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에 담아 먹기
그릇에 담아 먹는데 시간이 한참 더 들어가는 것도 설거지 한두 개 늘어나는 게 눈물 나게 슬픈 일도 아닌데 그 '한 발자국 더'가 늘 쉽지 않았다. 엄마가 가끔 서울에 올라와 냉장고에 있던 반찬을 그릇 그릇 담아 늘어놓고 먹으면 그 전날 반찬 그릇 채 꺼내 먹던 것보다 훨씬 맛있다는 걸 종종 경험하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먹을 때가 되면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아'하는 생각이 옷자락을 잡아 끈다.
평소 심심하리만치 잔잔한 예능을 좋아한다.
숲 속의 작은집, 제주도 자연 한가운데 작은 집에서 며칠간 밥해먹고 뒹굴며 지내는 관찰(?) 예능인데 볼 때마다 나도 한 보름 저런 곳에 콕 박혀 핸드폰도 꺼버린 채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어렴풋히 느끼며 지내보고 싶다. 며칠 전 또(난 왜 이렇게 봤던 걸 다시 보는 걸 좋아하는지, 이 예능도 벌써 3번은 넘어 본 듯싶다) 숲 속의 작은집을 보고 나서 자꾸 눈에 밝힌 메뉴가 있었다. 쑥 부꾸미에 달래장 그리고 들기름에 부친 두부.
들기름 들깨를 워낙 좋아해 냉장고에 떨어질 날이 없고 두부도 사다 놨으니 오늘이 날이다.
땅두릅을 쪄서 된장에 조물조물 무친 두릅나물, 시금치를 3단이나 사는 바람에 그린스무디용 시금치, 시금치 카레를 만들고도 남아 들깨가루와 간장에 살짝 무친 시금치나물, 오독오독 먹기 시작하면 잘 멈추지 못하는 오이무침 까지 골고루 그릇에 담아 놓고 두부를 부쳤다.
자글자글 두부가 부쳐지는 소리를 들으며 며칠 전 봤던 그 장면을 다시 틀어놓으면 준비 끝.
오늘의 사부작_ 봄 냄새나는 저녁식사, 그릇에 담아서 천천히 먹기
지금 드는 생각
_성격 급한 나에게 천천히 먹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_예쁜 그릇이 사고 싶어 졌다.
_벌써 정한 내일 아침 메뉴: 바게트 빵 위에 아보카도를 얹고 소금 후추 올리브 오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