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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인 인간』, 황영일 고운조 류가영 저, 백북하우스

서평 #1

by 체스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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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막막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마다 망설이고, 그 망설임 끝에는 “정말 이게 쓸모 있는 일일까?” 하는, 결코 정답 없는 고통의 회의만이 남았다. 『지적인 인간』을 펼친 것은 놀랍게도 그 타이밍이었다.


책의 첫 장은 실존주의. 익숙하지만 낯선 이름, ‘사르트르’가 있었다. 음, 철학자부터 시작이군. 이번 책은 어떠려나, 나는 이해할 수 있으려나, 그의 깊은 뜻을. 언제나 어려운 문장들은 무책임하게 나를 행동하도록 쪼아대기만 했을 뿐, 머릿속에 남는 것은 없었으니.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지적인 인간』에서 정리된 사르트르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고고하게 서 있는 존재가 아닌, 불안과 책임, 선택의 무게 속에서 흔들리는 인간이었다. “인간은 불안에 의해 비로소 자유를 의식하게 된다”는 파트를 읽는 순간, 그간 나를 괴롭혀온 고통들이 단순한 나약함이 아닌, 오히려 내가 ‘자유로운 존재’이기에 겪는 당연한 감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절벽 끝을 걷는 듯한 불안 —그 불안을 외면하지 말고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감당하라는 말. 누군가 나를 다그치는 것이 아닌, 처음으로 내 불안을 이해하고 설명해주는 목소리를 만난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철학이 삶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온다는 것이 이런 의미인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페이지를 넘기며 만난 다음 장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삶의 복잡한 결을 조명해주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감정과 충동, 불안의 근원을 설명해주었다. 특히 자아가 이드의 충동과 초자아의 죄책감 사이에서 무력감을 느낀다는 설명은, 늘 ‘잘 살아야만 해’라는 압박에 짓눌린 나의 상태를 명확히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내가 나약하거나 비효율적인 사람이라 이리도 어둡고 절망적인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닌, 인간이라는 존재의 구조 자체가 그런 긴장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큰 위안이 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마키아벨리즘과 죄수의 딜레마,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에 관한 장들도 몹시 흥미로웠다. 이 책이 철저히 개인의 내면만이 아닌, 혼자서는 꾸려갈 수 없는 ‘삶’이라는 총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즉, 『지적인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사회 구조 안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약간의 틀을 제시함과 동시에 개인의 도덕적 판단과 현실적인 고민에 관해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출판사의 도서 제공을 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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