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주 0일: 39주가 되자마자 가진통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특히나 밤에 자궁수축이 잦아져서 잠을 깊게 잘 수가 없었다. 그리고 허리 통증이 심해져 집안일을 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런데 숨이 좀 덜 차기 시작했다. 아마 차차가 골반 아래로 내려가며 허리 통증과 자궁수축이 시작되었지만 그 덕에 숨이 덜 찬게 아닐까 싶다.
39주 1일: 아침에 눈을 뜨고 휴대폰을 보고 있는데 주륵 하는 느낌이 들었다. 주륵? 그럴 리 없는데? 싶어서 화장실을 가서 보니 빨간 피가 비치는 분비물이 보였다. 이게 바로 이슬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오후부터는 검붉은 분비물이 손가락 두 개 정도로 크게 나오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양이 많아 병원에 전화했더니 오라는 말을 들었고, 진료 결과 이슬이 맞다고, 아마도 2~3일 내에 진통이 시작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출산이 한 발짝씩 다가오고 있었다.
39주 2일: 계속 배가 아프고 검붉은 분비물이 나왔다. 이건 핏덩어리지 ‘이슬’이라는 이쁜 이름으로 불릴만한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대체 누가 ‘이슬’이라고 이름을 붙인 걸까. 허리가 끊어지게 아픈데 갑자기 냉장고 정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오후 4시부터 밤 10시까지 정신없이 정리를 했다. 냉장고 속 유통기한이 지난 소스와 식재료들을 버리고, 양 옆에 있는 팬트리를 모조리 정리해서 카테고리별로 라벨을 붙였다. 왜인지 모르게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신 놓고 정리를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게 ‘둥지 증후군’이 아니었나 싶었다. 둥지 증후군은 출산을 앞두고 집을 정리하는 현상이라고 하는데 정말 이다음날부터 진통이 시작되었다. 이런 걸 보면 인간도 동물이구나 싶었다.
39주 3일: 새벽 4시에 진통으로 깼다. 배가 뜯어질 것 같이 강한 생리통 같은 통증이 잠깐 왔다가 사라지는 걸 보고 아 이게 진진통이구나 싶었다. 어플로 주기를 재니 주기가 13분이길래 최대한 잠을 자려고 했다. 그러나 진통이 계속 와서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주기는 13분, 9분, 7분 이렇게 줄어들다가 갑자기 28분, 18분 이렇게 늘어났다. 오늘은 아니구나 싶어서 저녁식사를 하러 남편과 나갔고, 식사 내내 진통이 6~7분 주기를 유지하기에 바로 집으로 왔다. 그리고 오후 8시에 진통 주기가 5분이 되어 병원에 전화하니 오라는 말을 듣고 병원으로 향했다. 남편과 나는 코로나 검사를 하고 나는 분만 대기실에서 첫 내진을 받았다. 내진은 생각보다 많이 많이 아팠다. 아직 자궁이 1cm 밖에 열리지 않았으나 자궁 입구가 얇아진 상태라고 집에 가서 더 기다리거나 입원하거나 결정하라고 했다. 그때, 남편이 코로나 양성이 나와 남편은 병원에 있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진통으로 배는 아프고 잠을 못 자서 피곤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다가 병원에 있으면 뭐라도 해줄 것 같아서 입원하기로 했고 남편은 허망한 눈으로 날 쳐다보다가 귀가조치를 당했다. 그러나 나는 이때 이러지 말았어야 했다. 진통은 더 세져만 가는데 내가 진통이 있어 입원실로 가지도 못하고 분만 대기실에 있어야 했다. 말 그대로 분만‘대기실‘이라 베드가 정해져 있지 않으니 자유진통실이라고 불리는 곳에 가서 있다가 간호사가 부르면 베드로 잠깐 가는 식이었다. 보호자가 없는 나는 내 짐을 내가 옮기며 왔다 갔다 했다. 진통이 세지며 고통이 세지는데 특별한 조치는 없었다.
* 여기서부터는 입원해서 진통을 하며 메모장에 적어놨던 걸 복사 후 덧붙였다.
39주 4일:
- 새벽 12:00 진통 주기 3분, 진통 20시간째. 너무 아프다. 이젠 진짜 수술하고 싶다. 이렇게 아픈걸 내가 왜 참아야 하지 싶다. 태동 & 자궁 수축 검사를 해주시는 간호사에게 너무 아프다고 이야기했더니 기계를 보며 내가 진통이 센 편인데 진행 속도가 더디다는 말을 들었다. 적어도 4cm는 되어야 무통약을 틀어줄 수 있다고, 안 그러면 진행이 더 더뎌진다고 하셨다.
