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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Dec 02. 2023

연말에 쓰는 손 편지, 초코 롤케이크

혹독한 겨울에도 따뜻한 면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코코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붕어빵 손난로, 자주 가는 카페 입구에 놓인 내 키만 한 크리스마스 트리,  입김을 내뿜으며 왁자지껄 떠드는 연말의 이자카야. 이런 겨울의 따뜻한 면만을 품은 디저트가 있다면 바로 롤케이크다. 반갑게 쌓인 두툼한 흰 눈을 아량의 마음으로 한껏 기쁘게 안은 초콜릿 시트. 춥고 시린 기억이 전부일 것 같은 겨울이지만 춥고 시리기 때문에 더 따뜻이 올해를 반추할 수 있다.


겨울엔 유독 롤케이크가 생각나고 그래서인지 어디서든 자주 보인다. 카페 카운터 옆 쇼케이스에 롤케이크가 보이면 망설임 없이 주문하는 편인데, 그중에서도 초콜릿 롤케이크를 마주하는 날이면 공항버스에 오르는 일처럼 심장이 두근댄다. 선명한 대비감으로 똘똘 뭉친 그 디저트를 보고 있노라면 춥고 배고팠던 마음에 제법 커다란 싱크홀이 생긴다. 오늘만큼은 긴장을 풀고 롤케이크의 싱크홀에 푹 잠기고 싶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얼핏 가로길이가 긴 스퀘어 케이크 같기도 하다. 생크림의 이유 있는 굴곡 위로 파에테포요틴이 낙엽처럼 줄지어 있고, 초콜릿 시트 위 슈거파우더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바라는 일처럼 애초에 당연한 것만 같다.


초콜릿 시트를 완성하는 과정에는 다량의 설탕과 흰자를 넣고 만드는 머랭 작업이 동반된다. 차가운 흰자에 설탕을 여러 번 나누어 넣어가며 고속으로 휘핑하는데, 완성된 머랭은 핸드믹서로 한 움큼 퍼 들어 올렸을 때 뾰족하게 뿔이 생길 정도로 제법 단단해야 한다. 핸드믹서의 날이 흰자를 휘감을 때마다 머랭의 색은 점점 더 과감히 새하얘지고, 두툼한 하양에 기꺼이 빠지고 싶어 진다. 완성된 머랭에 노른자를 넣어 아이보리색의 노른자 반죽을 만들고, 여기에 코코아 가루를 추가로 넣는다. 주걱으로 가볍게 빠르게 섞어주면 자연스레 마블 반죽이 되는데, 갈색 용암의 자유로운 춤사위는 마치 목성의 표면 같기도 하다. 밤새 내린 가을비에 낙엽 냄새를 알아차리는 것처럼, 마블이 남긴 자취로 내내 무색무취였던 반죽에선 이제야 제법 초콜릿 향이 난다.  


한 김 식은 초콜릿 시트 위의 새하얀 샹티크림을 바라보며 저 둘의 결합처럼 편안하고 친근한 관계를 떠올려 본다. 연말이 다가오면 자연스레 나를 아는 이들의 소식을 묻고 싶어 진다. 두 개의 엄지로 핸드폰 위를 타닥타닥 오가며 내보이는 간단한 안부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엄지를 조금 더 천천히 움직여 본다. 손 편지를 쓰듯 자음과 모음을 꾹꾹 눌러 제법 담백하게 마음을 보낸다. 보낸 메시지를 바라보다 보니 케이크를 뜨는 포크질도 자연스레 다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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