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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섬, 소설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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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연 Oct 20. 2024

안경과 귤

섬, 소설

안경과 귤                     


  글을 쓰는 것은 하늘을 나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뇌성마비라서 걷지 못하니까 날아가는 순간이 무척 소중하다. 나는 타자가 느리다. 오른쪽 검지와 왼쪽 가운데 손가락으로만 타자를 친다. A4 한 장을 쓰려면 서너 시간은 걸린다. 내가 이 글을 다 쓸 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리 느리고 서툴러도, 하늘을 나는 것은 나는 것이다. 

  창 너머의 나뭇가지와 귤 위에 흰 눈이 얹혀 있다. 밤사이 눈은 멈췄고 맑은 하늘에 해가 떠 있다. 낮이 되면 눈이 녹을 것이다. 대설이 오기 전에 귤을 다 따야할 텐데. 아이는 학교에 갔고 남편은 막 출근했다. 겨울 햇살이 쏟아지는 조용한 집에서 나는 전동 휠체어에 앉아 컴퓨터 자판으로 글을 쓴다. 휠체어 밑에는 덩치 큰 얼룩고양이가 잠들어 있고, 스피커에선 엘라 피츠제랄드의 ‘블랙 커피’가 흘러나온다. 

  삼년 전 섬에 처음 왔을 때는 겨울이었다. 그땐 이미 귤을 다 따서 귤나무 가지는 비어 있었다. 집이 따뜻해서 좋았다. 내가 있던 시설은 겨울만 되면 너무 추워서 방 안에서 입김이 나올 정도였다. 추위를 피해 남편과 결혼한 걸지도 모른다. 

  나는 일곱 살부터 서른세 살까지 시설에서 살았다.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있는 나는, 두 다리로 서지는 못하지만 엉덩이를 바닥에 붙인 채 이동할 수는 있다. 화장실도 혼자 이용할 수 있고, 젓가락은 쓰지 못해도 숟가락으로 밥은 뜬다. 부모는 내가 일곱 살에 이혼했고 그 후 각자의 가정을 꾸렸다. 자식들도 낳았다는데, 나는 이복형제를 만난 적도 없고 몇 명인지도 모른다. 아버지와는 소식이 끊겼고, 어머니를 본 일도 손에 꼽을 만큼 적다. 내가 결혼을 하겠다고 전화로 말하자 어머니는 반대를 했다. 멀쩡한 사람이 장애인과 결혼할 리가 없으니, 여자를 때리는 남자이거나 알콜 중독일 거라고 했다. 나는 그럼 왜 어머니는 장애인도 아니면서 여자를 때리고 알콜 중독인 남자와 결혼했었냐고 물었다. 그 후로 어머니는 내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 

  남편은 내가 있는 시설에 타일 시공을 하러 온 기술자였다. 군데군데 타일이 깨져 있는 화장실을 시설 측에서 수 년 만에 고칠 결심을 한 것이다. 시설에는 서른 개의 방이 있는데 방마다 서너 명의 장애인이 살고, 두 방 사이에 화장실이 하나씩 있다. 다들 화장실을 이용하는 속도가 느려 제때 볼일을 보는 것도 힘들었다. 이 집에 와서 화장실을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한동안 행복했다. 

  남편은 타일을 시공하며 나를 눈여겨봤는지 일주일 후에 다시 와서 나와 따로 면담을 요청했다. 시설장이 면담을 허락한 것이 신기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이 기부금을 조금 냈다고 했다. 얼마냐고 몇 번 물으니 백만 원, 하고 남편은 난처한 듯이 말했다. 

  면담실에서 만난 남편은 타일 시공을 하러 왔을 때와 달리 수염을 말끔하게 밀고 감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벽에는 장애인들이 억지로 웃고 있는 커다란 단체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그 밑의 갈색 삼인용 소파에 앉아 남편이 종이컵을 든 손을 떨며 자기소개를 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남편은 자신이 언제 태어났는지(나보다 여덟 살 많다), 형제자매는 없고 부모는 모두 돌아가셨다는 것, 기술이 있어서 돈벌이는 끊이지 않는다는 것, 원래 고향이 제주도라는 것을 느릿느릿 말했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죽은 전처와의 사이에 여섯 살짜리 남자애가 하나 있다고 덧붙였다. 남편은 덩치가 크고 표정이 적었지만, 말하는 내용은 솔직하고 소박했다. 

  “수나 씨는 무슨 음식을 좋아하나요?”

