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驚蟄) 잠에서 깬 오일장

by 봉진

2026년 3월 5일(목)

최저온도 -1도/ 최고온도 14도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

오랜만에 나선 오일장은 잠에서 깬 듯 활기가 돋았다. 경칩이라고 해서 꼭 산속의 개구리만 깨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겨울에 침침하던 오일장도 잠에서 깨어 시골 장터의 상인들과 흙 만질 준비를 마친 이웃들이 와글와글 모였다.

오랜만에 나선 오일장은 가벼운 옷차림의 사람들 발걸음과 경쾌한 흥정 소리로 그 어느 때보다 활기가 넘쳤다.

장터 입구부터 초록빛 모종들과 다발로 묶인 묘목들이 늘어서 내 발길을 붙잡았다. 모종들이 나오기 시작했으니,

모종들만 보고도 무엇을 심어야 하는 철인지 어디 물어보지 않아도 저절로 아는 시기가 된다.


도시에 살 때는 봄이 오면 봄옷을 하나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계절을 맞이했다. 시골에 살면서 나의 '봄 쇼핑'은 완전히 달라졌다. 흙이 잔뜩 묻은 검은 비닐봉지에 상추와 대파 모종 같은 '생명'을 담아 드는 일이 설레었다.

작년에는 이것저것 욕심내서 여러 가지 종류 모종을 두세 개씩 사 와서 심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신중하게 골라 볼 작정이었지만, 작고 여린 모종 앞에서 욕심을 내려놓기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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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 가게 건너편 마른 막대기 같은 묘목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겉보기엔 그저 겨울의 땔감 같아 보이는데,

묘목 장수와 사람들은 그 마른 가지를 이리저리 살피는 모습에 나도 껴들어 뭐라도 고르고 싶지만, 이번에도 참는다.

우리 땅에 묘목을 심을 수 있는 날을 조금 더 기다려야 하기에 지금 섣부르게 사기엔 이르다. 그렇지만 마음속으로는 어떤 나무를 심어서 같이 나이 들까 하는 기대감에 그 시기를 앞당기고 싶다. 잎이 무성해지고 열매가 열리고

그늘이 생기는 나무라니! 지금 당장의 앙상함에 실망하지 않고, 2년 뒤 3년 뒤에 주렁주렁 매달릴 열매를 상상하는 농부들의 혜안. 묘목을 하나 사 온다는 건, 우리 집 마당에 다가올 몇 번의 눈부신 봄과 풍성한 가을을 미리 당겨서 사 오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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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나무에 매화꽃이 피기 시작한 걸 보고는 매화나무는 꼭 심어야지 다짐했다. 이른 봄의 추위를 무릅쓰고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를 보면서 봄의 기운을 가까이서 오래 관찰하고 싶다. 시골길에 매화나무들을 자주 보곤

했지만 며칠 놓치면 매화꽃이 만개했다가 금방 사라졌다. 오래 자주 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쉬웠던

매화를 가까이 두고 봄을 오래 잡아 두고 싶다.





봄 오일장 또 다른 묘미는 할머니들이 캐오신 냉이, 달래, 쑥 봄 3종 세트다. 바구니마다 캐오신 봄 3종 세트가

가지런히 담겨 있는데 장터에 일렬로 앉아서 냉이나 달래를 다듬고 계셨다. 체구가 작은할머니들이 나란히 봄 3종 세트를 팔고 계시니 어느 할머니에게 사야 하나 난감했다. 마트에 규격화된 비닐, 플라스틱 포장지에 포장된 나물들은 어딘가 숨 막혀 보이는데 할머니들의 봄 3종 세트는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자유롭고 풍성했다.

시장에 펼쳐진 날것의 초록들을 잔뜩 끌어안은 경칩(驚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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