- 새벽 2:50 마취과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무통을 달았다. 그러나 내진 결과 2cm여서 아직 무통은 안된다고.. 무통약은 안 틀었지만 테스트 용량 살짝 나온다더니 진짜인지 아주아주 약간 나아졌다. 제발 다 틀어주세요. 옆 베드에 계신 분이 많이 아프신지 크게 신음을 내신다. 나는 아픈 소리를 내고 싶지 않아서 입을 앙다물고 참는데 점점 이게 어렵다. 평소 아픔을 잘 참는 편임에도 이건 진짜 아니다 싶을 만큼 아팠다. 조금씩 눈물이 난다.
- 새벽 4:30 진통이 더 세졌다. 너무 아프다. 아파서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물 난다ㅠ 세상엔 내가 몰라도 되는 고통이 있는 건데 왜 알고자 했을까ㅠ 옆 베드 분은 결국 제왕절개를 하신다고 수술대기실로 가셨다. 나도 무통까지만 좀만 참아보고 아니면 수술하겠다고 해야겠다.
- 새벽 5:30 내진 후 자궁 입구가 좀 더 열려서 드디어 무통약을 틀어주셨다. 진통을 참는 나를 보고 나이트 간호사 세분이서 잘 참는다고 칭찬해 주셨는데 하나도 안 기쁠 만큼 너무너무 아팠다 ㅠ 무통을 틀자마자 혈압이 낮아졌다. 만일 좀 더 낮아지면 무통을 꺼야 한다고 하셨다. 또 양수가 새고 있다면서 항생제를 놔주셨다.
- 아침 6:00 드디어 시작된 무통. 다행히 혈압도 괜찮고 태동검사도 이상 없어서 다시 자유분만실로 운동하러 가라고 하셨다. 깨어있은지 24시간이 지났다. 너무 졸려서 자유 분만실 의자에 앉아서 잤다.
- 아침 8:30 자고 일어나서 짐볼 타는데 무통중임에도 밑이 빠질 것 같은 진통 느껴지기 시작했다. 무통 맞아도 아플 수 있다더니 이건가 싶었다.
- 아침 9:10 내 담당 선생님은 오늘 휴무이셔서 다른 분께서 진료를 봐주신다고 하셨다. 의사 선생님께서 아침 회진 오셔서 내진해 주셨는데 결과는 3cm. 진행이 너무 더뎌서 조금 지켜보다가 촉진제 쓰기로 하자고 하셨다. 점점 더 진통이 세지는데 무통 더 세게도 못하고, 배고픈데 금식이고, 애 언제 나올지도 모르고ㅠ 여기에서 내가 뭐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 아침 10:30 너무 아파서 수술하고 싶다고 결국 말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오셔서 내진했는데 4cm. 선생님께서는 수술하겠다는 나를 설득하기 시작하셨다. 내진해 보니 속골반 괜찮은데 왜 자연분만을 안 한다는 거냐, 이제 다 왔다, 수술은 보호자 없어서 위험하다 등 여러 말을 하셨다. 보호자는 수술실엔 못 들어와도 입구까지는 올 수 있는데 왜 안된다고 한 건지 모르겠다. 화가 나서 엄마께 연락해서 보호자로 와달라고 말씀드리고 촉진제 맞았다. 촉진제 맞으면 더 아프다더니 진짜 다시 또 고통에 손발이 떨리고 울기 시작했다. 아니 이쯤부터 나는 울부짖기 시작했다. 아침 교대로 온 간호사가 정말 불친절했다. 반말을 섞어하면서 말을 하고, 내진을 하면서 내가 아파서 움직이거나 소리 지르는 것에 짜증 내며 ‘엄마, 움직이면 안돼요. 근데 보호자로 올 사람 진짜 없어?’ 이런 식이여서 정말 별로란 생각이 들었다.
- 아침 11:30 가족분만실 이동했다. 10만 원이나 더 주고 가족분만실을 예약했는데 보호자 없이 나 혼자 들어갔다. 진통이 너무 심해서 거의 정신을 놓고 울고 소리 질렀다. 수술하고 싶었다. 가족분만실에 ccm이 틀어져있었는데 그것도 짜증 났다. 난 왜 여기서 왜 이렇게 아파하고 있는 건지.. 현대 의학이 이렇게나 발달했는데도 분만은 이렇게나 고통스러워야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지 않았다. 남편에게 전화하지도 못했다. 내가 너무 울어서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이렇게 아파하는걸 남편이 못 본다는 게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너무 걱정할 테니까.