  남편이 물었다. 아무도 내게 좋아하는 음식을 물은 적이 없어서,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렸다. 긴장하면 나도 모르게 이럴 때가 있다. 남편의 놀란 눈길을 보고 나는 고갯짓을 멈추려고 노력했다. 시설에선 아침에 오뎅 볶음, 점심에 맑은 오뎅국, 저녁에 오뎅 매운 찌개가 나오는 식으로 식단이 단조로웠다. “아무거나요.”라고 나는 대답했다. 

  “저는 음식을 잘해요. 맛있는 걸 많이 해줄 수 있어요. 정말 먹고 싶은 것이 없어요?” 

  남편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또 이리저리 움직일까봐 테이블에 시선을 고정한 채 시금치를 듬뿍 넣은 잡채라고 대답했다. 남편은 내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들었다. 시설 직원들은 내 발음을 잘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에 난 신기했다. 

  그 후로 남편은 세 번 더 나를 찾아왔다. 매번 감색 정장 차림이었다. 시설 안의 사람들은 워낙 이야깃거리에 굶주려 있어서 타일 기술자의 방문은 화제가 되었다. “첫눈에 반했나 봐.”라고 같은 방을 쓰는 언니가 나를 놀렸다. “장애인이라 쉬워 보이는 거겠지.”하고 다른 언니가 말했다. 

  “수나 씨는 쉬는 시간엔 뭘 하나요?”

  네 번째 면담에서 남편이 물었을 때, 나는 “책을 좋아해요.”라고 대답했다. 시설의 공동 거실에는 책장이 있는데, 동화책을 포함해서 모두 마흔 여섯 권의 책이 꽂혀 있었다. <해리포터>부터 <설국>까지, 나는 오년 동안 그 책들을 읽고 또 읽었다. <카네기 인간관계론>처럼 지루한 책도. 경직된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는 것은 힘든 일이었지만, 책읽기의 즐거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도서관’이란 그림책이 있어요. 어떤 여자가 책을 너무 많이 사서 집이 도서관이 되는 내용이에요. 그 여자처럼 되고 싶어요.”

  남편은 책을 많이 사주겠다고, 그러니 자신과 결혼해서 섬에서 살자고 했다. 제주도에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집이 있는데 세입자가 곧 나갈 거라고 했다. 방으로 돌아와 나는 창문 너머로 갈색의 높은 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녁에 오뎅국이 나오면 저 남자를 따라가야겠다고. 

  두 달 후 우리는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의 가장 앞좌석에 앉아 있었다. 남편과 나는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지만 혼인신고를 한 상태였다. 비행기 안은 무척 따뜻했고, 승무원들은 친절하게도 포도주스를 갖다 주었다. 나는 기저귀에 오줌을 쌀까봐 주스를 한 모금만 마셨다. 창밖에는 낮게 흰 구름이 깔려 있어서 내가 땅에서 갖고 있던 괴로움을 여과시켰다. 

  “왜 우는 거야.” 

  옆자리에 앉은 남편이 물었다. 

  “기뻐서.”

  “비행기를 탄 것이? 아니면 섬에 가는 것이?”

  그는 결혼한 것이 기뻐서 우냐고 물을 정도로 뻔뻔한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둘 다, 라고 대답했다. 

  “비행기를 탄 것은 처음인가?”

  “버스를 타는 것도 일 년에 한 두 번인 걸.” 

  나의 대답에 남편은 “그런가.”하고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 

  “당신이 있었던 시설은 안좋은 곳이었나 보군.” 

  “있어본 곳 중에 가장 좋은 곳이었어.”

  남편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내가 머물렀던 시설 중에는 말을 잘 듣지 않는 장애인을 창고에 가두는 곳도 있었다. 이미 자신의 몸이라는 감옥에 갇힌 사람을 더 깊숙한 곳에 가두는 것이다. 창고에는 이불 한 장 없이 변기로 쓸 양동이만 놓여있다. 자기 몸도 잘 가누지 못하는 장애인은 이내 똥오줌으로 범벅이 된다. 그 창고에서 나는 내 몸에서 나온 것들과 나 자신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바다를 건너 나는 섬에 왔다.

  우리 집은 공항에서 차로 한 시간을 더 가야했다. 집은 귤밭 한가운데 있었는데, 나는 첫눈에 집이 마음에 들었다. 지붕은 파란색이고, 벽은 흰색이었다. 방은 세 개, 방문은 미닫이. 남편은 내가 집안에서 편히 지낼 수 있도록 미닫이문마다 고무 손잡이를 달고 화장실도 변기가 낮은 장애인용으로 개조해 놓았다. 내 방에는 삼단 책장이 놓여 있었는데, 새 책으로 보이는 세계 문학전집이 빽빽이 꽂혀 있었다. 창문 너머로 키가 작은 귤나무들이 보였다. 

  “귤꽃이 무슨 색인지 알아?”

  창밖을 보며 감탄하는 내게 남편이 물었다.

