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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2: 1년 7개월 만의 또 한 번의 출산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두 가지 모두 경험한 레어 산모로 레벨업

by 이알밤

처음 결혼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남편과 가장 먼저 합의한 부분이 자녀 계획이었다. 다행히 나도 남편도 아기는 원했고, 둘 다 두 명을 원했다. 그렇기에 첫째 차차를 낳고 키우며 모든 신생아 물품을 집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러다 육아가 살짝 익숙해지고 약간 수월해지는 8개월 즈음 몸이 이상해서 해본 임신 테스트기에서 옅은 두줄을 봤다. 남편에게 이야기하고 한 6~7주쯤 진찰 볼 수 있도록 여유 있게 병원을 예약하고 차차의 문화센터 수업을 간 날, 수업이 끝날 때 즈음 하혈이 시작됐다. 짧은 순간에 너무 많이 흘러서 옷에 물들기 시작했고, 다행히 예약해 둔 산부인과가 마트 옆건물이어서 치마를 부여잡고 유모차를 끌고 산부인과에 뛰어들어갔다. 가면서 남편에게도 급하게 이야기해서 남편도 부랴부랴 병원에 왔다. 진료에 들어가 초음파를 보는데, 아기집으로 추정되는 게 보이긴 하는데, 진료하는 와중에도 피가 너무 많이 나서, 이 정도로 내일까지 피가 난다면 다시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화학적 임신, 화학적 유산이었다. 임신 테스트기로 화학적으로만 확인된 임신이었다며, 예전엔 모르고 넘어갔으나, 난임시술이 발달되며 발견된 임신 및 유산이라고 한다. 다행히 유산 축에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런 일이 나한테도 일어난다는 점에서 무척 놀랐다. 이 이후로 나와 남편은 한동안 임신 시도는커녕 임신 언급도 하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나고 차차의 어금니 이앓이로 육아 난이도가 올라가 있던 중, 연말이 다가오며 모른 체하고 싶었던 우리의 둘째 계획을 직면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야식을 먹다가 슬며시 이야기를 꺼냈고, 육아에 지친 우리는 곧 연말이니, 올해까지만 시도해 보고 안되면 내년 초에 다시 계획을 논의해 보기로 했다. 이때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슬며시 모른 체 넘어가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올해가 지나면 아예 용기가 사라질 것 같았다. 둘 다 암묵적으로 ‘한 명도 괜찮지 않아?’라는 뉘앙스의 언급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아빠와 함께 놀러 갔다가 새우가 너무 먹고 싶다는 내 요청에 아빠가 수소문해서 어렵게 새우를 구해주셨고, 신나서 와인과 함께 구워 먹었던 날, 얼마 마시지도 않은 와인의 숙취에 이상함을 느껴 혹시나 해본 임신 테스트기에서 다시 두 줄을 마주했다. 처음 심장소리를 듣는 날, 둘째의 심장소리는 첫째와 다른 ‘치치포포’ 하는 소리가 났고,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어? 아들인가 봐?’라고 외쳤다. 그렇게 우리는 연말 전에 둘째 ‘포포’가 생겼다.


둘째 임신은 첫째 임신보다 훨씬 힘들었다. 첫째 육아를 같이 해야 해서 그런 점도 있지만, 배가 빠르게 나왔고, 이로 인해 임신 7개월이 되기 전부터 숨차서 똑바로 누울 수 없게 되었다. 입덧은 임신 4주 차부터 시작해서 5개월을 꽉 채웠고, 이로 인해 내 체중은 확실히 덜 늘었다. 당연히 출산병원은 첫째 때 갔던 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병원마다 미세하게 임신성 당뇨 기준이 다른데, 이로 인해 둘째 때는 임신성 당뇨 판정도 받았다. 8개월부터는 급격하게 밑 빠짐 느낌이 심해졌다. 아기 머리가 골반 사이로 빠르게 들어간 것 같다고 했다. 이 덕에 환도 증상은 금방 사라졌지만 첫째를 안거나 쪼그릴 경우, 밑이 너무 아프고 금방이라도 포포가 나올까 봐 두려웠다.


