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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비 Aug 11. 2023

엄마 품에 돌아온 막내딸

옆집 할머니의 행복한 이야기

   퇴근길 집 앞에 이르렀을 때, 대문 밖 손잡이에 작은 비닐 꾸러미 하나가 묶여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상추 다발에 고추 몇 개가 곁들여져 있었다. 비닐봉지 주둥이를 철문 손잡이에 틀어모아 묶어놓은 모양이 정겨웠. 구로동 아이들 집에 가느라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에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다. '아니, 이건 또 누가 갖다 놨을까?' 이웃 간에 종종 있는 일이라 이번에는 누구인지 궁금하였다. 인사도 해야 할 테니 꼭 알아내야 했다. 얼른 사진을 찍어서 아내에게 보내주었더니 금방 문자로 답이 왔다. 옆집 아주머니라고 했다. 우리 집 벨을 눌렀다가 아무런 기척이 없자 아내에게 전화로 기별을 했다는 것이다. "아이고, 그래~? 너무나 감사하구마^^"


   우리 집 위아래로 대여섯 집은 여자들끼리 제법 왕래하며 지내는 사이다. 60대 중반인 아내를 빼면 모두가 70대 중반에 이른 중후한 어르신들이다. 막내 격인 올리비아는 그분들과 나이 차이커서 어렵고 부담스러운 면도 있지만, 그냥 편하게 형님, 또는 형님들이라고 부르기로 했단다. 그분들은 아마도 내가 동대표 회장을 역임한 이력을 들어 집사람을 회장님 댁이라 부르며 끼워주는 것 같았다. 대체로 연배가 비슷한 그분들끼리는 가끔 만나 밥도 같이 먹고, 길 건너 초록쉼터에 가서 차도 마시며 가깝게 지낸다. 때로는 옆집 아줌마가 모는 빨간색 소형 승용차를 함께 타고 교외로 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한다. 이웃끼리 즐겁게 사는 모습이 보기 좋고, 아내를 통해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


   우리가 사는 곳은 노인복지주택이다. 분양형이다. 노인복지법상 60세 이상만 거주할 수 있다. 대부분 부부만 살거나, 홀로 사는 집이 많다. 주차장법에 의하면, 주차구획이 세대 당 0.3대 이상이지만, 실제 건축은 약 0.9대 수준으로 하였다. 그래도 부족함이 없다. 세대 당 1대 이상 확보토록 한 아파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5년 전 입주 당시 주차장이 부족하지 않을까 우려가 없지 않았으나, 아직까지 평상시 주차공간이 부족한 예를 보지 못했다. 오히려 약간의 여유가 있는 편이어서 주차를 못해 애를 먹는 일은 거의 없다. 다만, 명절 연휴 때만큼은 예외다. 부모님 등 어르신을 찾아뵈러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여기가 은퇴자들이 거주하는 실버주택단지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다.

 

   아내와 띠 동갑인 옆집 아줌마는 혼자 산다. 입주 때부터 그렇다는 걸 알고 지냈다. 올리비아가 언젠가 그 집에 놀러 갔다가 그 형님이 살아온 얘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남편은 1960년대의 월남전 참전용사였다. 귀국해서는 건축기술자로 일하였으나 살림이 넉넉하지는 못했다. 주로 강원도와 경기도 일원에서 공사장을 옮겨 다녔고, 벽돌공으로 일하며 돈을 벌었다. 슬하에는 딸만 셋을 뒀다. 남편은 안타깝게도 훗날 고엽제 후유증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홀몸이 된 아주머니는 자식들 뒷바라지를 열심히 하였고, 딸들은 보답하듯 잘 자라서 각자 반듯한 가정을 건사하였다. 굴지의 전자회사에 다니는 둘째 사위의 권유로 이 집 노인복지주택을 자기 이름으로 분양받고 들어와 살게 되었다. 대문에는 국가유공자의 집 문패가 붙어 있다.


   아주머니는 매일 새벽 인근에 사는 둘째 딸네 집으로 가서 아침을 준비해 주고 돌아온다. 대학병원의 수간호원으로 일하는 딸의 분주한 아침 출근시간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했다. 입주하고 나서부터 지금껏 습관처럼 계속하는 지극한 딸 사랑, 사위 사랑, 외손자 사랑이다. 그런가 하면, 과수원을 하는 이천 언니집에 다녀오는 때는 가끔 배를 몇 개씩 가져다 기도 하고, 퇴촌 친구네에 갔다 오는 길에는 토마토를 싼 값에 대신 사다기도 한다. 주변의 친구와 친척을 방문하고 일을 돕는가 하면, 동시에 우리 집처럼 동네 사람들을 위해 과일과 채소를 대신 구매해 주기도 한다. 한 번 갖는 기회를 일석 삼조로 살려 활용하는 생활의 지혜다. 나는 옛날 시골에서나 느꼈던 이웃 간의 정이 바로 여기서 되살아나는 것 같아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아주머니는 아주머니대로 비록 일찍이 남편을 여읜 비운을 맞았지만, 늙어서 이렇게 좋은 집을 마련하고 편하게 살게 되어서 정말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더란다. 오가다 만날 때면 언제나 웃으시며 나보다 먼저 인사말을 나눠주시는 모습에서 정말 행복한 표정을 본다. 나보다 어른인 분들이 여기에 많이 살지만, 지나치다 만나면 서로 외면하지 않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이 많아 기분이 좋다. 


   연초에 아주머니 집에 막내딸이 들어왔다. 10여 년 전 일본에 건너가 살다가 귀국해 같이 살기로 한 것이다.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 정도 되었을까. 듣자 하니 나이가 적지 않은 데 독신이라고 하였다. 어딘가 직장에 다니며 다부지게 자기 앞가림을 하느라 바쁜 모양이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혼자 사는 엄마 집에서 모녀가 같이 살 수 있게 되었으니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로한 엄마랑 비혼인 딸이 같이 살면 서로 위로가 되고, 의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청년들의 결혼이 늦어지고 비혼도 늘어나는 요즘 추세다. 노인들은 말년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오손도손 가족과 함께 살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미친 집값으로 자식들이 따로 나가 살 집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장성한 자식들이 결혼하고 독립해서 반듯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나라는 훨씬 발전하고 부유해졌다지만, 불가피 부모와 한 집에서 함께 살거나 그래야 할 사정은 오히려 많아졌다. 그런 사정을 누가 뭐랄 수 있겠는가. 나이로 갈라 서로 따로 살아라고 간섭할 일이 아니다. 실상이 그러한데도 따로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요, 언어도단이다. 그런 일이 유독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에서 일어나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사유재산에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옆집 아주머니라고 썼지만, 그분은 할머니 연세다. 할머니라 불러야 맞을 법도 한데 60대 중반인 나의 입에서는 아주머니라 부르는 것이 더 편했다. 오십 보 백보, 도찐개찐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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