  “노란색?”  

  “흰색. 봄이 오면 보게 될 거야. 냄새가 좋아.”  

  남편은 날 위해 귤꽃을 마련해둔 것처럼 흐뭇한 표정이었다. 

  “어, 고양이가 왔네. 봐.” 

  남편의 말에 나는 휠체어에 올라타 창 너머로 고양이들을 구경했다. 귤나무 밑에서 얼굴이 동그란 갈색 고양이와 새끼 얼룩고양이가 금방이라도 도망갈 것처럼 기웃거렸다.  

  “수놈인데 새끼 고양이를 끼고 다니는군. 신기한 일이야.”

  남편은 고양이의 성별을 금방 알아봤다. 

  “먹이를 줘.” 

  나는 말했다. 남편은 말린 황태를 가져와 고양이들에게 던졌다. 수놈 고양이는 새끼가 먹는 걸 기다리고 나서 자기도 먹었다. 나는 수놈 고양이에게 ‘겨울이’, 새끼 고양이에겐 ‘가을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겨울이는 사람을 경계하지만 가을이는 내가 책을 읽고 있을 때 방 안에 들어올 정도로 스스럼이 없었다.   

  남편을 사랑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에게 결혼은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시설 밖으로 나갈 것이냐의 문제였다. 밤마다 남자에게 안기는 것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묘한 쾌락을 주기도 했다. 시설에 있을 때 나는 성기를 배설과 연관지어서만 생각했다. 오줌을 싸는 게 번거로워 목이 말라도 참았다. 이제 성기는 내게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 나는 처음으로 거울을 통해 내 성기를 보았다. 신기했다. 타인과 이어지기 위해 이 틈은 상처처럼 벌어진 것이다.  

  이사를 하고 일주일 후 남편의 고모님이 아이를 데려왔다. 고모님은 뚱뚱하고 목소리가 컸고, 진구는 빼빼 마른데다 수줍음을 타는 아이였다. 진구는 눈을 끔뻑이며 할머니의 뒤에 숨어있었다.  

  “새엄마에게 인사해야지.”

  고모님이 시키자 마지못해 진구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고는 공룡 모형 열댓 개를 갖고 놀았다. 남편이 부엌에서 차를 끓이는 동안, 고모님은 내 신상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었다. 고모님은 내 말을 거의 못 알아 들어서 나는 몇 번이고 말을 반복했다. 그동안 쭉 시설에서만 자랐다는 내 말에 고모님은 “세상 물정은 하나도 모르겠군.”하고 혀를 찼다. 그러더니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 “갑자기 홀린 듯이 결혼하겠다더니, 죽은 전부인과 똑 닮았구먼. 안경만 쓰면 전부인이 돌아온 줄 알겠어.”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에 나는 가슴 언저리가 저릿했다. 

  “어떤 안경이었나요?”

  “뭐?”

  “안경이요.”

  “난 도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범우는 얼마나 답답할까.”

  “안경, 무슨 안경이었어요?”

  나는 내 눈을 손으로 가리켰다. 

  “아, 안경. 글쎄, 은테였던 거 같은데.” 

  고모님은 한숨을 내쉬었다. 

  “활달하고 착한 여자였지. 죽기 전엔 이년 정도 거의 누워만 지냈어. 그러니까 라면이나 끓일 줄 알던 범우가 갑자기 요리책을 보며 음식을 만들더라고. 지금은 요리를 아주 잘해.”

  고모님이 돌아간 후 나는 활달한 척하며 남편에게 졸랐다.

  “나 눈이 나쁜 것 같아. 안경을 사줘.”

  남편은 나를 차에 태워 시내의 안경점으로 갔다. “시력이 아주 나쁜 건 아닌데, 안경을 쓰면 더 나빠지는 걸 방지하니까요.”라고 안경사는 말했다. 은테 안경을 쓴 거울 속의 나를 보자 두려움이 사라졌다. 

  시설에는 자립을 할 정도로 용감한 장애인이 한 명 있었다. 그의 이름은 김혁이고 시설을 나와 임대 아파트에서 일 년 동안 혼자 살다가 다시 돌아왔다. “갈 곳도 없고, 할 것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어.”라고 김혁은 말했다. “지옥에서 빠져나왔다고 천국인 건 아냐.” 그에게 시설 바깥은 허공이었던 것이다. 

  시설은 규칙으로 이루어진 곳이기 때문에 장애인의 성격을 둘로만 나눈다. 순응적이거나 반항적이거나. 나는 순응적이었다. 작업장에서 손가락을 종이에 베여가면서도 묵묵히 편지 봉투를 접었다. 하루를 시설의 일과표대로 살고, 먹는 것과 입는 것도 정해주는 대로 따랐다. 시설은 적어도 우리를 꽁꽁 붙잡았다. 그러나 시설 밖에는 우리를 붙잡아줄 것이 하나도 없다. 붙잡을 것이 아무도 없는 사람은 자기 속으로 끝없이 추락하는 수밖에 없다. 