30주까지만 해도 출산 예정일보다 약 1주일 정도 작은 크기를 유지했던 포포는 32주부터 갑자기 2주에 500g씩 꽉꽉 채워서 자라기 시작했다.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도 본인이 아기 사이즈를 크게 측정하는 편임에도 속도가 빠르다고, 만약 아기 배둘레만 커졌으면 엄마가 식단을 조절해야 하는데 포포의 경우는 머리둘레, 배둘레, 그리고 허벅지뼈가 다 자라고 있어서 이거는 엄마 식단 조절로 되는 문제가 아니라, 아기가 크고 있는 거라고 하셨다. 사실 이 전까지도 약간의 입덧이 있어서 늘 레몬즙이나 식초를 달고 살았고, 32주부터는 위액 역류가 불쑥불쑥 일어나서 음식을 잘 먹지 못했다. 밤마다 위액 역류 + 숨 참 + 잦은 소변 마려움 콤보로 2시간마다 깨다 보니 평소 컨디션이 늘 엉망이었다. 이렇게 둘째 임신이 더 힘들다는 걸 왜 말해주지 않았던 걸까. 그래도 둘째 출산은 진행이 빠르고 수월하다는 점 하나만 보고 버텼다.


36주 정기 검진을 다녀왔다. 40주 포포의 출산 예상 몸무게는 3.8kg이었다. 겁이 났다. 내가 출산해서 병원과 조리원에 있는 2주 동안 양가에서 와서 첫째를 돌봐주시기로 했기에 스케줄 조절 겸 한주라도 더 크기 전에 낳고 싶다는 내 의견을 반영해서 39주 2일에 유도분만 날짜를 잡았다. 차차는 39주 4일에 태어났으니, 사실 그전에라도 양수가 터지거나 이슬이 비추면서 자연 진통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포포는 유도분만 날짜가 되도록 전혀 소식이 없었다 (물론 잦은 가진통이 있었지만 당연히 있어야 할 주수였다). 그리고 유도분만 예정일이 되었다.


- 오전 8시: 병원 분만실에 도착해서 나만 먼저 들어가서 처치를 시작했다. 옷 갈아입고, 동의서 쓰고 태동 검사 및 내진을 했다. 내진 결과 자궁 경부가 2cm 열려있다고 했다. 37주 검진 땐 전혀 안 열려있다고 했는데, 진행이 빠르다는 신호인가 했는데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경산 모여서 열린 건지, 진행이 돼서 열린 건지 알 수 없다고 하셨다. 수액 연결 후 제모 및 관장을 했다.

- 오전 9시: 남편이 들어왔고, 잠시 후 담당 선생님 회진으로 유도분만제를 맞기 시작했다.

- 오전 10시: 진통이 슬슬 오기 시작했고, 첫 내진을 했다. 진통이 많이 안 온다며 내진을 세게 하셨는데 아파서 소름이 돋았다.

- 오전 11시: 2차 내진, 2.5cm 열렸다.

- 오후 12시 35분: 3차 내진, 여전히 포포는 내려오지 않았다.

- 오후 2시 30분: 4차 내진, 3cm 열렸다. 진통이 뒷골반과 허리로 오기 시작해서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선생님이 오후 회진 오셨는데, 진행이 생각보다 느리다고, 5~6시쯤까지 보고 안되면 끊고 내일 하기로 하자고 하셨다. 지금 진통 시동이 걸리는 게 늦어지고 있는데, 경산모는 시동만 걸리면 빠르게 진행될 거라고 하셨다. 여기서 나는 자신이 많이 없어졌다.

- 오후 3시 40분: 5차 내진, 상태는 그대로.. 일단 내가 너무 아파해서 가족분만실 이동하고 무통을 달기로 했다.

