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배낭 여행을 떠나기 전에 비행기를 타본 적은 딱 두 번이었다. 중학생 무렵, 친척 댁에 홀로 찾아갔을 적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여행 다니는 것을 참 좋아했다. 엄마는 날 가진 채 전라도 어드메 섬까지 갔다고 할 정도니 말 다했다. 동생과 나는 해외는 아니지만, 방학만 되면 동해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거제도에서 배를 탔고 서해안의 어느 갯벌에서 조개를 캐어 된장국을 끓였다. 이로써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언제나 여행에 대한 환상과 갈증으로 목이 말라 있었고 대학생이 되고 난 후에는 머나먼 유럽으로 꼭 배낭여행을 떠나리라 하는 거창하고도 성대한 목표를 세웠다.
나의 원대한 목표는 순조롭게 계획되고 있었다. 배낭여행이었으므로 자금은 최대한 아껴야 했다. 그동안 깨알같이 모은 돈을 탈탈 털어 호스텔을 예약하고 기차와 저가 항공을 예매했다. 그렇지만, 절대 이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는 최후의 보루는 있었다. 바로 음식이었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여행의 목적의 절반은 나라들의 별미를 맛보기 위한 것이었다. 영국을 기점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남부 그리고 이색적인 도시이자 여행자들의 성지인 모로코의 카사블랑카까지. 루트를 계획했고 짐을 쌌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영국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에다 몸을 실었다.
그러나 내 장렬한 꿈은 시간이 지날수록, 여행 일정을 소화할수록 와장창 깨져버렸다. 언젠가 근속 15주년을 맞아 중국으로 부부동반 여행을 갔던 엄마는 돌아와서는 늘 그렇게 말했다. 한국사람은 한국 음식을 먹어야 해. 같은 아시아인데도 음식이 입에 안 맞아서 고생했었다. 북경 오리? 어우 얘, 그 비싼 걸 입에 대지도 못했다. 쫄쫄 굶다가 호텔에서 라면 끓여 먹은 게 어찌나 맛있던지. 그러다 마지막 날에 한식당엘 데려갔는데 드디어 살 것 같더라. 나는 엄마의 말에 ‘엄마! 외국 나가서까지 한식 먹는 건 좀 아니지. 난 무조건 현지 음식만 먹을 거야.’ 그러면서 그때 나는 엄마를 비웃었었는데. 그 대가를 제대로 치렀다.
처음에는 그야말로 온 세상이 이뻐보였다. 저렴하게 잡은 런던의 한 호스텔에서는 2.5파운드만 내면 아침으로 촉촉하고 노릇한 크루아상과 함께 시리얼, 바나나, 오렌지 등을 매일 마음껏 먹을 수 있었고 식빵에 발라먹을 수 있는 잼과 버터 종류가 넘쳤다. 별세계에 온 듯한 기분으로 매일 아침을 크루아상에 시리얼, 후식으로 과일까지 든든하게 먹고 여정을 시작했다. 점심과 저녁도 빵이나 스파게티, 아니면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맛보았다. 런던에서는 일본의 라멘과 스시, 중국의 완탕면부터 그리스식 샐러드는 물론 저 멀리 멕시코 타코까지 접할 수 있는 맛의 천국이었으니까.
그런데 2주간의 영국 일정 중 절반인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문제가 터졌다. 갑작스레 배탈이 나 일정을 멈추고 호스텔에 종일 누워 있어야 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 입이 까끌했다. 죽이나 뜨끈한 국물이라도 먹고 싶은데, 맛의 천국 런던에서 그런 건 찾아볼 수 없었다. 한식당이 있긴 했지만 메뉴에 죽이 포함된 곳은 드물거나 호스텔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당장에 버스나 지하철을 타기만 하면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워서 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호스텔에서는 늘 차가운 음식뿐이었다. 따뜻한 음식이라곤 매일 아침 갓 구워나온 크루아상이 전부였는데, 그게 그렇게 미워 보일 수가 없었다. 보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렸으니까.