  나 역시 혼자서는 밖으로 나올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얼굴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 내가 은테 안경이라는 가면을 얻었다. 얼굴이 닮았다는 이유로 그 여자의 남편을 내 남편으로 삼고, 그 여자의 집을 내 집으로 삼고, 그 여자의 아이를 내 아이로 삼았다. 그 여자가 한때 살아있는 뱃속에 품었을 성기라고 생각하니 남편의 성기가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나는 알 수 있다. 죽은 전부인 역시 나를 질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그 여자의 대신이기 때문에. 그 여자의 가장 아팠던 시기를 재현하는 불구의 몸이기 때문에. 남편은 나를 돌보며 전부인에 대한 사랑을 완성하고 있었다. 

  나는 금세 진구와 친해졌다. 진구에게 공룡 모형의 이름을 물으면 “스테고사우르스! 트리케라톱스!”하고 누가 가장 센지, 뭘 먹는지 흥분해서 설명했다. 진구는 어린이집에서 돌아오자마자 나와 공룡놀이를 했다. 나쁜 공룡이 약한 공룡을 먹으려고 하면, 착한 공룡이 나타나서 약한 공룡을 돕는 놀이이다. 나는 나쁜 공룡과 약한 공룡 역을 맡아서 했다. 한 번은 내가 장난으로, “앗 벌써 잡아 먹혀버렸어. 진구가 너무 늦게 와서 스테고사우르스는 죽었어.”라고 말하자, 진구는 새빨개진 얼굴로 “안 죽었어!”하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아니네, 잠시 기절한 거였어.”하고 공룡을 일으켜 세웠는데도 진구는 한참을 씩씩거렸다.  

  진구는 자다가 무서운 꿈을 꾸면 내 방에 와서 잤다. 남편과 나는 방을 따로 쓰는데, 남편이 아닌 내 방으로 찾아오는 것이 나는 기뻤다. 어느 날 밤 진구는 공룡 인형을 안고 와서 물었다. 

  “엄마는 언제 죽어?”

  진구는 장애를 가진 내가 병을 앓는다고 믿은 것이다. 그리고 자기 엄마처럼 곧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난 죽지 않아.”

  “정말이야?” 

  “응. 난 오래 살 거야.”

  그러자 진구는 흐어엉,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진구를 안아주었다. 이상할 정도로 작고 깨끗한 몸. 이 몸은 삶을 향해 뻗어나갔다. 진구는 자랄수록 눈코입이 또렷해지고 얼굴선은 가늘어졌다. 점점 나를 닮아갔다. 묘한 기분이었다. 아이라는 존재는 너무 낯설어서 내게 속할 것이라는 생각을 전에는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남편은 내 생활을 충실히 돌봐주었다. 제주도에서 어렵지 않게 타일 시공일을 하러 다니면서, 진구의 어린이집 등원 준비와 식사준비도 도맡아 했다. 숏컷에서 점점 단발로 자라나는 내 머리카락을 아침마다 감겨주었다. 남편이 “뭐 먹고 싶어?”라고 물을 때마다, 나는 뭘 먹을지 내가 정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는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넣은 청국장을 가장 좋아한다. 내가 하는 집안일은 설거지나 방바닥을 걸레로 닦는 정도이다. 매일 찾아오는 동네 고양이들의 먹이와 물을 챙겨주기도 한다. 

  남편이 ‘활동 지원인’이란 것을 신청해서, 복지관에서 파견된 아주머니가 나를 차로 삼십 분 거리의 장애인 복지관에 데려다 주었다. 아주머니는 교회를 다니라고 권유하는 것을 빼고는 친절한 사람이다. 장애인 복지관에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운영되는데, 나는 독서 교실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독서교실의 수강생들과도 친해졌다. 수업이 끝나면 서너 명이서 복지관 일층의 카페에서 수다를 떨었다. 카페의 바리스타는 지적 장애인인 잘생긴 남자인데 ‘아메리카노’를 꼭 ‘아메리카’라고 말해서, “끝나고 미국 한 잔 마실래요?”라는 것이 독서 모임의 농담이다. 나는 아메리카노를 그곳에서 처음 마셔보았다. 쓰고 맛없어서 믹스 커피가 낫다고 생각했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  

  섬으로 온 뒤로 나는 매일 귤나무를 바라봤다. 남편은 가지치기를 하고, 꽃을 따고, 비료를 주고, 열매를 솎으며 부지런히 귤밭을 돌보았다. 그러는 사이 귤꽃이 콩알만 한 청귤이 되고, 청귤은 점점 커지더니 노란 빛깔을 띠었다. 그 해 겨울, 집 앞 귤나무에서 딴 귤을 먹고 나는 놀랐다. 그 귤은 섬의 사계절을 달콤한 즙으로 머금고 있었다. 시설에서 간식으로 나오던 귤과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만약 시설에서 지훈을 만났으면, 나는 그에게 반하지 않았을 것이다. 매일 바라본 귤나무와 남편이 준 생활 덕분에 나는 그에게 반할 수 있었다. 

