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이라는 진통제
한 달 중 대표회의를 전후한 날들은 소장에게 무척 신중하고 바쁜 시간이다. 회의 5일 전까지 회장과 협의해 안건을 확정해서 공고하고, 가급적 회의자료 배포까지 마치게 된다. 회의가 끝나면 그다음 날은 또 뒤처리하느라 여념이 없다. 회의록과 회의결과 공고, 사업자 선정결과 공고, 그리고 수의계약 사업자 선정결과 k-apt(국토부 공동주택관리시스템) 입력까지 죄다 회의 다음날 오후 6시까지는 완료해야 하는 일들이다.
지난주 금요일, 회의공고와 회의자료 배포를 일찌감치 마무리한 덕분에 모처럼 마음이 푸근해졌다. 피로가 누적된 탓인지 등짝이 뻐근하고 몸이 녹아내리는 듯 노곤하였다. 이번 주 월, 화요일 이틀간 연속으로 쉴까 생각하다가 결국 화요일 하루만 쉬기로 했다. 월요일 예정된 조경작업이 염려돼 도저히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과장이나 주임이 하는 말은 잘 듣지 않는 용역업자의 행태가 염려된 때문이다. 소장이 일일이 따라다니고 지켜보며 감독해도 욕심만큼 일처리 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새벽 5시 반, 지하 1층 헬스장 가서 나의 루틴(routine)화 된 운동을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10분간, 간단한 맨손체조.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며 워밍업(warming up)을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체조를 마치고 기계로 이동해 몇 가지 근육운동을 시작한다. 허공에 매달린 바(bar)를 양손 끝에 붙잡고 그대로 의자에 앉아서 위아래로 잡아당기기(lat pulldown)를 50회 정도 반복하고 나면, 머릿속에 쌓인 온갖 잡념과 스트레스가 일거에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자리를 연달아 옮겨가며 기계에 앉아 다리를 아래로 감기(seated legcurl)도 하고, 반대로 다리를 위로 들어 올리기(leg extension)도 한다. 허약해진 허벅지의 앞쪽과 뒤쪽, 그리고 엉덩이 근육 강화에 좋다고 한다. 이제 어깨부근의 이두박근과 가슴, 그리고 등 쪽 근육을 다지는 펙 덱 플라이(pec deck fly)로 자리를 옮겨 앉는다. 의자에 정좌한 자세로 좌우 양손을 뻗어 각각 손잡이를 꽉 쥐고 밖으로 반원만큼 밀었다가 다시 안으로 당기기를 역시 50회 정도 반복한다. 윗몸일으키기와 허리 돌리기까지 합하여 총 20여 분간의 근육운동을 끝낸다. 그리고 나서 러닝머신에 올라 30분 정도 빠른 걸음을 걷고 운동을 마친다. 10-20-30분 순으로 도합 1시간 정도를 헬스장에서 보내고 나면, 마음속의 갖가지 복잡한 심사가 정리되고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새벽운동은 하루하루를 버티고 견뎌내는 원동력이다.
어느덧 다시 맞이한 12월, 내가 이 단지에 부임해 근무한 지 꼭 2년이 되는 기념일 같은 달이다. 어느 단지나 힘들지 않은 곳은 없지만, 여기에서 쏟아부은 지난 720일은 특별했다. 그만큼의 일관된 시간을 지속한 첫 번째 케이스를 만들어냈다는 점이 무엇보다 뿌듯했다. 무례, 어쭙잖은 겁박 같은 어색하고 난감한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어떤 파열음도 없이 조용히 정리하며 가까스로 어려운 국면들을 타개해 왔다. 내면 깊은 속 어느 구석에 도사리고 있을 불같은 성질이 혹여 밖으로 튀어나올까 봐 경계하며 강력한 억지력을 발휘해야 했다.
버티고 견뎌내기가 힘겨웠던 순간에는 차라리 이 자리를 떠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왜 안 했겠는가. 당시의 솔직하고 절박한 심경을 본사에 여러 차례 호소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재계약까지 채 1년도 남지 않았는데 자리를 바꾸기가 곤란하지 않냐는 싸늘한 반응만 도돌이표처럼 들어야 했다. 당신이 무너지면 그 누구도 막기 어렵다는 역설로도 들렸다. 기대를 접어야 했다. 정신적으로 적잖이 힘들었지만, 차라리 최후의 보루가 되어달라는 요구로 해석하기로 하였다. 난국을 돌파해야 했다.
전장 같은 일터에서 집에만 돌아오면 긴장이 풀리며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기도 싫었다. 마치 자포자기한 칠면조가 부리를 모래 속에 쑤셔 박고 마는 것처럼 일찌감치 고꾸라져 잠자리에 들기가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뇌는 이러면 안 되는데를 외치지만, 몸은 그 신호를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특히 주말이 되면 신체리듬이 최저점으로 추락하며 가장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배터리가 다한 스마트폰처럼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온전히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으로만 쓰고 싶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무기력하다가도 월요일만 되면 아침에 기계처럼 벌떡 일어나 출근준비에 몰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마치 진통제를 먹고 일어난 사람 같다. 주말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참으로 신기한 현상이다. 월요병이라던 과거의 통념이 이제는 활력소 월요약으로 바뀌어야 할 판이다. 아니, 월요일 보다 출근이라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평생 고생하며 일만 하고 살 거냐지만, 정작 쉬어보면 오히려 그것이 더 두려운 현실이다. 아무 일도 안 하고 집에만 있는 느슨한 삶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직도 이른 것만 같다. 어쩌다 주중에 하루이틀을 쉬어간다면 더할나위 없는 꿀맛이다. 67세, 2년 근속을 자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