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주체가 무능하면 일어나는 일
실버주택 관리소장은 더 뛰어야 한다.
우리 집 지하 1층 헬스장에 다닌 지 6개월째다. 승강기만 타고 내려가면 바로 코 앞에 닿으니 너무나 편리하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 시설을 입주 한지 5년 만에 처음으로 본격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돌아보면 시간 낭비가 너무 컸다. 간단한 맨손체조를 시작으로 근육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섞어서 하다 보면 거의 1시간 반 가량이 후딱 지나간다. 하루 건너 격일로 빠짐없이 가고 있으니 이쯤 되면 거의 루틴으로 굳어진 것 같다. 운동을 마치고 나면 기분이 너무 좋다. 온갖 스트레스와 잡념이 정리되며 마음까지 산뜻해진다. 그래서 이곳을 더 애용하게 된다. 뿌듯한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좋은 시설을 왜 여태 사용하지 않았을까 후회가 되기도 한다. 이제 내가 헬스장을 가장 열심히 드나드는 모범생 중 한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나름 열심히 하는데도 불구하고 뱃살과 체중은 별 변화가 없다. 무엇보다도 체중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신경 쓰라던 의사 선생님의 오래전 말씀을 잊지 않고 있다. 실망스럽지만, 더딜지라도 점차 좋아지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다른 변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텅 빈 것 같던 허벅지에 뭔가 다시 채워진 것처럼 발걸음이 더 가벼워졌다. 특히 계단을 오르내릴 때면 시큼하고 쑤신 듯 아프던 무릎의 도가니도 이제는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호전되었다. 아무렴, 그렇지. 어딘가는 분명 더 좋아지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더 강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정상치를 약간 웃도는 혈압과 체중이 차차 정상 수준으로 내려가기를 바라며 집중 체크하고 있다. 아침 마라톤을 뛰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던 코 큰 아저씨 더스틴 호프만을 가끔 떠올려보곤 한다. 물에 흠뻑 젖은 얼굴에 수건을 둘러쓴 채 실 눈을 뜨고 물끄러미 벽시계를 쳐다보던 그 사람.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한다. 방금 뛴 마라톤 기록을 어제와 비교해 보며 하는 소리다. 영화 '마라톤 맨'의 첫 장면이다. 그것은 내가 운동을 할 때마다 생생하게 떠올리는 전설이자 의욕을 돋우는 길잡이가 되었다. 나도 탁상달력에 혈압과 체중을 꼬박꼬박 기록하며 그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헬스장 외에도 취향껏 여러 시설을 이용하는 입주민들이 참 많다. 당구장이 가장 인기 있어 보인다. 복도를 지나다 보면, 경쾌하게 부딪치는 당구볼 소리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들려오기도 한다. 건너편 탁구장에서도 심심찮게 남녀 간의 환호성 소리가 터져 나온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골프연습장과 스크린골프장은 항상 이용객이 많은 코너다. 노래방에서는 종종 꿍짝꿍짝 연주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이곳 노인복지주택단지 사람들의 여유롭고 건강한 일상의 이모저모다. 각 시설이 제 기능을 하면 이렇듯 입주민들이 건강도 다지고 이웃끼리 어울리며 즐겁게 살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훌륭하게 해 준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골고루 이용하고 싶은데 아직 그렇게는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홀로 지켜보며 군침만 삼키고 있는 신세가 바보스럽기만 하다.
반면 규모가 제법 큰 식당과 카페테리아, 그리고 샤워장은 준공 당시부터 지금껏 열중쉬어다. 식당은 특히나 노인복지주택의 필수시설이고 무엇보다도 입주자들의 기대가 가장 컸던 곳이다. 그게 아직껏 제기능을 하지 못하다 보니 실망한 나머지 여기 살기를 그만 포기하고 이사 간 사람들도 있다. 그와는 별도로 경로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도 상당하다. 구청, 시청에서는 노인복지주택은 모든 시설이 노인 위주로 설계가 되어서 노인정을 따로 둘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도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관계 당국의 설명은 그럴듯하지만, 허접하고 설득력이 없다. 그 문제는 입주 직후부터 거론되기 시작한 오래된 희망사항이다. 구청을 드나들며 몇 차례 타진을 해보기도 하였으나, 그때마다 퇴짜를 맞고 말았다. 반드시 운영위원회 이름으로 경로당 등록신청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시방편으로 채택해 가동 중인 운영간담회 이름으로는 절대 안 된다며 거부하였다. 보건복지부의 확고한 방침이기 때문이란다.
경로당 설치는 여전히 우리 단지의 가장 뜨거운 현안이다. 구청에 경로당이 정식 등록되어야 양곡을 비롯하여 각종 지원혜택을 받을 수 있다니 쉽사리 포기할 일도 아니다. 아파트의 경로당은 되고, 노인복지주택은 안 된다니 그 논리가 당최 이해할 수 없다. 심지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기분도 든다. 할머니들은 나라에서 쌀이 나오면, 식당에서 어울려 함께 밥을 해 먹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 일을 누가,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보건복지부 요구대로 따르자면, 법률이 규정하는 대로 운영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 필수이고 시급한 일이다. 당연히 운영규정을 개정해야 하는 일이다. 그것 말고도 규정이 제정된 지 오래되어 손 봐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대표들이 나서서 서둘러야 하겠지만, 이런 일은 관리주체가 나서서 해줘야 한다. 다시 말해 관리소장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다. 상황이 그러함에도 우리 단지의 소장은 이런 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관리규약준칙이 수차례 변경되었음에도 운영규정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개정하지 않았다. 처음 만들어진 운영규정을 붙들고 있으면서도 그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 잘 지키지도 않는다. 가관이다. 무능한 관리소장, 무능한 관리주체다. 오로지 수수료 몇 푼 받아먹겠다고 빨대 꽂아놓고 낮잠만 즐기는 좀비 관리주체는 단지 운영에 해악일 뿐이다. 자진해서 손을 떼고 어서 물러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