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경칩 : 준비 됐나요?

by 차정률
경칩(驚蟄) : 잠자던 것들이 깨어나다


2026.3.5(목)

최저 기온 1도 최고 기온 11도

오전은 맑음, 오후부터는 밤까지 비가 내림


뚫고 오르는 것에게 등밀기


'경칩'은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도 깜짝 놀란다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본래는 개구리와는 상관 없는 날이기도 하다. 한자 ‘驚蟄’에서 알 수 있듯이 놀라는 것은 오히려 벌레다. 칩거에도 쓰이는 한자 蟄은 '숨다' 혹은 '겨울잠을 자는 벌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날을 개구리의 날로 기억하는 건 아마도 그만큼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보이는 생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골은 당연하거니와 도시에서도 예전에는 동네 어귀 물이 흐르던 근처에서는 개구리를 볼 수 있었다. 요즈음의 아이들에게는 유튜브에서나 보기가 더 쉽겠지만 말이다. 혹은 우리 근처에 있던 개구리들은 초록초록해서 땅을 깨고 나오는 초록 잎들과 닮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개구리가 성체가 되어 훅 튀어 나오는 것처럼 발길 닿는 곳곳에 초록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경칩은 개구리들에게 수난의 날이기도 했다. 번식기인 봄에 개구리들은 물이 괸 곳에 알을 놓는데, 그 알을 먹으면 몸이 좋다는 풍속이 있어 경칩일에 용알이라며 개구리알을 먹었다. 때로는 도롱뇽알을 건져먹기도 했다. 아픈 허리를 낫게 하거나 양기를 돕고 몸을 보한 속설은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알 속에는 독이 있어 더 큰 탈이 날 수 있다. 약한 생명들에게도 자기들 만의 수가 있는 법이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연한 것들을, 더욱이 알 속의 작은 생명을 마셔버리는 인간의 생존 욕구는 두렵다. 어쩌면 그게 가장 큰 인간의 특징일지도 모르겠다. 아침 산책길에 갓 나온 냉이를 캐는 헌터들이 벌써 나와 있었다. 아파트만 있는 도시에서도 부지런한 사람들은 비탈길을 오른다. 땅에 균열을 내는 생명력이 담겨 있는 냉이는 더없이 향긋할 것이다.


새싹도 청개구리도 닮은 아이들이 아침마다 가득하다. 경칩 즈음에는 새학기가 시작된다. 갓 초등학교가 된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횡단보도를 걸어 가고, 제 몸에 맞지 않은 가방을 멘 꼬맹이들이 버스를 기다린다. 우리집에 사는 작은 인간들도 첫 유치원 생활을 시작했다. 집에서는 어리광을 부리더니 유치원에서는 자기가 제일 말을 잘 듣는다며 오히려 성화다. 내 품에 숨어 있던 싹들이 바깥의 바람을 쐬기 시작한다. 비가 오고 바람 부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아가야 하는 아이들의 시간을 등 뒤에서 지켜본다. 내가 할 일은 손을 힘껏 흔들고 웃으면서 돌아올 아이들을 안아주는 일일 것이다.


이 계절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길이다. 간간이 비가 내리더니 길 위에 색채가 더해졌다. 마른 풀들 사이에 촉촉한 것들이, 나무 끝에 손톱 만 한 여린 순들이, 나무들이 통통하게 올랐다. 긴 겨울 내 죽은 줄 알았던 생명들이 실은 동면을 하고 있었다는 것, 작고 여린 것들도 차디찬 고난을 버텼다는 것이 위안을 준다. 너희들 이번에도 해냈구나, 어쩌면 나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의 작은 싹이 자란다. 힘내라, 힘내라, 우리 더 푸르게 만나자, 스스로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으로 길 위의 모든 것들에 응원하며 걷는다.


피아노,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된 재즈트리오 "겨울에서봄"의 동명의 곡 '겨울에서봄'은 이 사이의 계절의 마음과 어울린다. 땅을 밀어오르는 힘과 잠에서 깨어나는 일을 떠올려 본다. 특히 곡 초반부의 연주는 약간의 비애감과 긴장감이 있다. 땅을 밀어올리는 일은, 그 땅이 얼어있다면 더욱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 굳기 만큼의 힘을 여러번 두드려 열어야 하는 것처럼. 잠시 멈춰 뒤돌아 생각해볼 것도, 거기서 어떤 것들은 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억지로 쥐고 가야하는 것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리듬 그대로 앞으로 걸어간다. 묘하게도 긴장감과 설레임은 닮아 있다. 약간의 희망으로 리듬은 바꾸어 갈 수 있다. 올해도 서툰 채비를 하고 겨울에서 봄으로 걸어가본다.




� 겨울에서봄-겨울에서봄 음악듣기

https://youtu.be/U8FDI5Pty7Y?si=bsb41EbsVDZQ-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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