- 오후 12:30 내진 7cm. 아직도 더뎌서 양수를 터트렸다. 터트리자마자 뜨거운 물이 촤- 내 하반신에 번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가족분만실 들어와서부터는 내 하반신은 다 노출되어 벌어져 있고 사람들이 오가며 만지고 보기 시작했다. 특히 불친절한 간호사가 오가며 짜증스럽게 쳐다보며 말하는 게 너무 싫었다. 벗겨진 상태로 고통 속에서 울부짖는 내 모습에 수치심이 들면서 치욕스러웠다. 몇 시간째 물을 못 마셔 목이 너무 말랐다. 물 좀 달라고 하니 불친절한 간호사가 선심 쓰듯 반컵 가져다주며 ‘엄마 이제 이거 마시면 수술 못해’라고 했다.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입술만 간신히 적셨다. 이 간호사가 내게 불친절한 이유는 내가 보호자도 없이 혼자 있어서일까? 문득 생각했다.
- 오후 12:50 8cm 열려서 힘주기 연습하기 시작했다. 너무 아파서 힘주는 게 오히려 덜 아플 정도였는데 불친절한 간호사가 내 질에 손가락을 넣고 까딱까딱 거리며 회음부쪽으로 쭉쭉 잡아당기며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데 정말 굴욕적이고 서러웠다. 진통에 맞추어 힘주기를 할 때 ‘엄마 힘 잘 주네’ 이 말도 너무 싫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이 상황이 빨리 끝내기 위해 미친 듯이 힘주기 시작했다. 이 굴욕적이고 수치심 드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만 싶었다. 힘주기 연습을 30분 정도 하자 의사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이제 거의 다 되었다는 불친절한 간호사 말에 잠시 대기하다가 갑자기 간호사들이 몇 명 더 들어오고 침대 밑부분이 분리되었다. 내 배를 누를 거라는 말에 오른 갈비뼈에 금 갔다고 대답했던 거 같다. 힘 주라는 말에 힘을 열심히 줬다. 한 3~4번 진통에 맞춰 힘을 주자 뭐라고 하는 말이 들렸다. 정신이 없는데 갑자기 불친절한 간호사가 찰싹찰싹 나를 때리며 ‘엄마 힘 빼, 힘 빼라고’ 했고, 나는 놀라서 힘을 뺐다. 그리고 미끄덩하는 느낌과 함께 철퍽하고 내 가슴팍에 무거운 덩어리가 올려졌다.
- 오후 1:34 차차가 탄생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탯줄을 자르시겠다고 하셨고, 간호사 선생님이 내 가슴에 올려진 새빨간 차차의 입에 무언가를 넣고 몇 번 빨아들이자 차차가 울기 시작했다. 차차를 처음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그 말이 입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차차야 반가워’라고 해주고 싶었는데 마냥 반갑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무 말 없이 나는 계속 차차를 바라보며 울었고, 후처치가 시작됐다. 내 배를 눌러 태반이 나왔고 언제 절개했는지도 몰랐던 회음부 봉합이 시작됐다. 꿰매는데 마취가 안된 건지 바늘이 들어가고 나오는 따가움이 다 느껴져서 계속 아프다고 하는데, 간호사는 옆에서 내 주의를 끌며 ‘산모님 아기 보셔야 해요. 왼손 손가락 다섯 개, 오른쪽 손가락 다섯 개’ 하며 말을 하셨다. 그러나 밑이 아파서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후처치가 끝나고 침대가 다시 조립되고 하반신에 힘이 빠져 너덜 해진 나는 피투성이인 채로 누워있고 간호사들이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봉투 가득 채워진 내 태반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회음부를 꿰매었는데 출혈이 많아, 한 시간 정도 보고 멈추지 않으면 다시 절개 후 꿰매야 한다고 잠시 가족분만실에서 혼자 대기했다. 제일 먼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무 아팠다고, 울면서 전화하며 차차의 탄생을 전했다. 남편 목소리에도 물기가 가득했다. 마침 남편은 보호자로 온 나의 엄마에게 짐을 전해주기 위해 병원 1층에 있었다고 한다. 가까이에 있는데 만나지를 못한다니 더 서러웠다. 지금 누구보다도 남편이 필요한데 옆에 없다. 그 사실이 서러워서 울고, 이게 한이 되어 내가 남편을 원망할까 봐 더 서러워서 울었다.
