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우수 ; 봄이 온다는 것을 믿나요?

by 차정률


우수(雨水) : 눈이 녹아 비가 된다



2026.2.4(수)

최저 기온 -4도 최고 기온 8도

낮동안은 봄기운이 나기 시작, 하지만 흐리고 황사 기운


자연스럽게, 그 봄이


입춘이 지나자 매서운 찬바람 사이사이 봄기운이 스며든다. 엄마랑 아침 산책을 하면 매일 엄마는 같은 말을 한다. "저것들 좀 봐, 불긋불긋 통통해졌네, 사람들만 추워추워 한다야" 그말을 들으면 딛고 걷는 땅들이 점점 더 말랑말랑해지는 기분이다. 나도 엄마를 따라 통통해진 나무 끝의 여린 순들을 찾고 갓 푸르러진 싹들을 발견하는 재미로 걷는다. 두번째 절기 "우수"는 눈이 녹아 비가 되고 물이 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모르던 사이 긴 겨울 동안 단단히 얼어있는 것들이 스스로 녹아 다가올 계절들을 채비를 한다. 기러기는 자신의 온도를 찾아 더 추운 북으로 떠나고, 대동강 물도 녹아 서서히 움직인다.


모든 것들은 느리고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자연이 하는 일에 자연스럽게라고 말하는 건 우스운 말이지만,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되어가길 믿고 싶은 것처럼 그렇게 온다. 그리고 강에선 표면의 얼음이 가장 마지막에 녹는 것처럼, 조용히 속삭이며 온다. 그렇게 봄이 올 꺼고 보란듯 다시 겨울이 올 것이다.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When lonely feeling chill
The meadows of your mind,
Just think 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


마음의 정원이 얼어붙었을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면 좋을까, 당신이 지금 겨울에 있다면, 봄은 어디쯤 와 있을까. "You Must Believe in Spring"의 첫 단락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곡은 1967년 프랑스 뮤지컬 영화 <로슈포트의 연인들>을 위해 거장 미셸 르그랑(Michel Legrand)과 자크 드미(Jacquws demy)가 만든 곡 'La chanson de Maxence(극 중 막상스의 샹송)’이며, 빌 에반스의 마지막 앨범에도 실려 있다. "You Must Believe in Spring"은 1977년 8월에 녹음 되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후 1981년에 발매가 되었다.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겪고 자신조차도 피폐한 겨울 속에서 지낼 때, 그가 연주한 이 곡은 우수의 계절 속에서 산책하는 기분이 든다. 발끝이 시린데 바람에 닿는 바람은 한결 부드러워진 느낌, 간혹 단숨에 몸을 움츠리게 하는 냉기가 돌아도, 걸을 수 있게 하는 모종의 바람이 담겨있다.


올해의 우수는 명절 연휴의 다음날이었다. 설날을 맞아 한복을 곱게 입은 아이들이 할머니에게 세배를 했다. 혼자 절을 받는다고 엄마는 더이상 머슥해하지는 않는다. 제법 '사랑해'를 자연스럽게 말하는 할머니-아직 딸에게는 해준 적 없어도-가 된 엄마가 두 손녀를 팔에 끼워 내새끼들을 말할 때 누구를 생각할지 우리는 안다. 계절이 몇번이나 지나도 빈자리는 그대로 빈자리인 것은, 그게 그리움으로 가득차 있을 것이라는 것은, 그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여상스럽게 아이와 티비를 보고 있는데, 아이가 묻는다.

"내가 어른이 되면, 엄마도 죽어?"

한참 입속으로 말을 굴리던 내가 더 오래 지체할 수 없어 내뱉는다.

"모든 생명은 태어나면 죽어,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야"

아이가 말한다.

"그럼 엄마, 오래 나랑 같이 있자"


아마 아이도 자신의 작은 기억 속의 빈자리를 헤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작디 작은 머리로 그리움과 그리워할 것들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아직 아이는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을 부지런히 고민하고 더듬어가는 중이다.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내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 일에 대해서, 그리고 그 마음을 어떻게 들고 다녀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부지런히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도 모른다. 다만,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빌 에반스가 피아노를 치고 토니 베넷이 부르는 봄 노래를 여러번 듣는다. 4월의 개울과 5월의 장미가 있는 봄이 올 것이라는 것을 믿는 것처럼, 사랑이 있다고 믿으라 말하는 목소리를 듣는다. 무언가의 부재를 메꾸는 건 지난 계절 우리가 함께 있었던 시간, 즉 사랑의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노래가 간직하고 있는 사랑을 잘 보듬으라 들렸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해의 다짐을 또했다. 아이에게 분명히 "오래오래"라고 대답했기 때문에. 자주 어깨를 펴서 목디스크와 멀어지겠노라고, 달리기도 하고 수영도 해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중 하나가 나를 그리워할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줄여보겠다고 말이다. 올봄에는 자연스럽게 눕지 말아야 겠다.


So in a world of snow
Of things that come and go
Where what you think you know
You can't be certain of
You must believe in Spring and love




Tony Bennett & Bill Evans 버전

https://youtu.be/OdeWJ5KaUHA?si=P5_JIPtmYlqWtQ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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