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델마와 루이스> & 에세이 <자기만의 방> 후기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고서 든 생각은 다른 것도 많지만 우선 '이 사람 참 똑똑하다. 질투 난다'였다. 울프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 에세이를 남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쩜 이렇게 머리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잘 잡아두는 것인지. 의식의 흐름 기법이니 뭐니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평범할 일상 속에서 이런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부러울 일이다.
지나가는 생각들을 잡아둔 것만으로도 좋은 글이 된 것은 버지니아 울프의 통찰력이 남다른 탓이기도 하겠지만 울프가 그만큼 여성에게 가해진 차별이 만연해 있는 환경에 있었기 때문인 것도 있겠다.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라는 것도,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도 결국 여성의 주체성과 권리 및 자유 등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주어져야 함을 빗대어 이야기한 것으로 이해됐다.
그중에 '자기만의 방'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흥미로웠다. 울프는 여성은 거실에 있어야 했기 때문에 소설을 쓸 수밖에 없다 했지만, 그래서 집 안에 자기 방이 딱 주어진다고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설령 문을 잠글 수 있다고 해도 원하는 대로 글을 쓰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만의 방'은 무엇인가?
하나 예가 있다면, 델마와 루이스가 같이 달려간 절벽 너머의 그곳이다. 델마와 루이스가 떠나야 했던 것은 표면적으로는 살인을 했기 때문이지만, 그들은 범법에 대한 재판은 물론, 자신들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것조차 그들의 방식으로 이루어진, 남성들에 의해 세워진, 사회로부터 떠나, 끝내 오로지 자기들만이 결정하고 선택해서 갈 수 있는 절벽 너머 '자기만의 방'으로 향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공간은 단순히 물리적 환경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앞서 집 안에 자기 공간이 있다고 해서 원하는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은 여전히 가족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 공간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 독립해서 혼자 사는 집은 온전한가? 술 취한 윗집 아저씨가 층 헷갈려서 문 두들기는 것만으로도 매일을 두려움으로 살아야 할 수도 있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자기만의 방'이 될 수 없을 확률이 100%에 가깝다.
절벽 너머는 델마와 루이스가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을 것이다. <19호실로 가다>에서 수잔이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도 감정은 다르지만 같은 맥락일 것이다. 남성들의 세계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이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자기만의 방'은 사실 이 세상에 혼자 사는 것이 아닌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자기만의 방'은 실제 하지 않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자기만의 방'은 필요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 필요한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울프가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한 것은 사회로부터 존중을 전혀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주어지지 않는 현실이 눈앞을 가린다고, 본래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헷갈려서는 안 된다. 델마와 루이스의 선택에 대해서 이해하고 공감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렇게 '자기 만의방'으로 내모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된다. 그것은 아무리 잘 쳐줘야 차선일 뿐 최선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