래 사진은 우리 집 테라스에서 보이는 모습이야. 두 장의 사진을 첨부했어.

사실 난 야경보다는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 도시가 푸른빛에 휩싸이고 하나둘씩 반짝임이 일렁이기 시작할 즈음이 더 좋아. 거기에 비까지 내리고 있다면? 게임 오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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