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ewover Jul 02. 2019

문화기획자_넌 누구냐?

직업탐구_문화기획자

최근 ㅍㅍㅅㅅ에서 이승환 대표의 인터뷰들이 마음에 들어 챙겨 읽던 차에 '문화기획자'를 만날 약속이 잡혔다. 물어보고 싶은 질문들을 정리하다 보니 인터뷰 준비하는 것처럼 해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인터뷰하는 법'을 찾아보고 세운 원칙이 2가지. 하나는 인터뷰 기사를 쓴다면 그 독자가 누가 될지를 고민해보고 질문을 뽑을 것. 나는 독자를 나와 같은 입장인 사람들 즉, 이 직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로 정했다. 두 번째는 전체 이야기의 흐름이 쭉 연결되게 질문을 배치하는 것. 뽑아둔 질문 리스트들을 분류하고 매끄러운 이야기 흐름에 맞게 순서를 정리해보았다. (물론 이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 밑그림을 그리고 들어가는 것과는 다를 것 같아서.)

인터뷰를 하는 법이 궁금해 돌아오는 길에 인터뷰에 관한 책을 한 권 주문했다.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 씨가 쓴 <인터뷰 특강>

인터뷰가 끝나고 인터뷰하는 법을 공부하는 이상한 상황이긴 하지만 다음에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이야기 나눌 날을 기약하며._.



(아래는 2시간 동안 열띠게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미약한 나의 기억력에 기대어 재구성한 내용이다.)




어떤 일을 하시나요?


콘텐츠 기획을 해요. 책, 전시, 공연, 정부사업 등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는 기획자이고 일인 사업자로 일하고 있어요.


프리랜서 기획자로 일을 하면 일은 보통 어떻게 들어오나요?


저는 오랜 시간 출판기획자로 일을 했고 그 과정에서 베스트셀러를 꽤 많이 낸 편이에요. 같이 작업했던 사람이 주변 사람에게 소개해주고 그렇게 소개받은 사람이 찾아와 새로운 일을 제안하고, 이렇게 일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먼저 제안을 하거나 PR을 해서 일을 따내는 일은 최근에는 거의 없는 편이에요. 정부, 작가, 협회 등 다양한 곳에서 제안을 받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겠죠?


물론 저도 거의 15년 정도 되는 시간 동안은 회사 소속으로 일을 하기도 하고 혼자 레퍼런스를 쌓아나가면서 묵묵히 묻어둔 세월이 있죠. 뭐든지 쌓이면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그 시간 동안 배가 너무 고파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는 게 참 아쉬워요. 문화기획이 이걸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분야예요. 대부분 현실적인 문제 즉 돈 때문에 중간에 사라져 버려요. 그래서 저는 직장을 다니면서 문화기획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직장을 다니면서 꾸준히 관심 있는 분야의 기획을 하고 또 하고 자신의 콘텐츠를 쌓아나가는 과정을 직장과 함께 견디고 버티는 걸 추천해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으로 이 일을 할 수 있는 때가 와요.


주로 혼자 일하시나요?


네, 직원 없이 혼자 일하고 있어요. 책임져야 하는 건 딸내미 한 명이면 충분하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고, 또 고정된 직원이 없어서 가질 수 있는 유연성 때문이기도 해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모든 분야를 잘하는 사람이란 있을 수 없어요. 프로젝트별로 팀을 꾸려서 움직이면 각 프로젝트에 딱 맞는 최적의 사람들과 일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각 프로젝트에 맞춰 그 안에 필요한 사람들을 섭외해 팀을 꾸려 진행을 하죠. 대부분 관련 분야의 전문가, 또 저는 어떤 프로젝트이든 그 과정을 책으로 담아 출판하는 경우가 많이 때문에 작가분들과도 일을 많이 하고요. 팀 안에 기획자는 늘 저 한 명이예요.


그동안 어떤 기획들을 해오셨는지가 궁금해요.


현재 진행 중인 것만 20개가 넘어요. 책만 해도 15권이 동시에 진행되는 중이에요. 올해에만 책이 7권 나올 예정이고요. 출판사도 아니고 저 혼자인데도 엄청 많죠? 그 외에도 기업이나 정부와 같이 진행하는 프로젝트들도 있고요.

최근에 진행했던 건  '술'과 관련된 기획들이 좀 있었어요. 막걸리 학교 허시명 선생님과 막걸리 책을 냈던 것을 시작으로 2017년에는 헝가리에서 '주안상'을 주제로 전통주 전시를 했었어요. 그냥 무작정 헝가리 한국 문화원에 "내가 한국 전통주의 대가를 아는데!"로 시작해서 진행되었던 기획이었죠. 이번 '술빚는 뉴욕'도 그 경험들 덕분에 진행할 수 있었던 기획이었어요. 허시명 선생님의 소개로 유명한 한국 전통주들을 뉴욕에 소개하고 직접 술을 빚어보고 한국 음식과의 페어링 선보이는 파티로 마무리했었죠. 최근에는 이렇게 외국에 한국을 알리는 기획들을 많았던 것 같아요. 한국문화원, 관광부 등 다양한 곳과 같이 일을 했었죠.


외국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여행을 공짜로 갈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겠네요.