  지훈을 만난 것은 섬에 오고 일 년이 조금 지난 후였다. 그는 복지관에 새로 온 글쓰기 선생님이었다. 사진 에세이집을 출간한 작가라고 독서 교실의 친구가 알려줬다. 나는 친구를 따라 별 생각 없이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다. 지훈은 이마가 반듯하고 피부가 깨끗했다. 첫날 수강생들은 그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그의 맑은 분위기에 마음이 끌렸던 것이다. 서른한 살이고, 미혼이고, 애인은 없고, 웨딩 사진을 찍는 일도 한다고 지훈은 웃으며 대답했다. 

  남편은 날 위해 컴퓨터와 프린터기를 사주고 키보드 사용법을 알려줬다. 나는 이내 글쓰기에 빠졌다. 나는 어떤 문장이든 쓸 수 있고, 내 문장의 구석구석을 감각할 수 있다. 문장이라는 날개를 달고 느릿느릿 날아오른 나는 어느 순간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럴 때 아찔할 만큼 기분이 좋다.   

  글쓰기 교실의 수강생은 열다섯 명이고 지훈은 매주 수강생이 쓴 세 편의 에세이를 뽑아 읽어줬다. 내 글은 자주 뽑혔다. 지훈은 “귤나무에 대한 이 글은 글쓴이의 삶에 섬세하게 밀착되어 있으면서도 이국을 다룬 것처럼 멀고 아련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일상의 일들을 아이처럼 경이롭게 묘사하는 글쓴이의 시선을 따라 독자들도 사물을 새롭게 바라봅니다.” 나는 전에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글을 쓰고 지훈의 피드백을 받는 일은, 한 번도 그래본 적은 없지만, 꼭 연애편지를 주고받는 것 같았다. 나는 지훈이 읽을 것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썼다. 남편은 내가 글을 쓰는 걸 좋아했지만 쓰는 내용을 궁금해 하진 않았다. 

  지훈이 수업 중간의 쉬는 시간에 휴게실로 가는 걸 알고, 나도 휴게실에 가서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았다. 지훈에게 종이컵에 든 커피를 플라스틱 컵에 옮겨달라고 부탁하며 나는 괜히 이것저것 물었다. 지훈은 남편만큼이나 내 발음을 잘 알아들었다. “웨딩사진 찍는 거 안좋아해요. 돈 벌려고 하는 거죠.”하고 그가 내게 말했다. 그럼 뭘 찍는 걸 좋아하냐고 묻자, 지훈은 떠돌이 개들, 공터, 귤꽃을 좋아한다고 했다.

  “귤꽃을 바라보는 가장 좋은 장소를 알아요.”

  내가 말했다. 

  “어딘데요?”

  “우리 집이요. 귤꽃은 누워서 보면 가장 아름답거든요.”

  지훈은 “그럼 한번 가도 되나요?”하고 물었다. 그냥 해본 소리인줄 알았는데, 그는 내 전화번호를 받아갔다. 다음 날 지훈은 큼지막한 카메라를 들고 와서 내 방에서 귤나무 사진을 찍었다. 창밖을 바라보는 나를 찍어도 되냐고 물어서, 그러라고 했다. 

  “안경을 벗어볼래요?”

  지훈의 말에 나는 은테안경을 벗었다. 열린 창을 통해 귤꽃 향기가 방 안으로 들어왔고, 하늘은 강렬한 푸른색이었다. “눈이 예쁘네요.”라고 그가 말했다. 지훈은 내 목덜미를 만졌다. 목덜미는 원래 감각이 거의 없는 곳인데, 이상하게 그 순간 지훈의 지문까지 선명하게 느껴졌다. 

  “옷을 벗어볼래요?”

  “벗겨준다면.”

  이상한 일이지만 지훈은 나를 안지 않았다. 내 알몸을 찍기만 했다. 그 후로는 늘 안경을 쓰지 않은 채로 지훈을 만났다. 

