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삼국지>, 매력적인 인물을 만드는 방법

by 체스넛

<삼국지>가 수천 년간 사랑받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장대한 전투와 치밀한 서사도 훌륭하지만, 그 중심에는 단연 '인물'이 있습니다. 후한 말기라는 대혼란기를 배경으로 수많은 군상이 등장하고 스러지는 과정은 그 자체로 거대한 인간학 교과서와 같습니다.


오늘은 이문열 선생님께서 평역한 소설 <삼국지>를 중심으로, 작가가 시리즈 초반부(1~2권)에서 어떻게 매력적이고 입체적인 인물을 조성하는지 그 설계 방식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문열 삼국지 커버.jpg


인물의 시작

매력적인 스토리는 주인공의 '초기 상태'를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삼국지> 1권의 초반부(황건적의 난 이전)는 각 인물이 일상 속에서 어떤 됨됨이를 품고 있는지, 망해가는 세상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지 조명합니다.


유비: 돗자리를 짜며 남몰래 원대한 야망을 삭이는 청년

조조: 부패한 한실을 바로잡으려 분투하는 열혈 충신

손견: 오지의 치안을 바로잡는 현명하고 용맹한 장수

원소: 가문의 명성을 등에 업은, 무결해 보이는 귀족


사건

이들의 운명을 흔드는 첫 번째 사건은 '황건적의 난'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인물들이 이 큰 사건 하나로 갑자기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대 콘텐츠는 단 한 번의 자극으로 인물을 급변시키곤 하지만, 현실의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 사건이 누적되며 가치관이 서서히 이동하죠. 작가는 황건적이라는 혼란을 통해 인물들의 심리에 미세한 균열을 냅니다. 이러한 '서서히 나타나는 변화'는 캐릭터에 강력한 사실성을 부여합니다.


본격적인 변화는 두 번째 사건, '동탁의 횡포'에서 임계점을 맞이합니다. 이 시점부터 인물들은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경험합니다.

원소는 반동탁 연합군의 수장이 되지만 별다른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이는 그의 정치적인 이미지에 타격을 줍니다. 손견은 우연히 '옥새'를 손에 쥐게 되고 반동탁군에서 이탈하게 됩니다. 조조는 동탁을 암살하려다가 실패해서 도망가고, 도망가는 과정에서 반인륜적인 죄를 짓게 됩니다. (여백사 사건) 반동탁군의 와해 이후 유비는 형주로 가게 되고 거기서 형주에 대한 통치권을 수여받게 되어 후한말의 주요 군벌로 우뚝 서게 됩니다.


사건 이후의 인물

권이 끝날 때쯤, 독자는 1권에서 보았던 청년들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유비: 남몰래 야망을 품은 청년 → 고위 공직자 (권력자)

조조: 한실의 충신 → 매정한 군벌

손견: 현명하고 용맹한 장수 → 욕망에 눈이 먼 배신자

원소: 유능해 보이는 귀족 → 무능한 금수저


독자는 이렇게 변화된 인물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몰락하는지를 궁금해하며 뒷내용을 읽게 됩니다.


삼국지의 초반부가 매력적인 이유는 사건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극적인 변화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매력적인 이야기의 필수조건은 사건을 통해서 등장인물의 내적 본성에 변화를 주고, 그에게 굴곡을 줘서 그가 변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1권에서 보여진 모습과 2권 끝날 때쯤의 인물들의 모습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입체적으로 느껴지고 이야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마치며

"사람의 진정한 성격은 압박 속에서 내리는 선택으로 증명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우리 역시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삶의 근간을 뒤흔드는 문명적 '대혼란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제 자신을 '변화에 유연하고 진보적인 사람'이라 믿어왔습니다. 기술의 발전을 무조건적 선(善)으로 여겼죠. 하지만 막상 기술이 삶을 침범해오는 속도를 마주하니, 두려움에 뒷걸음질 치는 제 낯선 얼굴을 발견합니다. 삼국지의 인물들이 사건을 겪으며 본성을 드러냈듯, 저 또한 이 거대한 압박 속에서 제 진짜 캐릭터를 확인하고 있는 셈입니다.


여러분은 이 혼란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계시나요?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성격대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예상치 못한 본성에 당황하고 계시는지요? 부디 이 혼란의 끝에서 우리 모두가 각자 원하는 목표점에 도달해 있기를, 동료 인간으로서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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