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의도치 않은 일들이 생기지.

나의 감각을 깨우는 예술여행 이야기

by 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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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 AM 10:00]

아침이 되고 눈에 차마 담고 싶지 않았던 거미와 마주했다. 네가 이길까 내가 이길까


[8월 8일 AM 10:10]

아직 자고 있는 말랑이를 두고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냉장고엔 지난번에 두고 간 썩은 야채가 있었다. 냉장고 문을 가만히 그냥 다시 닫았다.


[8월 8일 AM 11:30]

냉장고 문을 다시 열어보았다. 한숨이... 말랑과 마을버스 시간을 알아보고 장을 먼저 보기로 했다. 모자를 쓰고 마당에 나가 사진 한 장 찰칵.


[8월 8일 PM 12:10]

정류장에 시간표가 없어 터벅터벅 교회를 향해 갔다. 뭐라도 알려주겠지-? 그러나 교회 문은 닫혀 있었다. 오, 주여. 옆집 아주머니는 이곳은 오가는 버스가 하루 딱 1대라고 하셨다. 오, 주여. 오전 11시 30분에. 오, 주여.


[8월 8일 PM 12:20]

뜨거운 태양 아래, 말랑과 다시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버스는 없었다. 말랑이 엄지를 척. 들더니 히치하이킹을 하자.라고 말하자마자 흰 트럭이 하나 섰다. wow. 춘양 터미널로 가시는 길이라니, 이 길의 이 방향은 어쩔 수 없이 그곳이 목적지일 수밖에 없는 듯하다. 아저씨는 3만 평 정도에 수박, 약초, 고추를 농사를 짓고 있다 했다. 농부 아저씨 피에르 라비의 책에서 읽었던 기억을 떠올리자면, 1 헥타르면 한 가족이 자급자족할 수 있다 했다. 이 분은 부자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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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 PM 1:20]

춘양 터미널에 내렸다. 하나로 마트에서 장을 봤다. 아저씨가 집까지 다시 데려다준다 했다. 마음속으로 외쳤다. (아싸!) 일주일치 우리 먹거리와 요리할 재료들을 담고 나니 시간이 훅 갔다. 아저씨를 찾아 두리번하니 정미소에 계셨다. 정말 오래된 정미소였다.


[8월 8일 PM 3:00]

집에 오니, 할 일이 가득했다. 자, 우선 사온 재료들을 냉장고에 넣어야 하니, 냉장고를 치워볼까? 삐-삐-삐- 냉장고야 그만 좀 울어주지 않을래? 나도 버려야 할 채소들이 아깝단다. 그렇게 냉장고를 치우던 찰나, 밖에서 비명이 꺄악.


[8월 8일 PM 5:15]

전화를 받던 119가 말했다.

"벌집 출몰 신고가 밀려서 조금 늦게 갑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말랑과 나는 웃고야 말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는 이런 일로 119를 불러도 되는 건가 근심걱정이었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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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동해서 온 두 분의 구급대원은 양 손에 두 개의 스프레이를 들고 드라마 도깨비처럼 마당을 걸어 들어왔다. 멀치감치 바라보고 있던 우리는 후두두두 떨어지는 벌과 도망가는 벌과 우리 옆에 떨어져 몸을 바들바들 떨던 벌에게 미안했다.


[8월 8일 PM 8:00]

냉장고와 부엌 청소를 마치고 나서야 저녁을, 그것도 밖에서, 선선한 바람맞으며, 감자전과 깻잎조림과 뭇국을 의도했으나 된장국이 되어버린 국과 꼬들꼬들 밥과 서울에서 가져온 LED초들과. 서울러들은 지금쯤 열대야에 지쳐가겠지만, 여긴 너무 선선하다~하며 이렇게 좋아도 되나 싶어요~ 노래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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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 PM 10:25]

방에 나란히 앉아 다른 일들에 치여 해결 짓지 못하고 있는 여타 일들을 하나씩 꺼내 노트북을 두드린다. 나는 브런치와 예산안을 쓰고, 말랑은 그와 대화한다.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고 말랑이 어제 말했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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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근데 그러다 내 손가락 크기만한 나방이 방에 들어왔다. 나는 작은 벌레는 뭐, 근데 큰 거는 무섭다. 벌벌벌. 나는 그 아이를 피해 펄쩍펄쩍 뛰다가 말랑의 비웃음을 듣고 나서야 방 밖을 나가 있었다. 심호흡을 하다가 말랑은 은그리슬쩌그 나방을 방 밖으로 내보냈다.


히치하이킹, 벌과 119, 손가락 크기만한 나방.

언제나 의도치 않은 일들이 생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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