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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채리 Jul 05. 2020

이만하면 내 인생 참 괜찮다

-파나마에서 연남동으로

도연에게.


나는 어떤 유형일까 두 가지 사이에서 고민했어. '내가 맛있는 걸 먹을 때 행복한 사람'과 '혼자 TV 보면서 먹는 시간이 행복한 사람'... 나는 그 두 가지를 합쳐서 혼자 TV 보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한 사람이거든. 일단 확실한 건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걸 보면서 행복해지는 타입은 절대 아니라는 점. 네버 에버! 사람들이 맛있게 먹으면 그 사람들이 행복하지 왜 내가 행복해? No 이해... 갸우뚱(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집 테라스 뷰 정말 근사하지? 뷰에 대해서 조금 더 자랑을 해보자면 무려 세 가지 뷰를 포함하고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구나. 테라스에 나가서 우측으로 보면 공원 숲 뷰, 정면은 시티뷰, 왼쪽으로는 바다까지 보이지. 이런 뷰도 매일 보다 보면 별 감흥이 없어질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을 열 때 환한 에너지가 차올라. 거기에 잘 자고 일어난 시호가 내 품에 안겨 나와 눈 맞추며 방긋방긋 웃고 있으면 이만하면 내 인생 참 괜찮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매일 아침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 같은 일이니. 



   


   네가 너와 비슷한 남자를 찾는 것이 기준이었다고 했는데,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재밌고 자상한 남자를 좋아했던 것 같아. 만나온 사람들의 외모는 교집합스러운 부분이 없었어. 다들 다르게 생겨서 사람들이 나한테 "너는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도통 모르겠어"라고 했었거든. 외모는 말이야, 잘생긴 놈을 만나도 계속 보다 보면 잘 생긴 줄 모르고 못생긴 놈을 만나도 자꾸 보면 못생긴 줄 모르겠고 그렇더라. 결국 자주 보다 보면 어떤 얼굴이든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니까. 그렇지만 네 남자 친구분은 정말 미남형에 훤칠하시더라!! 얼른 실물로 뵐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아무튼 나는 그러고 보니 이상형에 딱 맞는, 자상하고 재밌는 남자와 결혼을 했지 뭐니. 나에겐 남편이 제일 재밌는 남자라서 둘이 맨날 상황극 하고 그래. 시호 때문에도 많이 웃지만 남편이 웃겨서도 하루에도 몇 번을 깔깔깔 웃어. 아.. 오늘 너에게 편지를 쓰다 보니 내 인생 참 괜찮게 느껴진다.


나는 어제 친목회를 했어.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친구 부부도 두 집이나 같은 아파트로 이사했거든. 각자 집에서 음식 하나씩을 준비해서 우리 집에서 모여 저녁을 먹기로 했어. 메뉴 카테고리가 중식이어서 오빠는 짬뽕이랑 깐풍기를 만들었어. 생각해보니 저녁을 먹는 것 자체가 꽤 오랜만이더라. 난 완벽한 치팅데이를 작정하고 소맥을 곁들여 마시다가 배불러서 소주를 마시다가 소주가 다 떨어져서 맥주를 밤 12시까지 마셨어. 역시 맥주는 취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 내가 원하는 그 지점까지 오르질 않더라. 아무렴 어때! 이렇게 매일 밤 술 당기게 하는 우리 집 테라스가 있는데! 오늘은 테라스에 캠핑체어까지 펼쳐놨더니 자꾸만 의자 팔걸이에 술병을 꽂아두고 싶어서 큰일이다. 다이어트해야 하는데! 다음 친목회까지 또 열심히 운동을 해야겠어.

너의 오늘은 어떤지.. 장마가 시작되었다던데 네가 있는 그곳에 비가 내리는지.. 부슬부슬 내리는지 장대비가 쏟아지는지... 너는 어떤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지 오늘은 무슨 색 립스틱을 발랐을지 괜히 사소한 것들이 궁금해지는 밤이다.



p.s. 시간 날 때 답장 좀.

파나마에서 채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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