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은 '실화이냐, 아니냐' 는 논쟁뿐 아니라 '마약'이라는 새로운 소재로 K- 드라마의 지평을 넓혔다는 점, 하정우, 황정민, 조우진, 박해수 등 쟁쟁한 연기파 배우들의 라인업으로 '오징어 게임'을 잇는 기대작으로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작품이다.
스틸컷=수리남
사실 넷플릭스에서 '마약왕' 스토리를 다루기에는 <나르코스>, <브레이킹 배드>와 같은 고전 급에 속하는 인기작품들이 수두룩하기에 어느 정도 미흡한 점도 있다. 하지만, 얼핏 들어도 어느 지역인지도 모르는 생경한 '수리남'에서 한국인 마약 대부가 실세였다는 점, 이 마약사범을 잡기위해 국정원이 민간인 K씨와 협력해 검거했다는 실화가 바탕이라는 점은, '마약왕' 소재의 드라마가 우세한 미주, 유럽권에서 '아시아', '한국'이라는 키워드를 끼워넣는, K-드라마의 호기롭고 독특한 도전이 분명하긴 했다.
수리남은 6부작 드라마이다. 남미 국가 수리남의 사이비 목사이자, 마약왕인 전요한(황정민)에게 누명을 쓰고 이를 검거하기 위해 국정원의 언더커버가 되는 한 민간인 사업가 강인구(하정우)의 이야기이다.
<수리남>은 영화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 '공작', '군도' 등을 연출한 윤종빈 감독이 연출하였는데, 보는 내내 윤종빈 감독의 그간 작품과 인물 캐릭터가 겹쳐 보이는 면이 왕왕 있다. 하지만 언더커버, 첩보, 사이비 종교, 국정원, 단란주점 등의 소재와 '마약', 그리고 '수리남' 등의 이질적이고 흥미로운 지명은 같은 듯 다르게, 긴장감있는 전개와 흡입력있는 연기, 치밀한 각본으로 극의 몰입도를 높여나간다.
2012년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최익현(최민식)의 모습이 어찌된 일인지 '새끼들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나', K-가장의 무게를 짊어진 강인구(하정우)의 모습과 얼핏 닮기도 했다.
K-가장 강인구! 아버지라서 도대체 어디까지 할 수 있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어릴 적 그나마 배운 것은 유도, 낮에는 산에서 막걸리장사, 밤에는 유흥주점, 기술을 배워 카센터 일까지 하는 강인구는,
자신의 아버지가 베트남전도 참전했고 열심히 일했지만 가난한 탓에 일만 하다가 자식과 외식도 한 번 못해 본 채 비명횡사한 아버지를 목도한 후 일찍 가정을 꾸려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려 한다. 그런데 결혼하려는 방식이 자기 좋다던 여자들에게 전화를 돌려 프로포즈를 하는 방식이다(이런 방식이 인구라는 캐릭터를 이해하기에 좀 엉뚱하긴 했다, 재밌는 것은 이것도 실화라는 점을 인터뷰를 통해 확인했다.)
인구는 결국 결혼에 골인하는데, 단칸방부터 시작해 아내(추자현)와 토끼같은 자식 둘을 먹여살리기 위해 인구는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간다. 변두리의 단란 주점을 인수하고, 기술을 배워 카센타도 하고 미군부대 납품도 하고 열심히 살지만 어찌된 일인지 '자신에게서 가난하고 일만하던 아버지의 모습'만 보이고 삶은 여유가 없이 빠듯하기만 하다.
그래서, 홍어! 홍어가 문제의 시작이었다!
인구에게 있어 홍어는, 아버지의 술안주라는 기억과 동시에 '한국에서는 비싸서 못먹지만 남미의 어느 나라에서는 못먹고 버리는 음식'이라 '떼 돈을 벌 수 있다'는 친구 응수(현봉식)의 솔깃한 제안에 일확천금을 위해 '수리남 행' 비행기를 타게 된다.
그래서, 그 환상적인 나라 '수리남'은 어디?
영화에서 수리남은 남미의 작은 나라, 전국민의 3/4가 마약 관련 일과 연관돼 있는 무법지대로 묘사되어 있다. 오호라, 인구가 가서보니 그 말이 정말 맞다. 수리남에서 홍어는 정말 줘도 안먹는다. 값 싼 노동력, 원재료 비 한국으로 팔면 3배나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이다. 쾌재를 부르며 홍어 장사를 하는 인구와 응수는 신이 났지만 이것도 잠시, 돈 냄새를 맡고 똥파리들이 꼬인다. 처음엔 군인들이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뜯더니 설상가상으로 차이나타운 갱단 첸진(장첸)무리가 막대한 돈을 요구한다.
아내의 성화에, 현지 한인교회라도 나가게 된 인구는 전요한(황정민) 목사를 만나게 된다. 어찌된 일인지 전 목사는 중국 갱단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오히려 몇 마디 대화로 첸진의 돈 요구도 없던 일도 만들어 버린다. 인구는 전 목사를 은인으로 여긴다.
스티럿=수리남
그러던 어느 날, 한국으로 가는 홍어를 실은 배에 '코카인'이 발견돼 인구는 마약 밀매 혐의로 교도소로 가게 된다. 자신의 홍어에 왜 마약이 들어있는지 알 수도 없고 교도소 생활이 두렵기만 한 인구 앞에 최창호(박해수)가 나타난다.
