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나>, 감동을 어떻게 빌드업할까?

by 체스넛

*영화 <논나(2025)>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이니,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꼭 관람하시길 권합니다.


논나(Nonna). 이탈리아어로 '할머니'를 뜻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가 단순한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리움'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제작진이 이 '그리움'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감동을 쌓아 올리는지(빌드업), 그 구조를 제 나름대로 분석해 보았습니다. 거창한 이론보다는 저의 짧은 소견으로 가볍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1. 결핍

영화는 주인공 조(Joe)의 어머니 장례식으로 시작합니다. 모든 사건의 발단은 어머니와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입니다. 저는 이 '그리움'이 주인공의 결핍을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리움'이란 감정은 아래처럼 정의하고 싶습니다.

어떤 존재가 주던 '좋음(Goodness)'을 잃어버렸을 때 느끼는 감정

주인공은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어머니가 주던 그 '무언가'를 상실했고, 깊은 결핍 상태에 빠집니다. 영화는 조의 어린 시절을 짧게 보여줄 뿐, 그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잃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상식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유일한 가족이 주던 '절대적인 안정감'이 아니었을까 짐작할 뿐입니다.

스크린샷 2026-01-10 오후 6.46.21.png 주인공 조의 어머니(오른쪽)와 할머니(왼쪽)


2. 결핍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

조는 이 결핍을 채우기 위해 두 분의 요리를 직접 만들며 추억을 소환합니다. 다른 음식은 기억을 더듬어 흉내 낼 수 있었지만, 유독 '그레이비소스'만큼은 추억 속 그 맛이 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조는 그레이비를 다시 맛보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두 분을 기리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탈리아 할머니들이 요리하는 식당을 열기로 결심합니다. 제3자가 보기엔 무모해 보이지만, 이는 주인공이 그리움을 해소하기 위해 찾아낸 자신만의 생존 방식이었을 겁니다. (할머니들의 유쾌한 '케미'는 영화의 백미이니 직접 확인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식당.png 주인공 조(뒷줄)와 그가 고용한 '논나' 네 사람(앞줄)


3. 노력의 좌절

하지만 애석하게도 식당은 경영난을 겪고, 조는 폐업 위기에 처합니다. 그는 할머니들에게 무거운 소식을 전한 뒤 홀로 가게에 남습니다. 그리고 가방에 넣어두었던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편지를 꺼냅니다.

그는 왜 이제야 편지를 열었을까요? 아마 어머니의 마지막 메세지를 읽는 순간, 그녀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영원히 인정해야 할 것 같아 두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추모를 위한 식당마저 실패하자, 조는 자신의 방식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미련 없이 어머니를 보내주기 위해 편지를 뜯었다고 생각합니다.


4. 아이러니와 위로

아이러니하게도, 그 편지 안에는 조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레이비 레시피'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레시피는 단순히 요리법을 넘어섭니다. 물론 레시피를 찾았다고 해서 경제적 결핍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편지는 주인공과 관객에게 큰 위로로 다가옵니다. 실제로 영화를 보며 좀처럼 울지 않는 제 아내조차 눈물을 터뜨렸고, 저 또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우리는 왜 이 장면에서 '감동'을 느꼈을까요? 감동의 원천은 다양하겠지만, 저는 이 작품이 의도한 감동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상실된 줄 알았던 세계가 여전히 나를 지키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

주인공은 어머니의 부재와 함께 자신의 세계도 무너졌다고(결핍) 믿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편지와 레시피를 통해, 자신이 없는 세상에서도 아들이 밥을 굶지 않기를, 그 따뜻한 그레이비소스로 위로받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내가 무너져 내린 가장 비참한 순간에도, 어머니의 사랑은 시공간을 넘어 여전히 나를 받치고 있었던 겁니다. 결국 우리(관객)가 느낀 뜨거운 감정은, 그 변치 않는 마음에 대한 깊은 안도감이 아니었을까요.


마치며

제작진은 이 마지막 '위로'의 순간을 위해 서사를 나름대로 탄탄하게 쌓아 올렸습니다. 주인공을 깊은 결핍에 빠뜨리고, 그에 이입한 관객이 함께 좌절감을 맛보게 한 뒤, 가장 밑바닥에서 어머니의 편지로 카타르시스를 터뜨리도록 설계한 것이죠.

이 글은 전문 평론이 아니기에 별점을 매기진 않겠습니다. 다만, 누군가가 그리운 날이라면 꼭 한번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밤, <논나>를 보며 가족을 추억해 보시길 바랍니다.

주인공.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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