- 오후 4시 15분: 무통을 달았는데, 아직 틀지는 않았다. 6차 내진 결과 여전히 그대로라고.. 근데 간호사 선생님이 나보고 첫째 분만한 병원이 어딘지를 물으셨다. 왜 물어보시냐고 물어보자 내 자궁경부에 상처가 많이 나있는 편이라고 하셨다. 원래 자궁 경부는 동그랗고 단단한 편이라고 하는데, 약간 너덜 해진 부분이 있다고. 내가 놀라자 ‘아 경산모한테는 종종 있는 경우예요! 첫째 낳을 때 혹시 내진 많이 세게 하셨나요?’ 하고 물어보셨다. 첫째 때 그랬다. 신경질적인 간호사가 반말 찍찍하며 내 진행 속도가 느리다며 내진을 거칠게 했었다. 그렇다고 답하자 자궁 경부에 상처가 있어서 내진을 할 때마다 많이 아픈 것 같다고 하셨다. 다시 또 첫째 출산 병원과 그때의 간호사에 대한 화가 솟구쳤다.

- 오후 4시 45분: 세 번째 의사 선생님 회진, 경산모인데 유도분만 진행 속도가 너무 느리고, 특히 아기가 내려오지 않는 게 이상하다며 아무래도 내 골반이랑 아기랑 안 맞는 것 같다고 하셨다. 여기서 끊고 내일 다시 하거나 수술하거나 내가 선택할 수 있다고 하셨다. 지금 담당 선생님이 늘 자상하시면서 명쾌하셔서 믿음직한 분이라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선생님의 판단을 믿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만약에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하고 물었다. 선생님은 ‘초산이라면 당장 제왕절개를 진행했을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내일도 실패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바로 수술로 마음을 돌렸다. 선생님은 내게 미련이 남지 않겠냐며, 정말 괜찮냐고 재차 확인하셨다. 나는 오히려 마음이 차분하고 편해졌다. 수술 준비를 하며, 다시 또 생각했다. ‘아, 나는 정말로 첫째를 억지로 자연분만 당했구나’.

- 오후 5시 10분: 수술동의서 사인을 하고 수술실에 들어갔다. 수술대에 누워 마취를 기다리는데 똑바로 눕다 보니 또 숨이 차기 시작했다. 심박수가 올라가고 숨이 막히는데 팔다리가 고정되어 있어 몸을 돌릴 수 없으니 기절할 것 같았다. 내가 숨이 찬다며 고개를 마구 돌리자 마취 선생님께서 마취약이 도는데 10분이 걸린다며, 간호사 선생님들께 배를 옆으로 밀어주라고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토하고 기절할 것 같다고 하자 수면마취로 바로 나를 재워주셨다.

- 오후 5시 33분: 포포가 태어났다. 잠깐 마취에 깨서 하얀 천에 쌓인 포포를 만났다. ‘포포 나왔어요’라는 간호사 선생님 목소리에 ‘포포 몇 킬로예요?’ 하고 물었던 기억이 났다. 3.71kg으로 포포는 예상보다도 크게 나왔다. 나는 무게를 듣고 ‘으익 엄청 크네 ‘ 이러고 잠들었던 것 같다.

- 오후 6시 30분: 회복실에 도착했다. 간호사 선생님께서 내 팔목에 환자 팔찌 달아주시며 보호자 정보 확인 하시고 다시 포포 탄생 시간, 무게 알려주셨다. 간호사 선생님이 마취 깨자마자 ‘어후, 애기가 크고 동그래요’라고 하셨다. 회복실에서 한 시간 정도 있을거라셨는데 춥고 배 아프고 역시나 숨쉬기 불편하고 메슥거렸다. 시간 지나며 서서히 괜찮아지는 게 느껴졌다. 무척이나 남편이 보고 싶었다.

- 오후 7시 45분: 입원실 도착! 오는 도중에 덜컹거릴 때마다 배가 너무 아팠다. 입원실 앞에서 만난 오빠에게 ‘안녕’ 인사하고 들어와서 진통제 2종 설명 듣고 휴식을 취했다. 배고프고 목이 너무 말랐지만 6시간 후에 수술부위에 올려둔 모래주머니 제거하면 물 마실 수 있다고ㅠ 오전 8시부터 지금까지 물 포함 금식이어서 목이 너무 말랐다.

