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에서 조립카를 받은 지는 올해 연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르쉐 차량을 계약하게 되면, 일정 기간 후 기다림에 지친 계약자들을 위해서 조립카를 보내주는데, 아주 작은 피규어 스타일의 장난감 자동차다. 사실 차량을 빨리 만들어서 인도해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포르쉐의 경우 양산이긴 하나, 쿼터를 배정받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쿼터 배정 후 옵션을 확정한 후에 생산이 시작된다. 그리고 독일에서 배를 타고 한국으로 오는 과정에서도 시간이 걸리기에, 예전부터 기본적으로 6개월~1년 정도는 기다려야 하는 차종이었다. 현재는 너무나 주문량이 밀려있는 탓에, 911 카레라 모델의 경우 2년 반 정도, 718의 경우 계약을 해도 현재 모델을 받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기 때문에 주문을 아예 받지 않는 딜러사도 있다.
사실 이 조립카를 받는다고 기다림의 시간이 좀 더 짧게 느껴지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이 조립카를 받는 시점에 나는 이미 계약 후 1년을 기다리고 있던 시점이었다. GT3 모델은 딜러사에서도 쿼터 배정을 많이 받지 못하기에, 받을 때 되면 받겠지 하는 무한 존버의 마음으로 잊고 살았는데, 계약한 걸 잊고 살다가 이걸 받으니, 다시 또 얼마를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지?로 조립카를 보내준 의미가 강제 해석이 된다.
Model : Porsche 356 Nr.1
이 차량의 모델명은 356 Nr.1 1948년에 만들어진 로드스터다. 911 시리즈의 원형인 제1호 레이스카 모델로, 알루미늄 바디와 35마력의 박서엔진을 탑재하고, 시속 135km/h까지 달릴 수 있는, 스포티하면서 실용적인 포르쉐의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인 로드스터 차량이다. 천재 자동차 박사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아들 '페리 포르쉐'가 마음에 드는 차가 없어서 포르쉐라는 회사를 만들어 생산한 첫 차가 포르쉐 356이다. 아버지가 히틀러를 도와준 죄로 프랑스에 잡혀가자, 보석 비용 마련을 위해 만든 차라고 한다.
작은 조립카로 보니 정말 장난감 정도의 느낌밖에 와닿지 않지만, 실물을 보면 느낌이 좀 달라진다. 이 차량을 1948년에 생산하여 판매했는데, 우리나라는 그 시절 이제야 일본에서 벗어난 정도의 시기임을 감안하면, 그 당시의 독일과 미국의 제조업 수준은 후진국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356 모델은 인기가 많아서 여러 세대에 걸쳐 생산됐다.
2017년에 개봉한 영화 오버드라이브를 보면 부자 빌런의 차량 콜렉션 창고에 보관 중인 아주 깔끔한 포르쉐 356A 스피드스터를 볼 수 있다. 이 모델은 조립카로 받은 356 라인을 대체하는 후속 모델로 당시에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위의 356 모델을 자세히 보면 이 안에서 911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전면의 동그란 헤드라이트와 미끄럽게 흘러 내려오는 차량 후면의 루프라인은 현재 포르쉐의 메인 기함인 911 모델의 베이스가 됐고, 356의 RR(Rear Engine, Rear Drive : 후방엔진 후륜구동 방식) 구동방식 또한 지금의 911까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설레는 시기 : 바로 지금이다.
나는 어떤 이벤트가 미래에 일어날 일이지만, 그 일이 확정되어 있고, 그 일이 발생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가 가장 설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 이벤트가 발생할 때 느끼는 설렘과 그전에 느끼고 있던 설렘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막상 그 이벤트가 발생한 후에는 그전까지 가지고 있던 기대감이나 설렘이 상당 부분 소멸되는 걸 경험한다. 이는 인간의 본성으로, 이미 이뤄낸 것보다 더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또 그 목표 달성으로 느낄 성취감과 설렘을 생각하며 지금의 고통을 인내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게 아닐까.
더 기다려야 함을 알지만, 또한 곧 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조립카를 받고 나서 나는 다시 설레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직 차량을 받기 전이지만, 이제 다시 차량을 받고 운전하는 일상들을 상상해보곤 한다. 내 사랑하는 와이프와 함께 멋진 곳을 드라이브하다가 한적한 카페에 들러 바다를 보며 커피 한잔 마시는 그런 상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