  지훈과 나는 종종 산책을 했다. 그가 내 휠체어를 밀며 바닷가를 산책한 후, 단골 카페로 가는 것이 우리의 외출 코스였다. <한낮의 산책>이란 이름의 카페였는데, 사장님은 흰 머리카락을 소년처럼 짧게 자른 통통한 육십 대 중반의 여성이다. 언젠가 무슨 얘기를 하다가 “사장님은 장애인이 아니어서 모를 거예요.”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녀는 자신의 왼손을 보여줬다. 손가락이 여섯 개였다. 

  “나도 장애인인걸요. 그리고 사람은 늙으면 누구나 장애인이 되어요.”  

  그녀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녀가 직접 내린 드립 커피는 복지관 일층의 ‘아메리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향긋했다. 

  우리는 창가의 푹신한 장미꽃무늬 소파에 앉곤 했다. 카페 안은 매혹적인 붉은색-지훈이 버건디 색이라고 알려줬다-과 우아한 초록색-브리티쉬 그린-으로 꾸며져 있고, 벽마다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절벽 근처에서 하늘색 차가 날고 있는 포스터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영화는 무슨 내용인가요?”

  지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델마와 루이스라는 두 여자가 도망치면서 뭔가를 찾아가는 내용이에요.”

  “날아다니는 차를 타고요?” 

  “저 차는 추락할 테고 두 여자는 곧 죽을 거예요. 하지만 저 순간만은 하늘을 날아오르는 중이죠.”

  “두 여자는 뭔가를 찾았어요?”

  “음, 내 생각엔 그런 거 같아요.”

  커피바 너머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카페 사장님은 “델마와 루이스는 볼만한 영화예요.”라고 거들었다. 지훈은 “그래요. 수나 씨, 우리 집에 가서 볼래요?”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지훈의 집에 간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지훈이 사는 빌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그는 나를 업고 계단을 올랐다. 집안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방이 두 개에 거실도 있고, 거실창 너머로 멀리 삼나무 숲과 하얀 풍력 발전기들이 보였다. 집안 곳곳엔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다리가 세 개인 얼룩무늬 개가 마을을 서성이는 사진, 공터에서 피 흘리며 죽어있는 고양이 사진, 지능이 낮아 보이는 남자애가 사팔뜨기 눈으로 막대사탕을 보고 있는 사진, 반쯤 시든 귤꽃 사진, 피부병에 걸린 것처럼 울긋불긋한 원피스 아래 종아리 사진… 나는 모두 지훈 씨가 찍은 거냐고 물었고 그는 그렇다고 했다. 병들거나 다친 것들에게 끌리냐고는 차마 묻지 못했다. 침대 머리맡에서 내 사진을 발견했다. 내가 창 너머로 귤꽃을 보는 모습을 찍은 흑백 사진이다. 얼굴은 나오지 않고 알몸의 뒷모습만 나온다. 공룡 뼈 모형처럼 내 등뼈가 하나하나 도드라졌는데 묘하게 아름다웠다. 거실 소파에 앉아 우리는 노트북으로 <델마와 루이스>를 봤다. 절반도 보기 전에 침대로 자리를 옮겼다. 

  “몸의 일부는 감각이 없어요. 특히 다리 쪽에.”

  팬티까지 벗은 알몸의 내가 말했다. 

  “감각이 없는 부분은 다른 세계에 속한 거예요. 바다나 귤밭, 하늘같은 곳에.”

  그는 내 피부에서 감각이 없는 부분과 있는 부분의 경계가 가장 예민하단 걸 알아내어 손과 혀로 자극했다. 나 역시 그를 핥았다. 혀는 마음대로 움직여서 다행이었다. 지훈은 마른 체형이었고, 나도 그랬기 때문에 우리가 몸을 겹칠 때는 뼈와 뼈가 부딪쳤다. 조금 아팠지만 그 아픈 감각마저 소중했다.    

  우리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나는 말했다.

  “돈을 줄게요.”

  지훈은 내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작업장에서 십년 동안 일해서 번 돈이 있어요. 사백 만원이요. 그 돈을 줄게요.”

  그에겐 어떨지 모르지만, 나에게 사백 만원은 큰돈이었다.  

  “왜 돈을 주고 싶어요?” 

  지훈이 물었다.

  “그 돈이 내가 가진 전부니까요.”

  차는 어느새 우리 집 근처에 도착했고, 그는 내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수나 씨가 가진 거 말고, 수나 씨를 주세요.”

  일 년 넘게 우리는 서로의 몸을 탐했다. 지훈의 집에서, 차 안에서. 몸이 감옥이 아니라 천국의 일부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지훈과 떨어져 있을 때에도 나는 늘 그를 생각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쓸 때도, 아이와 놀아줄 때도, 남편에게 안길 때에도. 텃밭에서 키운 야채를 가져다주러 가끔 집에 들리는 고모님이 “새댁이 얼굴이 확 피었네?”라고 놀릴 정도로, 나는 늘 싱글거렸다.    

