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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비 Jan 08. 2024

초고령사회의 주택관리는 달라져야 한다.

서비스 확대와 적정 비용을 부담하는 체계로

  종전 단지에서 퇴사한 바로 다음날부터 새로운 단지에서 근무를 시작하였다. 고단한 일을 떠나 잠시 휴식기를 갖고 싶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하루빨리 와달라는 압박이 은근히 다. 새로운 일터는 50평형 이상으로만 건설된 아파트 약 800세대 규모의 단지. 주변에는 무려 100평형 드물지 않아 소위 부촌으로 불리는 마을이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평판만큼 인심도 또한 넉넉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희망 섞어 해보았다. 무엇보다도 지하철로 딱 두 정거장이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곳이어서 나에게는 그것만으로도 큰 매력이었.


  부임한던 날부터 관리사무소 직원들의 움직임은 분주하였다. 민원 현장에 출동하느라 수시로 들락날락하다 보니 다 같이 모여 얼굴 볼 여유가 거의 없었다.  8명 중 나를 포함하여 7명이 최근 1년 사이에 들어온 새 얼굴들이었다. 이곳 역시 만만치 않은 단지라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지표였다. 일하는 시간 동안 대개는 소장과 경리만 사무실에 휑하니 남아있는 경우가 많았다.


  직원들이 일을 나가고 없는 동안 민원창구는 불가피 경리가 전담을 하였다. 방문 민원도 종종 있지만, 대부분은 전화로 접수되고 있었다. 경리 경력 10년이 넘는 베테랑이라는데 끊임없이 울리는 민원전화를 받느라 낮시간에는 거의 자기 일에는 손을 대못하고 었다.  일을 맡아줄 서무가 한 사람 있으면 좋으련만 그 문제는 이미 부결된 일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직원을 한 사람 더 늘리는 문제는 관리비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커서 어느 단지에서나 거부감이 큰 현안이기는 하다. 그러니 비록 일손이 부족하더라도 버티며 해내야 한다는 입주민들의 주문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항상 일이 고되고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민원 전화는 대부분 개별 세대 전유 부분에 관한 문제에 집중되고 있었다. 관리사무소가 공용 부분만 관리하도록 되어있는 법과 원칙은 너무나 교과서적인 주장에 불과하며 철저히 무시되고 있었다. 내가 당신들 비싼 월급 주는데 무슨 소리하는 거냐는 식일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근저에 단지관리업무를 맡기는 위탁계약개별적으로 집사를 고용하는 행위 간의 구분을 명확히 하지 않은 오해와 간과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단지가 그러하지만, 최근 들어 그러한 주장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점은 특히 인구통계학적 관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소위 전후(戰後) 이비부머로 불리던 세대가 점차 노인인구로 편입되면서 갈수록 급증하는 추세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행 주택관리 제도는 공용 부분만을 관리하도록 그 범위를 제한하고 있지만, 최근 노인 계층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불가피 세대 내 영역인 전유 부분까지 살펴봐야 할 필요성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고령자일수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는 것은 관리 현장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는 실증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관리방식만을 고수하다가는 머지않아 관리역량의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서비스가 수요자들의 기대치에 훨씬 미치지 못하면서 외면받을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이다.


  대안으로 현행 관리업무에 주거복지와 노인복지적 성격을 가미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달리 말하자면, 관리업무의 범위를 세대 내까지 확대하고, 개별 세대는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도록 관리체제를 재설계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세대 내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하자를 해결하기 위해 당연히 외부 전문업체를 불러야 하는 경우보다 훨씬 저렴하고 비용효율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민원 전화는 하나같이 우리 집은 언제 오느냐, 왜 아직 안 오는 거냐며 애원과 아우성과 호통이 뒤섞여 다. 경리직원의 대답은 언제나 녹음기처럼 반복되고 있었다. "기전직원들이 모두 일을 나가서 지금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접수 순서대로 가고 있으니 시간을 정하지 말고 기다려주세요." 경리 본연의 업무는 퇴근시간이 지난 후에야 연장근로하며 챙기는 경우가 허다했다. 민원을 커버하다 보니 불가피한 일이지만, 그런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그나마 아직껏 잘 버텨주고 있는 것이 고마웠다. 혹시나 그러다가도 일이 힘들어서 또 그만두고 나가버리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떠나지 않았다. 


  지역난방방식인 아파트는 특히 겨울철이 되면 어느 단지나 갖가지 난방 관련 민원이 쇄도한. 물론 여기도 예외는 아니다. 게다가 준공된 지 20년훌쩍 지나서 누수 등 다른 잡다한 민원이 더해지며 일이 더욱 가중되어 특히 기전직원들에게는 힘든 계절이다. 사정이 그러하더라도 직원들이 서로 협력하고 묵묵히 움직이며 처리하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고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내가 소장으로서 이 사람들을 위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다름 아닌 위로와 격려라고 생각하였다.


  민원을 처리하고 돌아오는 직원들은 이 아파트단지 주택의 80% 이상이 노인들이 거주하는 세대라고 입을 모았다. 80%라니? 바로 내년(2025년)이면 우리나라 노인인구비율이 20%에 달해 이른바 초고령사회(Superaged Siciety)가 된다는데 아무래도 80%는 너무 과장된 것 같았다. 하지만, 난방이 잘 안 된다거나 안 틀어도 계속 방이 뜨겁다거나, 온도조절기가 고장 났다고 해서 해당 세대를 직접 방문하고 거주자를 만나고 돌아온 직원들의 말이 전혀 터무니없는 과장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려웠다. 나는 여기가 수도권 교외의 대형평형의 아파트단지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들은 서울 등 직장 가까운 곳에 살게 하고, 은퇴한 부모들이 이곳에 내려와 여유롭게 살아가는 동네가 아닐까 짐작되었다. 


  관리업무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들을 해결해 달라는 입주민들의 요구가 오늘도 민원이라는 이름으로 끊이지 않고 있다. 업계나 입주자들이나 이제는 상호 간에 좀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개선되기를 바란다. 관리업무의 범위를 전유 부분으로 확대하고, 수요자들은 적정한 서비스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나와야 할 때다. 부당한 줄 알면서도 억지 부리며 마냥 요구하는 입주민들이나, 마지못해 응하는 관리주체의 무기력한 대응방식은 이제 종식되어야 한다. 정당한 거래가 보장되고 근로자도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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