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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wover Feb 02. 2020

네가 그렇게 말했잖아!

상대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는데 내 귀에는 그렇게 들리는 '고장 난 대화'


책을 좋아하고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책 자체를 그냥 좋아한다.) 기록을 남기는 걸 좋아하다 보니 읽고 나서 브런치에도 인스타에도 끄적끄적 써서 올린 책에 대한 글이 몇 편 쌓였다. 그 길을 따라 우연한 기회로 '리뷰를 남겨주세요'라는 요청을 받아 이 책을 만났다.  


얼마 전, 오픈컬리지를 통해 참여했던 심리학 모임에서 <나는 네가 듣고 싶은 말을 하기로 했다>라는 책을 다뤘었는데 그 책도, 오늘 이야기할 <고장 난 대화>도, 두 권 모두 딱 3개월 전의 내가 읽었어야 할 책이었다.


4개월 전쯤 HR 회사로의 이직을 결심하고 회사를 때려치웠지만 나는 HR 회사에 가지 않았다. HR 책을 있는 대로 쌓아두고 읽어치우긴 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불안했다.

'HR 회사에 들어가면 또다시 1~2년 안에 나올 것 같아. 이 길이 아니었다고 이번이랑 같은 말을 하면서...'

회사를 두 곳 다녔는데 둘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다시 또 새로 시작하자니 시간은 한참 지나갔는데 아무것도 쌓인 것이 없는 이 상황이 다시 반복될까봐 겁났다. 잘못된 선택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음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에 선택 자체를 피해버렸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마음만 뚱뚱하게 키우며 시간이 갔다.


나는 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세상만사에 관심이 많았고, 세상에는 하고 싶은 일, 재미있는 일 투성이었다. 그런데 이때에는 매일 같이 하고 싶은 일과 좋아하는 일이 하나씩 하나씩 사라져 갔다. 사람을 만날 때면 누가 나에게 질문을 던질까봐 두려웠다.

무슨 일 하세요? 무슨 일 준비하세요? 무슨 일이 하고 싶으세요? 적어도 셋 중 하나의 답은 가지고 있어야 정신 챙기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일 텐데 나에게는 셋 다 없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데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던 나였는데 이제는 자꾸 피하고 싶었다.


자소서를 쓰고 싶은 생각도 가고 싶은 회사도 없었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내 꼴'을 보기 싫어 잠 못 들고 새벽 4시까지 구인 사이트만 뒤졌던 날도 많았고, 뭐라도 챙겨 나가 카페에서 6시간 7시간씩 앉아있다 오곤 했다. 좋아하던 일(새로운 사람 만나는 일)이 이대로 영영 싫어져버릴까봐 억지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는 환경에 자꾸 나를 밀어 넣었다.


그러면서 생긴 자격지심,

뚝뚝 떨어져 버린 자존감은

고장 난 대화의 시작이 되었다.  




나의 고장 난 대화는 어디서부터 왔는가


작가는 고장 나지 않은 대화를 찾기 위해 고장 난 대화를 걸러내는 방법을 쓰고 있다. 그렇게 list up 된 고장 난 대화 중에는 내 양심을 콕콕 찌르는 문장들이 많았다.

p.21 <듣기>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척하면서, 그 후에 자신이 할 이야기를 하는 경우
-상대의 이야기를 자신의 생각, 기억, 감정에 따라 원래 의도와 달리 왜곡해서 듣는 경우
-상대의 감정에 대해서 자신이 책임을 지려고 하는 경우(자기 잘못이 아닌데 과하게 자책하며 자기 잘못이라고 하는 경우)
P.22 <말하기>
-말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상대가 받아들이고 동조해주길 강요하는 경우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하는 것과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억누르거나 외면하는 경우


p.25 콤플렉스는 듣기 능력을 떨어드린다.

내가 이 책을 3개월 전에 읽었으면 좋았을걸..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부분이다. 자존감 도둑과 함께하는 직장 생활로 지칠 대로 지친 줄 알았는데 일을 그만두고 알았다. '아 아직 더 떨어질 구석이 남았었구나.'