  여름에 우리는 해변에 갔다. 나는 지훈이 선물한 갈색 비키니를 입었다. 해질녘의 바닷가에 다른 사람들은 없었다. 나의 몸은 점점 굳어가기 때문에 지훈은 종종 내게 오일 마사지를 해줬다. 그날도 피크닉 매트 위에서 그는 내 등에 코코넛 오일을 문질렀다. 지훈이 시설에 있을 때의 얘기를 들려달라고 해서, 나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설 안에서 장애인들은 한 덩어리로 취급되었어요. 그 때를 떠올리면, 내가 다른 시설 장애인들과 함께 뿌연 막에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시설에 대해 찾아봤어요. 시설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증상이 있다고 해요. 그곳에 오래 머물면 무기력과 우울감에 빠진다는군요.” 

  지훈이 말했다.  

  나는 멍하니 주홍빛 바다를 봤다. 시설에 있을 때로부터 까마득한 시간이 흐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남편을 만나고 시설 밖으로 나왔지만, 그의 전부인이 있던 빈자리에 들어간 것에 불과했어요. 지훈 씨를 만나면서 내 자신이 선명해졌어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어요.”

  “글을 쓰면서 더 잘 알게 될 거예요. 수나 씨가 눈부신 사람이라는 걸.” 

  파도 소리, 휴대 전화에서 흘러나오는 사라 본, 주황색으로 물들어가는 뭉게구름, 후덥지근한 공기, 몸에 맺힌 땀방울과 오일이 뒤섞인 달큼한 냄새, 내 몸을 쓰다듬는 지훈의 부드러운 손길- 어떤 순간을 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이런 순간이 아닐까. 나는 남은 코코넛 오일을 달라고 했다. 이 날 이후로 방에서 전동 칫솔로 자위를 할 때면 오일병을 열어놓고 냄새를 피웠다.  

  지훈은 나의 가족과 친하게 지냈다. 그는 진구에게 귤밭 너머에 공룡이 있는 합성 사진을 만들어 주었다. 

  “티라노사우르스가 우리 집에 왔어?”

  진구는 사진을 보고 외쳤다.

  “응.”하고 지훈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언제?”

  진구는 흥분해서 큰 소리로 물었다.  

  “진구가 어린이집에 갔을 때. 진구는 공룡 온 거 한 번도 못 봤어?”

  “나도 봤어.”

  “언제?”

  “저번 주 일요일에.”

  “그래?” 

  지훈은 웃었다. 

  지훈이 오면 남편은 배추전이나 가지튀김을 만들어주었다. 남편은 술을 입에 대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지훈과 내가 막걸리를 마실 때 옆에 있었다. 지훈은 종종 막걸리를 마시며 남편과 바둑을 두었다. “더 취해야 돼. 그래야 나와 대국할 만 하지.”라고 남편이 농담을 할 정도로, 지훈의 바둑 실력은 뛰어났다. 지훈은 남편을 좋아했다. 과묵하고 넓은 사람. 그는 남편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남편에게 지훈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남편은 “머리 좋고, 재능이 많지.”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기뻤다. 그런데 남편은 잠시 생각하더니 “좀 덧없는 것 같아.”라고 덧붙였다. 

  “왜?” 

  “언젠가 저녁에, 당신이랑 지훈 씨랑 막걸리를 마시고, 나는 바둑을 복기하고 있을 때였나. 진구는 공룡이 나오는 동화책을 얌전히 읽고 있었지. 지훈 씨가 이렇게 말하더라고. ‘생활 속에 구원이 있지요.’였나. 그 말을 듣고 생각했지. 이 사람은 구원이 필요할 정도로 절망적이구나, 생활이 부족하구나. 그런데도 한군데에 정착하진 않겠구나.” 

  남편의 말에 목덜미가 딱딱해져서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어쨌든 당신은 지훈 씨에게 잘 해주잖아.”

  “마음과 행동이 늘 같은 건 아니야.” 

  남편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날 밤 남편은 나를 무척 거칠게 안았지만 내 머릿속엔 지훈이 덧없는 사람이라는 말만 맴돌았다. 

  “내가 왜 좋아요?”라고 나는 지훈에게 수없이 물었다. 그는 매번 달콤한 대답을 해줬다. “글에 우선 반했어요.” “새까만 눈동자가 영민해 보여요. 수나 씨의 글은 눈동자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발바닥이 부들부들해서 아기 같아요.” “생각에 잠기면 머리를 갸웃거리는 동작이 귀여워요.” “너무 예뻐요.”  

