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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윤희 Nov 27. 2021

2020년 3월 8일


일주일 동안 집안을 정리했다. 이 집에 온 후로 짐이 계속 늘어났는데 작년 하반기부터는 내 그림들로 인해 집이 더욱 산만해지고 좁아졌기 때문이다. 방 두 칸이 전부인 작은 집에 구석구석 쌓아놓은 것들로 숨쉬기가 힘들게 느껴졌다.  물론 정리해야 할 목록엔 비단이가 사용하던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비단이 옷가지, 이불, 방석, 가방 등은 간직하기 위해 한 곳에 정리해 놓고 나머지 자잘한 것들은 버렸다. 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건 방석과 계단이었다. 방석은 반으로 접어 침대에 놓고 쿠션처럼 쓰기로 했다. 비단이 체취는 다 날아갔지만 그래도 비단이가 쓰던 방석과 함께 잠들면 마음이 안정된다. 큰 방에 있던 좌식 소파용 계단은 비단이가 많이 아플 때 좌식 소파를 치우면서 계단도 함께 정리했다. 침대에 있던 3단 계단은 책과 박스 헌 옷 등으로 만든 거였다. 비단이는 그 계단에서 현관을 바라보는 자세로 있는 걸 좋아했다. 비단이가 특히 좋아했던 2번째 계단은 더 따뜻하고 폭신한 담요로 항상 깔아놓았었다.  


짐을 정리하면서 자꾸만 눈물이 나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많이 괜찮은 줄 알았는데 전혀 괜찮아지지 않은 것 같아서 힘들었다. 왜 좋았던 기억은 먼 곳에 있고 가슴 아픈 기억은 가까운 곳에 있는지.  반려동물 커뮤니티에서 이런 글을 봤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 생각나는데 몇 달 차이로 무지개다리 건넌 강아지는 매일 몇 번이고 생각난다고. 솔직한 글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솔직해서 민망한 웃음이 나고 어쩔 수 없이 나도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깊이 공감했다. 


비단이가 떠난 지 두 달이 훨씬 넘었지만 매일 몇 번이고 울음이 난다. 친정에서 떠난 희구, 뚝심이, 시월이 모두 일주일 지나니 울음이 나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그동안은 몰랐다. 주위에 강아지와 이별한 지인들을 보며 단지 슬프겠다는 생각이 들뿐 구체적인 슬픔의 상태에 대해 생각해 보지 못했다. 이제는 알 것 같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굳이 눈물을 보이려 하지 않듯이 그들도 그렇게 했던 것일 뿐 줄곧 슬픈 상태였고 그 슬픔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흉터처럼 그냥 그렇게 남아 있는 것이라는 걸 말이다.


이제껏 누렸던 커다란 기쁨에 상응하는 커다란 슬픔이 순서를 기다렸다가 왔을 뿐이고 이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 이렇게 많이 슬픈 건 그만큼 비단이와 행복했기 때문이었구나.  


20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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