이때의 나는(여전히 그렇지만...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 직업, 도전, 취직 등과 조금이라도 연결된 이야기가 나오면 상대방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상대방의 말을 나를 향한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콤플렉스가 잔뜩 뭍은 나의 자의적 해석들은 싸움을, 상처를, 단절을 가져왔다. <나는 네가 듣고 싶은 말을 하기로 했다>에서는 '피해인지'를 들어 이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 인지란 사고가 자동으로 연결되는 부분인데, 여기에 오류가 생겨 상대방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곡해해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라고.


상황의 변화는 악화되어만 가던 문제에 재동을 걸어줬다. 내 주위에는 좋은 서포트 그룹이 있었고, 부담스럽고 우려 가득한 상황이었지만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리지는 않을 만큼의 에너지는 남아 있었다. 운이 잘 맞물려 들어간 덕분에 그동안 하고는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을 해볼 수 있게 되었다. 다시 재미있는 일이, 하고 싶은 일이 하나씩 하나씩 되살아났다.


이제는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마음에게 먹이를 주며 하루를 보내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 생긴 습관은 잘 사라지지를 않는다. 내 고장 난 대화의 '원인'을 찾았으니 해결책을 찾아 풀어나가보려 한다.



고장 난 대화 풀어나가는 법

책에서는 다양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평소 '쓰는 것'을 통해 생각을 정리해 버릇 해왔기 때문에 감정일기 와 데카르트 사분면처럼 쓰면서 풀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시도해봤다.


감정 일기

p.141 나의 감정은 단순하지 않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는 연습을 못하는 사람일수록, 심장의 두근거림을 단순한 불안으로 여긴다. 떨림의 원인이 분노인데 불안으로 착각하거나 두근거림의 이유를 모르게 되면, 주변 사람들이 괜찮다고 말을 해도 편안해지지 않는다.
p.142 리사 펠드먼 배럿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감정표현에 서툰 사람에게 감정 단어를 학습하는 것을 권한다. 또 비슷해 보이는 감정의 차이도 학습해보길 권한다. 자기감정을 알고 섬세하게 인식하게 될 때, 정서적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자기 마음을 더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된다. 감정 일기와 섬세화 연습을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생각해보면 전에 초등학생 토론 논술 강사로 일할 때 내가 많이 써먹었던 방법이었다. 짜증나, 싫어, 그냥 등의 말로 모든 감정을 표현하는 아이들에게 자기감정을 들여다보고, 감정이 상한 이유,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을 깨닫게 하기 위해 단어를 치환해보는 연습을 시켰었다. 예를 들면 지금 이 상황에서 '짜증나' 대신 쓸 수 있는 10개의 말을 찾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감정의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번엔 내가 종이를 들고 앉아, '너무해, 무시당한 기분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등등 격한 감정을 내뱉듯 담았던 말들을 적어두고 자세한 말들로 바꿔보았다. 그렇게 적다 보니 창피해서, 쪽팔려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는 말로 덮어버린 속마음이 보였다.


데카르트 사분면

p.144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질까?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라. NLP(신경언어프로그래밍)기법 중 하나인 '데카르트 사분면'이라는 기법을 통해 자기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가로축에 이직과 현직장생활 유지를 놓고 세로축을 장점과 단점으로 나눠 종이에 쓰면서 생각을 정리해보는 것인데, 나는 최근 겪은 갈등 중 계속 반복되는 비슷한 케이스를 가지고 적용해봤다. 가로축에는 갈등의 시작이 나에게 있었는지 외부에 있었는지를 적었고, 세로축에는 갈등의 원인이 해결 가능한지를 놓고 정리했다.



이렇게 정리한 내용들 중 일부 조심스럽게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는데, 오해가 풀리는 구석도 있었고, 사과받은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내가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곡해하는 부분들도 있어 오랜 시간 그 사람의 속마음을 듣기도 했다. 믿을 수 있는, 내 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혼자 고민한 내용들을 같이 들여다보는 것도 추천한다. 물론 아주 조심스럽게. 한 번에 전체를 오픈하지 말고 한 발자국씩.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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