  헤어지자고 말할 때 지훈의 목소리는 지극히 건조했다. 카페에 들렸다가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차의 스피커에서 빌리 홀리데이의 ‘섬머 타임’이 흐르고 있었다. “난 여길 떠날 거예요.”라고 지훈은 말했다. 내가 한 말들은 다시 떠오르기도 부끄럽다. 나는 그에게 머물러 달라고, 아니면 같이 떠나자고 졸랐다. 내가 받는 장애 연금에 대해서도 말했다. 지훈은 묵묵히 운전만 했다. 

  집에 돌아온 나는 누워서 멍하니 귤나무를 바라봤다. 귤꽃들은 누렇게 변하고 시들시들했다. 귤꽃 향기는 한층 짙어졌는데, 뭔가가 썩는 악취가 향기의 말미에 배어나왔다. 진구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부러 반갑게 맞았다. “엄마랑 오랜만에 공룡 놀이 할까?”하고 물으니 진구는 책가방을 내려놓으며 “안 해.”라고 말했다. 

  “이주혁이랑 팽이 하러 가야 돼.” 

  “공룡 놀이는 이제 안 해?” 

  “애들이나 하는 거야, 그런 건.”

  진구는 팽이를 들고 집 밖으로 나갔다. 나는 마음이 휑해져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남편이 왔을 때 나는 거실 바닥을 걸레로 닦는 중이었다. 

  “왜 걸레질을 하며 우는 거야.” 

  남편이 물었다. 

  “귤꽃이 시들어서.”  

  “여기 있는 게 싫은 거야?”

  “그런 건 아니야.”   

  남편은 무슨 일이냐고 더 묻지 않았다. 저녁에 남편은 누가 질 좋은 표고버섯을 줬다며 버섯전을 부쳐 주었다. 부침은 바삭거리고 잘게 썬 표고버섯은 풍미가 깊어서, 음식을 가리는 진구도 맛있게 먹었다. 남편은 말없이 내 플라스틱 잔에 막걸리를 따라주었다. 

  지훈의 후임으로 복지관에 새로운 선생님이 왔지만 나는 글쓰기 교실에 등록하지 않았다. 글도 쓰지 않았다. 대신 요가 교실에 등록했다. 나의 일상은 평온하게 이어졌다. 복지관 일층의 카페에서 맛없는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과 수다를 떨고, 초등학생이 된 진구의 공부를 돕고, 전동 휠체어를 타고 남편과 함께 바닷가를 산책했다. 우리 집에 먹이를 먹으러 오는 고양이는 대여섯 마리로 늘었다. 내가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새끼 고양이였던 가을이는 동네에서 가장 몸집이 큰 고양이가 되었고, 가을이를 돌봐주던 겨울이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남편이 지훈의 소식을 전했을 때 나는 진구를 학교에 보내고 책을 읽는 중이었다. 남편은 방에 들어와 내 옆에 앉더니 “지훈 씨가 제주시 쪽의 사진관에서 일하고 있다는군.”하고 말을 꺼냈다.   

  나는 놀랐다. 남편은 반년 가까이 지훈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으니까.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섬은 좁으니까.”라고 남편은 어깨를 으쓱했다.  

  “보러 가도 좋아. 차로 데려다주지.” 

  남편은 표정을 알 수 없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남편의 얼굴을 처음 보는 것처럼 뜯어보았다. 까슬까슬한 짧은 수염이 나있고, 눈 밑은 어둡고, 한때 단단했을 얼굴선은 중년에 접어든 남자답게 무너져 있었다. 이 얼굴이란 표면 아래 깊고 단단한 것이 숨어 있구나, 나는 감탄했다. 

  남편은 지훈과 나의 관계를 애초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나를 다시금 지훈의 곁에 있게 하려고 했다. 이런 남편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러고 보면 죽은 부인을 대신해 불구의 여자를 데리고 온 것부터가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나 말이야, 안경을 쓴 편이 예뻐, 아니면 벗은 편이 예뻐?” 

  나는 안경을 벗고 물었다.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진 나를 남편은 물끄러미 바라봤다.

  “둘 다 예뻐.” 

  “앞으론 안경 안 쓸 거야. 책 읽을 때만 쓸 거야.” 

  “좋을 대로 해.” 

  “나, 당신만 있으면 돼. 다른 사람은 필요 없어.”

  “진심인가.” 

  대답대신 나는 남편의 품에 안겼다. 그는 억센 손길로 나를 끌어안았다. 남편의 품에 안겨 나는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면서 남편이 속한 미지의 세계를 천천히 알아갈 것이다. 창밖을 보니 눈 덮인 귤들이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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