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하얼빈>, '결함'으로 이야기를 이끄는 방법

by 체스넛

안중근 의사의 생애는 이미 정해진 결말이 존재하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런 서사를 설계할 때 가장 큰 관건은 모두가 아는 그 엔딩까지 독자를 어떻게 몰입시켜 이끌고 갈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안중근 의사를 다룬 작품 중에서 제가 인상 깊게 봤던 것은 2개입니다. 하나는 우민호 감독의 2024년 영화 <하얼빈>이고, 다른 하나는 김훈 작가의 2022년 동명 소설 <하얼빈>입니다. 영화가 안중근의 영웅적 변모와 서스펜스, 액션에 집중했다면, 소설은 그를 영웅 이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 조명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소설 속 안중근은 영화보다 훨씬 많은 '결함'을 가진 인물로 보입니다. 비단 안중근뿐만 아니라 이토 히로부미와 주변 인물들의 결함까지 부각됩니다. 저는 김훈 작가가 이 인간적인 결함을 통해 어떻게 이야기를 구축했는지 그 방법에 주목해 보고자 합니다.



하마르티아(Hamartia)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하마르티아'를 언급했습니다. 이는 주인공의 비극적 결함이나 판단 착오, 혹은 실수를 의미하며 결국 주인공을 파멸로 이끄는 원인이 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요소가 주인공만의 전유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주변 인물들 또한 각자의 결함으로 인해 비극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니까요. 비극에서 이 결함이 후반부에 어떻게 작용하느냐가 작품의 문학적 밀도를 결정하곤 합니다.


소설 <하얼빈>은 이토 히로부미, 순종과 황태자 이은, 그리고 천주교 신부 빌렘과 마텔 등 다양한 시선으로 시대상과 안중근의 의거를 해석합니다. 특히 이토 히로부미의 묘사가 흥미롭습니다. 작품 속 이토는 단순한 악마가 아닙니다. 그의 사고방식은 오히려 현대인조차 고개를 끄덕일 만큼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토를 비롯한 일제 신민들의 치명적인 결함은 바로 '오만한 선민사상'이었습니다. 그들은 조선인을 오직 계몽해야 할 무지몽매한 대상으로만 보았습니다. 그렇기에 안중근과 우덕순의 살해 동기를 끝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계몽 대상인 조선인이 어떻게 정치적 자아를 가질 수 있는가?"라는 편견이 그들의 눈을 가렸고, 이 '인식의 결함'은 결국 이토를 파멸(죽음)로 이끄는 결정적 복선이 됩니다.


주인공 안중근 역시 이 결함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소설은 천주교인으로서 안중근이 느끼는 고뇌를 독자가 숨이 찰 정도로 집요하게 묘사합니다. 이토를 죽여야만 하는 명분과 살인이라는 죄 사이에서 진동하는 그의 '죄책감'이야말로 작가가 설정한 안중근의 결함입니다.

이 결함 때문에 안중근은 때때로 무언가에 홀린 듯한 기행을 보입니다. 거사 전날 우덕순과 함께 이발을 하고 새 옷을 사 입으며 사진을 찍는 장면, 혹은 처자식을 하얼빈으로 불러들이는 의사결정 등은 효율적인 거사 계획의 관점에서 보면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런 빈틈들이 영웅 안중근을 지극히 인간적인 존재로 끌어내립니다. 그의 길은 영웅적 기개가 아니라, 이 결함들이 빚어내는 고통을 묵묵히 견디며 나아가는 가시밭길이었습니다.


소설 <하얼빈>은 인물들의 결함을 부각함으로써 거대한 시대적 비극을 지극히 개인적이고 밀접한 고통으로 치환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겪었던 그 시대의 무게를 가슴으로 체험하고 싶다면, 소설 <하얼빈>을 펼쳐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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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사진: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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