크루아상 줄까? 느지막이 나온 내게 직원이 물었다. 괜찮다고 말한 후 나는 요플레 하나를 집어 호스텔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타이밍 좋게 엄마로부터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아침은 잘 먹고 있느냐는 말에 픽, 눈물이 터져 나왔다. 여태 일부러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던 한국말로 속이 안 좋다, 배가 아프다, 그냥 이대로 집에 가고 싶다…. 마구 투정을 부렸다. 집에서 가져온 소화제를 벌써 다 먹었단 말에 엄마의 잔소리를 따갑도록 들어야만 했다. ‘그러게 한 끼는 꼭 한식으로 먹으라니까!’ 나는 어릴 때부터 찬 음식이나 밀가루를 많이 먹으면 배앓이를 했었는데 일주일 동안 그런 것만 먹고 다녔으니 속이 탈이 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얘, 한인 마트 가서 누룽지 사서 끓여 먹어. 너 배 아플 때마다 누룽지 푹 끓여서 먹이면 괜찮아졌었어.'
엄마와의 통화를 마치고 부랴부랴 한인 마트를 검색했다. 여행하는 동안 절대 찾지 않으리라 결심하였건만. 일단 살고 봐야 했으므로 숙소에서 제일 가까운 한인 마트로 향했다.
"저… 혹시, 누룽지 있을까요?"
전 세계인들이 빼곡하게, 분주하게 오가는 런던 한복판에서 가게 문을 열자, 케이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낯선 곳에서 처음 느낀 익숙함과 편안함.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누룽지요? 누룽지는 없는데…. 아! 잠깐 이쪽으로 와보실래요?"
워킹 홀리데이로 왔다던 한국인 언니가(이 사건을 계기로 친해졌다) 건네준 것은 다름 아닌 컵라면 용기에 들어있는 인스턴트 누룽지였다. 컵 누룽지를 받아들고 눈물을 뚝뚝 흘리자, 언니는 난처하다는 듯이 이것밖에 없어서 미안하다며 다음번 주문 때 신청해놓겠다 했다. 나는 괜찮다고, 여행 온 거라 얼마 뒤면 떠난다고 대답하려 했지만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겨우 진정하고 호스텔로 돌아와 식당에서 커피포트에 물을 끓였다. 적당히 물을 붓고 누룽지가 익기를 기다렸다. 구수한 냄새가 퍼지자, 식당 직원인 호세가 그게 뭐냐고 물었다. 나는 서툰 영어로 누룽지에 대해 말하고 이걸 먹는 이유를 알려주었다. 호세가 사람 좋은 웃음으로, 그리고 그 역시 어색한 억양으로 답했다.
"나도 고향이 그리우면 먹는 게 있는데, 너 덕에 생각난 김에 오늘 해 먹어야겠다. 아무튼, 너 그래서 아팠나 보다. 고향이 그리워서."
스페인 남부의 소도시 출신인 호세 역시 영국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온 친구였다. 그도 외로울 때마다 먹는 음식이 있다고 했는데 이름은 없다고 그랬다. 어머니와 본인만 만들 수 있다나. 호세는 내 덕분에 본인도 오늘 간만에 고향음식을 해먹어야겠다고 하더니 웃으며 식당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가 가고, 누룽지 뚜껑을 천천히 열었다. 뜨끈한 국물을 마시고 흐물흐물 잘 익은 누룽지를 숟가락으로 퍼먹었다. 그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것이 무색하리만큼 꿀떡꿀떡 잘 넘어갔다.
금세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내고 나니 머쓱해졌다. 스물 몇 해를 나고 자란 곳의 음식을 한 달 넘게 먹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은 미련한 짓이었음을 뼈저리게 알게 된 것이다. 여행 동안 아무리 멋지고 대단한 광경과 유적지를 봐도 가슴 저 한편에서 올라오는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누룽지를 먹을 때는 적어도 외롭거나 힘들지 않았다. 서툰 영어로 의사소통이 잘 안 돼 진이 빠졌을 때, 낯선 상황에 눈물이 찔끔 나도록 당황했을 때, 초행길이라 길을 잃어 식은땀 뻘뻘 흘리며 헤맸을 때…. 그때마다 나는 숙소로 돌아오면 쟁여둔 누룽지를 끓여 먹었다. 그러면 고생했던 하루의 피로가 풀리고 다시 다음 날을 준비할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잘 구운 크루아상보다 내게 어울리는 건 역시 누룽지라며 구수한 국물을 쭉 들이켰던 그때가 떠오른다.
코로나로 국외 여행길이 막히면서 이전 여행들을 되새겨 보는 중인데, 스스로 모든 걸 준비해 홀로 훌쩍 떠난 이 첫 해외여행이 다음 여행들의 길라잡이가 되어주었으므로 이 여행의 에피소드 한 편을 짧은 글로 남겨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