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雨水) 봄을 캔다

by 봉진

2026년 2월 19일(목)

최저온도 -6°/ 최고온도 11°


설 명절을 무사히 보내기 위해 우리는 몇 가지 준비가 필요했다.

1.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7시에 오픈하는 기차표 예매

2. 양가 가족들을 위한 소소한 선물 준비(담근 고추장, 담근 술, 곶감 말이)

3. 집에서 홀로 지내야 하는 동이 사료와 물. 화장실


이번 명절 동선은 '곡성-서울-곡성', 그리고 다시 '곡성-부산-곡성'으로 이어지는 대장정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안부 인사를 나누고 배가 불러도 계속 먹게 되는 명절 음식, 북적거리던 연휴에서 빠져나와 시골집으로 돌아오니 완벽하게 고요한 일상이 찾아왔다. 조용하던 일상에 이벤트를 치러서 그런지 우리 둘 다 에너지가 바닥나 며칠 쉼을 가졌다. 심심한 우수(雨水)의 아침 뒷마당에 쭈그려 앉아 들어다본 마당에는 아주 작고 여린 쑥이 작게 올라왔다. 아직 캘 수도 없을 만큼 아주 작은 쑥이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곧 다가올 봄날의 쑥버무리를 상상했다.


쑥이 빼꼼히 나온 자리는 작년에 열심히 쑥 캐던 뒷마당이다. 우리 집 마당에 쑥이 자란다는 것만으로 너무 신나 몇 날 며칠 쑥을 캤다. 지금은 쑥을 '캔다'는 표현이 익숙하지만, 쑥을 직접 캐보니 왜 쑥을 '딴다'라고 하지 않고 '캔다'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꽁꽁 얼었던 흙을 비집고 바짝 엎드려 자란 여린 쑥은 잎만 똑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칼을 흙 속에 살짝 밀어 넣어 밑동 부분을 도려내야 한다. 냉이도 마찬가지로 흙 속에 깊게 박힌 긴 뿌리가 가장 맛있고 향긋해서 '캐야 한다'. 이 절기에 관찰과 행위로 연결된 '봄을 캔다'라는 언어가 퍽 근사하다.

작년 봄, 신나게 캐낸 쑥으로 쑥버무리, 쑥 페스토, 쑥 부침개, 쑥 된장찌개까지 상에 올렸다. 매일 먹어도 쑥이 계속 자라서 결국 내가 지쳐 나가떨어졌다.


조금씩 티 안 나게 변하는 계절은 자세히 들여보아야 보인다. 얼음이 녹아 물이 된다는 우수 역시, 무심코 지나치면 겨울과 다를 바 없는 밋밋한 날 같지만, 시선을 한껏 낮춰 땅바닥에 바짝 대어 보면 그 여린 쑥과 푸릇한 이름 모를 풀들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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