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동에서 파나마로
채리에게
이사한 집의 테라스 뷰는 정말 근사하다. 여행을 떠나 도심 속의 좋은 호텔 뷰가 부럽지 않을 것 같아. 매일 여행하는 기분으로 눈을 뜰 수 있으니 새로 이사한 집의 1년은 여행하듯 보낼 수 있겠다. 그 1년 동안 저 집을 꼭 가봐야 할 텐데...
나의 이번 한주는 말이지, 아니 이번 한주뿐 아니라 지난 2-3주간 너무나도 일이 많았어. 사건 사고가 많았다는 게 아니라 '일=work'이 많았어. 주 1-2회 밤을 새우고 또 아침에 일어나 작업하고 미팅을 가고, 학원에 출근해서 강의를 하고... 그러다 보니 답답하고 감정의 폭이 오르락내리락 너무 편차가 커서 사는 게 지치고, 연애도 재미가 없고...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할까?' 고민하느라 잠 못 드는 힘든 날들이었어. 어제는 또 누군가의 죽음을 기사로 접하고 우중충한 기분이 전염되어서 하루 종일 마음이 좋질 않네. 며칠 전에도 지인의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접했거든. 나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에 큰 슬픔을 느끼진 않아. 왜냐하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어렵고도 쉬운 일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 우린 태어나는 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했고, 일도, 사랑도, 삶도, 부도 명예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잖아. 내 마음같이 움직여주는 건 아무것도 없지. 심지어 내 마음 하나마저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 하지만 내가 죽는 시간과 죽는 모습을 결정할 수 있다면 자기 스스로 그것을 선택한다면, 그것을 타인들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 어쩌면 내가 지금 마음이 좋지 않은 건 죽음 그 자체가 아닌, 내가 믿었던 진실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일지도 몰라. 참 무서운 세상, 그리고 참으로 무거운 삶의 무게가 새삼 피부로 와 닿는 하루였어.
뭐 그건 그렇고, 나는 내 인생을 치열하게 사는 수밖에 없지 뭐.
그런 이유로, 오늘은 테라스 의자 팔걸이에 맥주를 하나 꽂아서 나 대신 마셔줘. 나는 요즘 다이어트를 하느라 집 술을 끊었거든. 사실은 다이어트는 끝났어. 목표 몸무게를 도달했고, 밥을 먹고 술을 마셔도 몸무게 앞자리가 바뀌지 않는 쾌거를 이루었어. 그런데도 술을 마시지 않고 저녁을 먹지 않는 건 그냥 귀찮아서야. 나는 기분이 안좋으면 제일 먼저 입맛이 떨어지거든.(부럽지?ㅋㅋ)
오늘은 하루 종일 비 소식이 있어, 들뜬 마음으로 눈을 떴는데 눈뜨니까 비 그쳤어. 젠장.
ps. 안 바쁠 때 답장 좀.
비가 뚝 그쳐버린 금요일 밤 연남동에서 도연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