- 오후 2:30 병실로 이동하기로 결정됐다. 휠체어를 타고 분만실을 나서는데 짐을 병실로 옮기려고 하던 남편이 그 앞에 있었어서 딱 마주쳤다. 둘 다 마스크 쓰고 말할 수도 없었지만 그 잠깐 사이에 눈으로 서로 계속 쳐다봤다. 병실에 도착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온갖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는 차차를 보러 가셨고 나는 피비린내 나는 내 몸을 살펴봤다. 하반신에 피가 많이 묻어있었다. 회음부 절개한 곳이 아파서 앉지 못하고, 어지럽고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설 수 없었다. 누워서 물티슈로 손이 닿는 부분만 피를 닦아냈다. 목이 너무 말라 콜라 한 캔을 벌컥벌컥 마시고 누워서 잠을 청했다.
저녁식사가 나오고 야식이 나왔지만 도저히 고체를 먹을 수 없었다. 시원한 물과 콜라만 마시고 잠을 자려고 하는데 밑이 너무너무 아팠다. 와 이거 어떻게 걷지? 오늘 밤은 어떻게 자지?라는 생각이 몰려왔다. 동시에 나를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내면의 소리가 있었다. ‘내 몸에 너무 몹쓸 짓 한 것 같다‘라는 죄책감과 회의감이 몰려오며 밤새 몰래 울었다. 차차를 낳은 걸 후회한다는 말이 아니다. 분만 방법에 대한 후회였다. 나는 자연분만을 ’당했다‘.
차차의 예상 무게는 3.48kg이었다. 본래 ‘자연분만을 하고 싶지만, 아이 무게가 3.4kg을 초과할 경우에는 제왕절개를 하겠다’가 나의 출산 계획이었다. 그래서 37주 차 때 담당 의사 선생님께 말했더니 특유의 빈정대는 말투로 코웃음 치며 ‘왜 그런 걸 벌써 걱정하냐’며 나를 혼내셨다. 그리고 분만 대기실에서도 수술하겠다고 하는데 그 의견은 묵살당했다. 내 몸이고, 내 출산인데 왜 내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걸까? 하물며 분만실에서 불친절한 간호사의 태도도 그랬다. 나는 사람인 내 인권과 프라이버시는 존중되지 않은 채, 내 팬티를 벗기고 다리를 벌리고 하반신을 노출시키고. 야간에 분만 대기실에 있던 간호사분들은 그러지 않았다. ‘내진할게요, 속옷 내릴게요’ 말을 해주셨다. 커튼으로 침대도 꼭꼭 가려주셨다. 내 담당 의사와 불친절한 간호사는 날 진찰하는 게 아닌, 아기만을 케어하는 사람들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산모인 나의 의견과 인권과 프라이버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렇게 출산이 산모에게 불친절하고 억압적인 분위기라는 게 나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출산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나는 이 일들이 잊히지 않고, 담당 의사를 만나고 싶지도 않다. 임신 초반에 담당 의사의 강압적이고 비꼬는듯한 말투 때문에 병원을 바꾸려고 했었으나 진찰 기록들 때문에 안 바꿨었는데, 그 결정이 너무 후회된다. 병원 화장실에 기독교 문구와 함께 쓰여있는 병원의 신조 중 ‘산모의 출산계획에 맞추어 출산을 준비합니다’라는 문구를 찢어버리고 싶다. 설마 모든 출산이 다 이렇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출산 후기를 찾아보던 중, ‘굴욕 없는 출산’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책의 내용은 내가 출산과정에서 느꼈던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수치심과 굴욕적임‘을 적나라하게 공유하고 있었다. 책을 바로 구매해서 읽으며 나는 내 경험을 떠올리며 아파하고 공감하며 울었다. 남편 또한 내가 얘기한 내용과 똑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초반에 저자는 40 가까이를 ’인간‘으로 살아왔는데, 임신을 하며 본인이 ’여자‘ 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임신과 출산이 얼마나 연구가 덜 되어있는지, 세상의 의학 기준은 ‘남자’였음을 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 내용은 임신 초반에 내가 썼던 글과 일맥상통한다.
주변에 임신을 했거나 임신을 할 예정인 사람들에게 ‘굴욕 없는 출산’ 이 책을 매우 추천하고 싶다. 아니, 여자라면 한 번쯤 읽어봐야 한다. 이 책을 추천하기 위해 쓸까 말까 한 달 동안 고민했던 내 출산기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나라 성교육은 달라져야 한다. 임신과 출산이 여자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야 한다. 회음부 절개를 할 거면 산모에게 동의를 얻어야 하고, 임신하면 생리는 끊길지언정 막달의 분비물과 출산 후 오로로 적어도 2~3달 동안 생리대를 차고 있어야 한다고 알려줘야 한다. 나는 차차에게 ‘내가 당한 출산 경험’이 절대 오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