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day Nov 27. 2023

서툴고 투박한 모양의 고백  

용기의 단어들이 응축된 디저트, 스콘

피크닉을 가는 날이면 스콘을 챙긴다. 사각형의 도시락 용기에 울퉁불퉁 모난 스콘을 넣고, 새콤한 라즈베리 잼과 얌전한 클로티드 크림도 함께 담아 본다. 돗자리를 펴고 마주 앉아 두 손으로 스콘의 가장 따듯한 심장을 번뜩 가르고, 그 위에 빨강과 하양을 듬뿍 올린다. 오월의 빨간 장미, 팔월의 하얀 수국 다발을 건네듯 달콤한 스콘을 건넨다.


반죽을 겹겹이 쌓아 만드는 스콘. 몇 번 썼다 지우길 반복하는 고백 편지 같다. 지름 약 5-6cm 정도의 동그란 영국식 스콘을 좋아한다. 반듯하게 부풀지 못하고 약간 어느 쪽으로든 기울어져 있는 게 꼭 과하게 부푼 사랑의 모양 같다. 결스콘을 만들 때 중요한 건 단연코 결이다. 페이스트리같이 얇은 결은 오븐 안에서 최대한으로 확장되어야 해야 하는데, 자칫 사용한 재료나 버터의 온도가 높거나 반죽이 충분한 냉장 휴지를 거치지 않으면 결이 엉겨 붙을 수 있다. 그러므로 스콘 반죽의 온도는 늘 차가워야 한다. 일정 수준의 냉정과 이성으로 최대의 팽창을 표현하는 일은 왠지 어른의 사랑 같기도 하다.


한 사람을 위해 여러 장의 편지를 쓴 적이 있다. 자주 가는 집 근처 도서관의 가장 안쪽 귀퉁이에 쭈그려 앉아 인생 첫 러브 레터를 적었다. 계절은 여름이었지만 도서관 바닥은 차가워 교복 치마 속 엉덩이가 냉랭했다. 엉덩이뿐만 아니라 손발도 점점 찼다. 한 시간 이상 냉장 보관된 스콘 반죽처럼 딱딱해지고 움츠러들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새하얀 편지지에 내 이름을 적고, 당신을 어디서 처음 보았으며 어떤 점에 끌렸는지. 수줍음에 적은 단어들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만큼 크고 멋진 문장들이었다. 인생을 살면서 그런 문장들을 더 많이 자주 표현할 기회가 있었을까. 편지를 다 적었을 무렵엔 온몸이 찼다. 에어컨 바람 때문인지 머리도 띵했다. 손은 하얗다 못해 핏기가 없었다. 오븐 안에서 부푸는 반죽을 수시로 훔쳐보는 초보 홈베이커처럼, 다 쓴 편지를 몇 번이고 읊어보다 고이 접어 봉투에 넣고 가방을 챙겨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다음 날, 교실에 들러 편지의 주인이 될 그를 찾았다. 어제의 냉랭함이 불처럼 뜨거워진 상태였다.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재빠르게 편지를 건네고 돌아오는 길. 두 뺨은 라즈베리 잼이 한 움큼 내려앉은 듯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서툴고 투박한 모양의 고백이었지만 어찌저찌 완성은 했다. 차가웠던 시간만큼 사랑은 용기 있게 부풀었다.


스콘의 반을 가르고 잼과 크림을 꾹꾹 채워 넣는다. 욕심이 기쁨처럼 허용되는 시간. 내용물이 흘러넘친다. 할 말이 많아지는 마음 앞에서 엉거주춤 중심을 잡아 본다. 용기 있게 한 입 베어 문다. 라즈베리의 경쾌함은 가장 먼저 느껴질 때도 있고 나중일 때도 있다. 푸석푸석한 식감, 담백하다 못해 목이 막히는 식감이지만 그건 아무래도 오랜 시간 바삭바삭한 감정이 들어섰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을 이루는 용기의 단어들이 단단하게 응축된 디저트. 조만간 스콘 한두 개를 챙겨 좋아하는 이와 피크닉을 떠나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교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