- 오후 8시 15분: 남편이 내 다리를 물티슈로 닦아주고 압박스타킹 신겨줬다. 발이 저릿저릿했지만 계속 움직였다. 어차피 나는 소변줄 꽂은 상태고, 수술부위 위에 모래주머니를 올려놓아 일어날 수 없으니 남편에게 집 가서 밥 먹고 씻고 첫째 상태 좀 보고 필요한 것들 챙겨 오라고 했다. 그 사이 나는 주변에 연락 돌렸다. 모두들 포포의 크기에 놀라는 동시에 임신 출산 끝을 축하해 주었다.

- 오후 10시 15분: 티브이도 좀 보고 졸다가 검사받고. 자궁 수축 확인하느라 누르실 때 너어어무 아프다. 진통제를 15분 쿨타임 찰 때마다 열심히 꾹꾹 누르고 있다. 회복실 간호사 선생님께서 아프면 참지 말고 진통제 열심히 누르라고 알려주셨다. 어차피 다음날 수액 뗄 때 남아있는 진통제도 다 떼버린다며 아끼지 말라고 하셨다.

- 오전 1시 15분: 수술부위에 놓아둔 모래주머니 치우고 물 마셔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자그마치 17시간 만에 물 마신다! 병원 침대가 딱딱한데 8시간 동안 유도제 맞으며 진통이 골반과 허리로 와서 똑바로 눕는 게 배기고 아파서 잠을 못 잤다. 그렇지만 이제 배가 (비교적) 납작하고, 숨도 안 차는 게 너어어무 좋았다. 거의 6-7개월부터 괴롭혔던 숨참! 이제 바이바이!!


이렇게 나의 17개월 만의 두 번째 출산이 종료됐다. 비록 자연분만을 하지 못해서 아쉽기는 하지만, 덕분에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해 본 레어 한 산모가 되었다. 그 덕에 이렇게 글도 한편 더 쓸 수 있었고, 주변에서도 차이가 어떤지 많이 궁금하다며 꼭 알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두 가지 모두 경험해 본 내 결론은: ’ 자연분만이 더 아프다!‘이다. 물론 개인차는 분명하게 있지만, 나는 오후 늦게 수술했음에도 다음날 일어날 수 있었고, 흔히들 말하는 장기 쏟아지는 느낌도 없었다. 페인버스터와 진통제가 없었다면 결론은 달랐을 수도 있지만, 자연분만 후에는 회음부 상처 때문에 많이 아프고 고생했고, 이때는 진통제를 놔주지 않기 때문에 고통을 생으로 느껴야 했다. 자연분만은 용변 보는 것 또한 너무 고생스러웠다. 그렇지만 제왕절개는 첫 이틀은 진통제 덕에 버틸 수 있었고, 그 이후에는 웃거나 일어날 때 배가 아프지만 그 외 큰 불편함은 없었다.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도 이틀째 소파에 앉아있는 날 보고 ‘어? 왜 이렇게 멀쩡하시지?’ 라며 의아해하실 정도로 나는 회복이 빠른 편이었다. 물론 실밥을 뽑기 전까지 씻지 못하는 건 괴롭지만.. 그 정도는 견딜 수 있다.


연년생 남매 육아라는 새로운 현실을 맞이하기 전 조리원에서 10일을 보내고 있다. 마지막 휴가라는 마음가짐으로 그동안 미뤄두었던 일들을 하나씩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시리즈 마무리하기였다. 첫 임신과 출산이라는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 이 시리즈가 고통스러웠던 기억으로 마무리되지 않아서 마음이 매우 홀가분하고 기쁘다. 읽어주시고 공감해 주신 분들 모두 행복하고 즐거운 임신과 출산이 되시고, 되셨기를 응원하며 글을 끝낸다. 모두들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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