맞아요. 저한테도 그 점이 주는 만족도가 매우 높아요. 여행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워낙 많이 다니기도 해서 그냥 여행은 이제 조금 재미가 없더라고요. 이렇게 일을 만들어서 여행을 가다 보니 새로운 안경을 쓰고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에요. 이번 뉴욕은 '술'이라는 안경을 쓰고 다녀왔죠. 딸이 뉴욕에서 디자이너로 일을 하고 있어 뉴욕은 꽤 자주 갔었는데 뉴욕에 양조장이 이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어요. 셰프 친구와 일본 여행을 갔을 때는 안주가 나오는 순서에 대해 이야기하고, 편의점에서 온갖 걸 다 사다가 한입씩 먹어보며 맛 품평회를 열기도 했었죠. 이렇게 하나씩 새로운 안경을 쓰고 그 관점에서 모든 걸 바라보는 여행이 정말 매력적이에요. 앞으로도 이렇게 일을 만들어서 쭉 다니려고 해요. 최근에는 네덜란드에서 일을 기획 중인데 이번에는 콘셉트를 조금 더 넓혀서 '발효'로 잡아볼까 해요. 소금, 간장, 된장을 만드는 사업을 진행하는 곳과도 이야기를 쭉 진행하는 중이거든요(아직 돈이 되지는 않지만 이렇게 사이드로 묵묵히 진행하는 기획들이 많아요. 그러다가 언젠가 톡 튀어 오르는 거죠.) 술도 장도 발효라는 키워드로 묶을 수 있으니까 연결해보는 거죠.


일이 일로 연결이 많이 되는 것 같네요.


그럼요. 저는 특히 그런 것 같아요. '술'을 가지고 진행하고 있는 기획들도 허시명 선생님과 쓴 책이 시작이었죠. 그다음에 한국 전통주를 세계에 알리는 일이 연이어 진행되고 지금은 지방에 양조장을 가지고 하는 정부 도시재생사업을 따내서 진행 중이에요.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듯이 기획도 진화하고 확장하면서 다음으로 연결되는 것 같아요.


출판기획이 메인이라고는 하나 전혀 다른 분야에서도 활동을 많이 하시는데 그 중심에서 본인의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출판뿐 아니라 전시, 홍보 프로젝트 등 다양한 곳에서 저를 찾아오는 이유는 하나예요. '일이 되게 하는 것' 제가 가장 잘하는 일이죠. 저는 기획자는 일이 되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내는 것 까지는 술술 풀릴 수 있어요. 하지만 일을 진행하려고 하면 그 이해관계들이 서로 엉키기 시작해요. 이때 이걸 조율하고 또 해결책을 찾아 끌고 나가는 능력이 필요해요.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엎어지는 일이 반 정도 되기 때문에 기획자로서 중요한 자질을 꼽으라면 인내심? 안되고 엎어져도 좌절하지 않는 해맑음? 일 것 같아요.

그리고 욕심부리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저는 기획자를 '밤하늘'에 비유해요. 내가 튀려고 하면 죽도 밥도 안돼요. 그 콘텐츠에서 빛나야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을 서포트해줘야 하죠. '나는 너를 스타로 만들어볼 생각이야.' 하는 마음을 가지고 진정성 있게 다가가면 그 사람이 자기가 가진 모든 콘텐츠를 내줘요. 제가 어둡게 배경으로 스며들수록 콘텐츠가 빛이 나는 거죠. 이해관계가 서로 엉켜 누군가 포기해야 할 때도 제 부분을 가장 먼저 포기해요. 그런 욕심이 없었던 게 좋은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으며 꾸준히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


세상이 엄청 빠르게 변하는데 그 속에서 '기획'일을 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출판업계가 힘들다고 하는데 저는 이일을 시작한 이래로 수입이 가장 높아요. 출판사들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늘 놀래요. 15년 전쯤 콘텐츠를 담을 그릇으로 '책'이라는 형태만을 집착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은 엄청나게 변화할 것이라고 확신했거든요. 그래서 책 외의 많은 방식들을 배우고 시도해보고 했던 것이 지금 이 업계에서 제가 가지는 경쟁력을 만들어준 것 같아요.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흐름에 늘 따라가려고 노력은 하지만 사실 기발하고 재미난 기획들은 젊은 친구들이 더 잘해요. 대신 저는 경력이 있으니 일이 돌라가게 하는 능력이 젊은 친구들보다 좋죠. 경력이라는 게 문제가 생길 걸 조금 더 빨리 볼 줄 아는 눈인 것 같아요. 다섯 걸음쯤 가면 꼬꾸라질게 제 눈에는 더 빨리 보이는 거죠. 지뢰 처리능력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 저거 저거 몇 걸음 더 가면 터지겠는데 얼른 치워줘야겠다.'가 가능해지는 거죠.


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조건 쌓아 나가야 해요. 성실한 건 아무도 못 이겨요. 한 분야를 꾸준히 하며 쌓아나가서 그 분야를 검색하면 나오는 사람이 되는 게 문지방에 발을 들여놓는 첫 단계인 것 같아요. 그러고 나면 일이 연결돼요. 아까 얘기했듯이 뭍어두는 세월이 필요해요.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아 힘들지만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자기만의 콘텐츠가 모이면 그게 힘이 돼요. 아이디어를 내고 이런 걸 고민하는 게 너무너무 재미있다. 하는 사람이라면 무작정 뭐든지 시작해봐요.

저는 제 일이 너무너무 재미있거든요. 일과 놀이의 경계가 없다는 게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노는 게 일이고 일이 노는 거라고 생각해요. 놀다가 아이디어가 나오고 친구와 술 먹으며 기획 이야기를 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미팅을 하면서 그다음 프로젝트가 꾸려지기도 해요. 처음 몇 년간은 힘들 수도 있는 길이기 때문에 정말 나는 이게 너무 재미있다. 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요. 돈이 안 되는 일은 재미없으면 못하거든요!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