알고보니 그는 국정원 팀장이었고 전 목사가 수리남의 마약 대부이니 검거작전에 인구가 언더커버가 되어 협력하라는 것이었다. 최창환 국정원 팀장은 검거작전에 대한 댓가로 인구에게 5억을 주겠다고 하고 요한은 이를 수락한다.
누구도 믿지 못하는 의심많은 마약대부, 사이비 목사 전요환. 그에게 접근하여 솔깃하게 제안해 환심을 사내려는 강인구. 그 두 남자의 심리전과 액션신이 긴장감 넘친다.
게다가 후반부 '극중 반전'이 꽤 나쁘지 않았고 보증된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 속에 실화인지 각색인지 구분되지 않는 재미있는 스토리가 그 빛을 발하게 된다. '속여야 사는, 속으면 죽는, 그 속이려는 자들의 구도'를 치밀하게, 팽팽하게 연출하면서 따라가는 내내 캐릭터들의 강한 색깔과 아우라로 관객들의 집중도를 끝까지 유지시킨다.
영화에서 말하는 중독은 마약, 종교, 그리고 '돈'
이 영화의 최대 악의 축은 명실상부, 마약대부이자 사이비 목사인 전요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전 목사는 강인구에게서 각별한 마음을 느낀다. 박찬호 친필 싸인 야구공을 강인구에게 건내주고(나중에 이것은 진짜기 때문에 돌려받고 싶다고 함), 자신에게서 보이는 '돈에 대한 집착'과 광기를 강인구에게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돈을 만져야 혈액순환이 된다'든지 하는 강인구의 대사와 전 목사가 마약왕국 청사진을 보여주며 인구에게 오른팔이 되어 사업제안을 한다든지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극중에서 강인구 역시 돈 욕심 때문에 잘못된 길로 가려는, 어느 정도 비꺽거릴 수 있는 요소는 충분했다.
하지만, 인구는 자신이 아버지임을 잊지 않았다. 비오는 날 자신을 구해달라며 뛰어온 소녀는 마약에 중독되어 있었고 그 가정은 다 파괴되어 있었다. 인구는 자기 딸 같은 어린 아이를 보고 다시 전목사의 악랄함을 상기하고 마음을 다잡게 된다.
극중 강인구는 K-가장으로서,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어디까지 할 수 있나를 보여주었다. 어릴적 배운 유도는 인구가 어려운 순간마다 '엎어치기'기술로 타파하게 한다. 인구는 자신의 목숨이 위협당하는 상황에서도 장사꾼 재치로 살아남는다, (열악한 치안의 수리남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민간인인데 총을 들고 마약대부를 쫒는 총격전에, 차 추격전까지 한다는 사실이 얼핏 'K-아버지'를 가장한 '히어로'물을 보는 것 같긴 하지만 '전 요한이 혹시 살아남아 한국의 자기 가족을 해치지 않을까'하는 절박함 때문일까, 보는 내내 실로 대단한 활약을 보여주긴 했다.
스틸컷=수리남
전요한, 강인구. 두 사람의 돈 중독 DNA는 같아 보인다. 그것은 전 목사가 강인구에게 건내준 친필 싸인 야구공에서 얼핏 들여다 볼 수 있다. 두 남자는 어쩌면 아메리칸 드림, 아니 수리남 드림을 꿈꾸고 수리남에 갔다. '한 탕 거대하게 벌려는 돈 욕심! ' 두 남자가 처음엔 돈에 대한 집착이 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끝내 그 둘의 종착역이 다른 것은, 그래도 인구를 붙잡는 '가족이라는 끈, K-아버지'라는 '짐'때문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말이다.
강인구를 보면서 '민간인이 저렇게까지 한다고? 해외에서 몇 년동안 국정원을 돕는다고?'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 거리게 하는 장면이 나오긴 한다. 하지만 결말 즈음하여, 인구가 최창호(박해수) 국정원 팀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는데, 인구가 '언제까지 이 이야기를 비밀로 해야 하는가'를 상의한다.
인구는 자기 자식에게 '아버지가 옛날에 말이야, 국정원이랑 작전을 같이 했어.'라고 말해주겠다며 국정원이 제시한 잔금 개념의 '단란주점'을 안받겠다고 한다. 어쩌면 강인구를 'K-아버지, K-가장, 총을 들고서라도 마약왕을 잡는 민간인 히어로'로 만든 것은, 다시 재정의된 강인구의 가족애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일확천금으로 가족을 편하게 하려는 한탕주의', 인구가 고초를 겪으면서 깨달은 가족애는 '돈 보다 더 소중한 것은 가족과 함께 있고 소중하고 평범한 일상'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인터넷에서 <수리남>의 '야구공'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다. 어쩌면 <시즌2>를 이어갈 열린 결말이 아닌가하는 것이 그것이다. 체포된 마약왕 전요환이 자신의 야구공을 돌려달라는 말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야구공 안에 '시즌2'를 이어갈 어떤 비밀 스러운 것이 있을지, 없을지 그것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전요한의 강인구에 대한 마음은 진심이었다'라는 상징물이 더 유력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기운다. <수리남>이 범죄오락물의 정석으로 '웰메이드'한 작품은 틀림없다. '마약왕'을 소재로 한국 드라마의 세계적 도전, 그리고 'K-아버지'라는 차별성. 앞으로 개척하지 못한 미지의 소재까지 K-드라마 마구 도전해 섭렵해 나갔으면 하는 다소 '애국적인' 바람으로 <수리남>리뷰를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