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에서 강원도로>
*편지를 읽기 전 참고할 것:
본 편지는 무려 두 달 전에 써 내려간 것이며... 그때 마무리 짓지 못해 저장해 두고는 두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다시 편지를 마무리한다는 점... 그리하여 본 편지는 지난 3월의 시점에서 작성된 것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연에게,
얼마 만에 너에게 편지를 띄우는지, 세월은 참 화살처럼 지나간다.
마지막에 너와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었는지 찬찬히 다시 읽어 내려가며..
그 사이 너는 또 하나의 꿈을 이루었구나, 하고 생각했어. 바로 너의 신혼여행 말이야. ㅎㅎ
아프리카로의 신혼여행을 꿈꿔왔고, 이제 그걸 현실화할 계획을 준비 중이라던 너의 마지막 편지.
그리고 답장을 쓰고 있는 지금, 그 사이 고작 추운 한 계절이 지나갔을 뿐인데 넌 이미 이루어냈구나.
그렇다면, 아마도 네가 다음으로 이루어낼 일은, 아마도 멕시코 망자의 날을 구경하고 중남미로 넘어오는 여행이 될 것 같구나. 호호호
난 한국에 갔다가,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온 지 이제 꼭 한 달이 되었어.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난 얼마나 이곳 과테말라를 그리워했는지 몰라. 한국에서 살던 15년 동안 한국만큼 재밌는 곳은 없다고 생각하며(그도 그럴 것이 결혼 전의 나는, 닭발, 족발, 국밥과 더불어 마음껏 마셔대며 살았으니 말이다) 살았었는데, 돌아간 그곳은 나에겐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았어. 모든 사람들의 행동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지. 불필요한 행동 같은 건 조금도 없이, 모든 일이 착착 정해진 매뉴얼처럼 흘러갔어. 역시 한국은 뭐든 빠르고 정확해. 편리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 그렇지만 나는 어쩐지 숨이 차는 느낌이었어. 어딜 가나 사람들이 많았고(서울의 인구밀도는 정말이지 어딜 가나 사람에 치이더구나), 스타벅스에서 메뉴판을 보며 고민을 하고 있으면 뒷사람 눈치가 보였고, 그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허둥지둥하는 내 꼴이 ㅋㅋㅋㅋ 참나... 얼마쯤 우습더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 모든 업무는 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데.. 한국에서 받은 어플만 한 페이지라서 폴더 하나에 묶어놨잖아. ㅋㅋㅋㅋ 시호 어린이집 신청할 때도.. "종이 신청서는 안 받으시나요..?"라고 물었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웠던 가족들, 친구들을 만났다는 것. 그리고 초밥 런치세트가 가성비가 오지고 오져 증말 내가 이렇게 상당한 퀄리티의 초밥을 단돈, 만 오천 원을 내고 먹어도 되는 것인가. 게다가 우동과 샐러드도 곁들여 주는 런치세트라니.. 그건 사실, 엄마 아빠를 4년 만에 본 것과 비등한 감격이 있었다. ㅋㅋㅋㅋㅋㅋ그뿐이니, 불향 가득한 주꾸미 볶음을 시켰더니 세트메뉴라며 새우튀김과 묵사발이 함께 나오는 풍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 그래 그런 것들을 생각하니 한국은 여전히 매력적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마도 이것들을 위해 나는 또 한국을 방문할 테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헤헤헤. 한국은 정말이지 미식의 나라였다구. 네가 사주었던 오마카세 초밥도, 간장게장이 나오던 한정식도.. 정말 다 맛있었어.!!
그러고 보니 있지, 도연아. 지금 이 편지를 쓰면서 문득 떠올랐는데.. 너는 늘 나에게 밥을 사준 것 같아.
내가 한국에 살 적엔 "공무원 월급도 적은데, 내가 낼게!"라며 네가 밥을 샀고, 이번엔 "몇 년 만에 만났는데~"라며 근사한 대접을 받았네.
네가 과테말라에 올 즈음엔, 내가 프로까진 아니어도 '세미 프로 호스트'가 되어있을 거야. 작년에 파나마에서 친구가 다녀갔고, 올 6월에도 한국에서 친구가 오거든! 너는 세 번째 게스트가 될 것 같으니.. 세미 프로쯤 되어 너에게 과테말라 곳곳의 매력과 맛있는 식사들,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하겠어!
아.. 정말이지, 글이라고는 카톡이나 whatsapp 따위의 인스턴트 메시지밖에 쓰질 않으니..
편지가 엉망진창인 느낌이 드는구나. 껄껄껄
여기까지가 나의 한국 방문 후기였어.
저 편지를 쓴 시점에서 두 달을 더 지나온 지금의 나는, 한국을 언제 다녀왔나 싶게 또다시 이곳의 일상에서 바쁘면서도 마음은 여유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어. 시호는 한국에 다녀온 후 한국말이 유창해진(?) 반면(한국 어학연수가 아주 성공적이었다구 ㅎㅎ), 홀딱 까먹은 스페인어를 이제 다시 편하게 말하기 시작했어. 이곳의 하늘은 여전히 파랗지만 이상기온의 영향 때문인지 우기가 제대로 시작되지 않고 있어서 환경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는 요즘이야.
새로운 집필실이 마음에 든다는 너의 인스타 스토리를 보았어. 좋은 곳에서 좋은 에너지 받아 재밌는 드라마가 또 한 편 만들어지겠구나. 집필하느라 바쁠 테지만.. 잠시 한숨 돌리고 싶을 때 답장해 주렴!
과테말라에서 채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