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대한 ; 마지막 절기

by 차정률


대한(大寒) : 큰 추위


2026.2.5(월)

최저 기온 -11도 최고 기온 -3도

춥다 너무 춥다



대한 끝에 양춘(陽春) 있다


24개의 절기는 "대한"을 끝으로 한바퀴을 돌아나간다. 태양 황경이 300도에 이르는 대한은 '큰 추위'를 이른다.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소한이 대한이 보다 더 춥다하여, "소한의 얼음이 대한에 녹는다"라는 말이 있기도 하다. 이는 우리가 경험하는 실제의 추위 감각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추위의 마지막 고비를 뜻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대한은 절기라는 달력의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대한을 끝으로 우리는 새로운 해의 첫번째 절기의 시작점 "입춘"으로 향해간다.


"대한 끝에 양춘 있다"는 옛말은 그렇게 생겨났다. 추위가 지나면 따스함이 찾아온다는 자연적인 진리는 당연한 듯 보여도, 맹추위와 겨울의 고비들 속에서 돌아오는 봄을 떠올리며 현명하게 버티는 일은 때로 지혜가 필요한 일이다. 고난은 지나갈 것이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계절이 주는 위안이 대한에 숨겨져 있다.


제주에는 "신구간(新舊間)"이라는 독특한 세시 풍속이 있다. 신구간은 대한(大寒) 후 5일부터 새해의 시작인 입춘(立春) 전 3일까지의 약 일주일 내외의 기간을 말한다. 올해 기준으로는 2026년 1월 26일부터 2월 1일까지이다. 신구세관교승기간’(新舊歲官交承期間)의 줄임말인데, 여기서 관(官)은 신을 의미한다. 제주에는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수많은 토속신이 있다. 두 눈 부릅뜨고 대문을 지키는 ‘문전신’, 장독대의 장맛을 좋게 만드는 ‘철륭신’, 집안 지킴이 ‘성주신’, 복을 불러오지는 않지만 잘 달래야 집안이 편안한 ‘뒷간신’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이 집을 지켜주고 있다고 믿는다. 생명의 신인 ‘삼승할망’, 사랑과 농경의 신 ‘자청비’, 농경의 여신 ‘백주또’, 바다와 바람의 여신인 ‘영등할망’ 등 많은 사람이 믿고 따르는 유명한 신들도 있다. 민담에 따르면 지상의 신들은 일 년 동안 인간 세상을 보살핀 내용을 보고하러 하늘로 올라가며 이때 지상은 잠시 '무법지대'가 아니라 자유지대'가 된다는 것이다. 신들이 없는 사이 이사를 가거나 집을 수리해도 동티나지 않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이사를 한다. 실제로 이런 믿음은 아직까지도 이어져 평소 이사비용의 2-3배가 되는 바가지가 기승하기도 했다. 떠나간 신들은 입춘 즈음 되돌아 온다.



계절이 간다


겨울엔 짐승처럼 지낸다. 특히 곰처럼. 집밖에 나가지 않는 칩거 생활을 한다는 얘기다. 건강한 고향 친구가 전화를 해서 이런 칼바람에 3시간의 산책을 보냈다는 전화를 나누고 잠시 반성의 시간을 가졌지만, 현관과의 심적인 거리가 너무도 멀다. 친구야, 난 도무지 안될 것 같아, 하고 문자를 보낼까 하다가 멈췄다.

대한인 오늘은 밖을 나섰다. 결혼을 하고 직장과 집을 동시에 서울 밖으로 옮겼다. 지인하나 없는 동네에 살며 친구들이 랜선 친구가 되어 버렸다. 사실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언제든지 나갈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리 쉬이 밖으로 나가게 되지 않는다. 게다가 엄마의 삶을 살고 나서는 내 주변의 일상들과 꽤나 멀어졌다. 불투명한 벽으로 둘러쌓인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직장을 그만두고는 하루 종일 어떤 연락도 오지 않는 날도 많다. 지난 해 말 즈음에는 이런 적적한 보통 날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내것이 아닌 것 같은 기분,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닿지 않은 채로 지내는 고립의 일상, 절로 안녕을 묻게 된다. 그러다가 고요를 깨는 그리운 사람들에게 연락이 오면 다시 풍경이 바뀐다. 그저 이것들이 지나가는 계절이 되어 가는 기분이다.


오늘, 대한에 만난 사람들은 전전 직장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저마다의 직급과 나이에서 만났는데, 다들 얼굴하나 안바뀌고 십년이 훌쩍 지났다. 저 서른 일곱이에요, 라고 말하는 우리팀 막내는 이제 다른 곳에서는 닳고 닳은 프로패셔널 직장인이다. 아무렇지 않게 시간을 건너 뛰어가서 김밥을 나눠 먹으며 회사의 뒷담을 하고 하루를 버텼던 그날들로 돌아간다. 또 다른 막내가 환하게 웃고 있는 청첩장을 받아들고 밤길을 되돌아 왔다.


보통이면 지하철을 타고 갔을 서울 나들이를 차를 타고 갔다. 내가 견디기엔 너무 추운 날이었다. 이미 운전은 꽤 오래 되어 익숙한데, 서울에 차를 가지고 나가는 일이 마음이 아직도 불편하다. 온통 다리로 누볐던 거리들을 도로 위 차안에서 휘릭 지나가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이 바뀌는 게 당연한 일인데, 어떤 변화는 당장 가지고 싶고 어떤 변화는 미루고 싶고, 어떤 변화는 미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계절은 부지런히 간다. 우리 사이에 부는 찬바람들엔 간간히 봄의 약속들이 숨겨져 있다. 지극히 당연한 계절들에 우리는 소박한 위로들을 받는 이유다. 모든 것들은 변화하고 제자리를 찾는다.


대한 날 밤에는 방바닥이 뜨끈해야 그해 운수가 좋다는 믿음이 있다고 한다. 집집마다 아궁이는 없는 시대에 살지만, 저마다 제 안의 아궁이들이 뜨끈하길 바라본다. 곰처럼 사는 나도, 밖을 걷는 너도, 세찬 돈벌이의 바람들 속에 있는, 때로 변화와 변화 사이 추위와 고독에 웅크리고 있는 우리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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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ports.khan.co.kr/article/201901241108003

https://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08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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