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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Jul 01. 2020

아무렴 어때,

연남동에서 파나마로

채리에게


이번에 이사한 집의 뷰는 정말 근사하더라. 어스름이 내리고 비까지 내리니 더할 나위 없지. 그 밤을 내 몸에 새기고 싶은 지경이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너와 나로선 집에서 보는 풍경이 아주 중요한 것 같아. 하늘을 보거나, 비를 바라보거나 하는 일이 우리의 기분을 좌우하기도 하니까 말이야. 슬기로운 의사생활 12화를 보는데, 그런 대사가 있었어. 


"사람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 것 같아. 자기가 맛있는 걸 먹을 때 행복한 사람과, 혼자 유튜브(티브이)를 보면서 먹는 시간을 행복하다 느끼는 사람과, 사람들이 맛있는 걸 먹는 걸 보는 걸 행복해하는 사람." 


넌 어때? 내가 예상하건대 당연히 네가 맛있는 걸 먹을 때 행복한 사람 유형이겠지?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맛있는 걸 먹을 때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야. 좋아하는 사람이 행복해하면 나도 행복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웃으면 나도 행복해지는. 하지만 여기서 조건이 하나 더 붙어. 내가 당신을 보며 행복해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감사해해야 해. 당신이 맛있는 걸 먹는 걸 보면서 행복해하는데 눈치 없이 계속 맛있게만 먹으면 열이 받아. 그러니까 꼭 밥을 먹다 말고 나와 눈을 마주쳐줘야 하고, 너도 좀 먹어~라고 해줘야 해. (성격 참 ㅋㅋㅋㅋㅋ)


호랑이의 소개팅 실패는 실망스러웠어. 실물은 모르겠지만 딱 부부상이었는데 말이야. 관상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너는 다니엘 오빠랑 부부상이야. 왜냐하면 웃는 얼굴이 너무 닮았거든, 눈매도 닮고 말이야.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너의 지난 X와는 너무나 다른 관상이라서 부부가 안될 상이야. (샤머니즘 좋아하는 편ㅋㅋㅋ)  내가 이번에 남자를 고른 기준에 대해서 설명해주자면 ‘딱 나 같은 사람’이 포인트였어. 연인이 되고서 한동안 집중적으로 눈여겨본 건 뭐였냐면 '이도연 같은 구석을 찾아라.' 였어. 그래야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넓고, 같이 오랜 시간 있더라도 이질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아쉽게도 이도연의 단점만 모아놓은 것 같아서 소름 끼칠 때가 가끔 있어. 농담 삼아 우린 잘 어울리는지에 대해서 얘기해봤는데, 얼굴이 닮진 않았지만 비주얼적으로도 어느 정도 괜찮게 어울리고 있다고 생각해. 이건 내 친구이자 그의 사촌동생 그녀가 비주얼적으로 둘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해서 소개를 시켜준 거라, 과학적(?) 근거가 뒷받침 된 이유라고 할 수 있지.


주말 동안 아니나 다를까 폭음을 하고, 일상으로 돌아와 매일같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어. 꿈은 한량인데 왜 이렇게 개미처럼 사는지 모르겠다 생각하면서 남자 친구에게 말했더니, '그건 또 그것대로 좋지 않겠어? 한량이 안되면 또 어때, 지금처럼 행복하면 되는 거지.'라고 하더라. 그렇지, 맞지. 주어진 상황에 맞게 행복을 찾으며 사는 게 우리 사는 거 아니겠나 싶어. 아무렴 어때. 이렇게 나를 쓸모 있어하는 일이 있고, 가족이 있고,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는데. 채리의 오늘 하루, 불쑥 불행의 기운이 찾아올 때면, '아무렴 어때' 이렇게 사랑스러운 가족과 맛있는 음식을 하루에 한 번 먹을 수 있는 걸, 하는 하루가 되길 바라 :)



ps. 안 바쁠 때 답장 좀.

연남동에서 도연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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