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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섬, 소설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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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연 Oct 20. 2024

핫산의 귤

섬, 소설

                   

  민아는 귤 따는 일을 좋아한다. 귤을 상대로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아도ᅠ된다. 귤은 벌컥 화를 내거나, 욕설을 내뱉거나, 집요하게 그녀의 잘못을 따지지 않는다. 귤은 한 손에 쥘 수 있고, 말랑말랑하고, 차곡차곡 예의 바르게 상자 안에 쌓인다. 목이 마르면 그녀는ᅠ작은 귤을 까서ᅠ과육을ᅠ통째로ᅠ씹는다. 입안을 흠뻑 적시는 달콤한ᅠ침묵.

  “민아, 민아.” 

  점심시간이 되면 민아의 이름을 부르는 건 오마르다.  

  “샌드위치 먹자.” 

ᅠ 민아와 오마르, 모하메드, 핫산은 뒤집힌 노란 플라스틱 상자에 앉아 점심을 먹는다. 점심은 닭고기를 칠리소스에 버무린 샌드위치와 보온병에 담아온 붉은 홍차. 일하면서 귤을 계속 까먹었는데도 민아는 점심 즈음에는 늘 배가 고팠다.

  일은 할당제이다. 노란 플라스틱 상자 여덟 개를 귤로 채우면 된다. 민아는 매번 가장 늦었지만, 핫산은 자신이 채운 귤이 가득 든 상자와 그녀의 빈 상자를 바꿔주곤 했다. 핫산은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귤을 가장 빨리 땄다. 다리는 괜찮냐고 민아가 물은 적이 있었는데, 핫산은 “아무 일도 아니야.”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샌드위치를 먹으며 게스트하우스의 벽면에 붙은 <귤밭 단기 일꾼 모집> 공고에 지원하길 잘했다고 민아는 생각한다. 하루에 네다섯 시간을 일하면, 시급도 받고 숙식도 무료로 제공된다. 

  할 일이 생긴 것도 좋다. 콜센터에서 일할 때 민아는 늘 멀리 떠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제주도로 온 후에야 그저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을 뿐이었다는 걸 알았다. 서른 살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혼자 간, 창 너머로 바다가 펼쳐지는 고급 레스토랑은 가족과 연인들로 우글거렸다. 아이들의 새된 웃음소리를 들으며 민아는 이주 간의 여행에서 자신이 계속 증폭시킨 감정이 외로움이라는 걸 깨달았다. 

  “같이 일할 사람들은 예멘 난민들이에요.”

ᅠ 게스트하우스의 사장이 말했을 때, 민아는 자신과 함께 일할 사람들이 아주 멀리서 왔고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기울었다.  


  “모하메드는 네가ᅠ육지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궁금하대.” 

  오마르가 말한다. 그들은 샌드위치를 다 먹고 홍차를 마시는 중이다. 모하메드가 보온병에 담아온 홍차는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갛고, 설탕으로 절반을 채운 것처럼 달다. 민아는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한다. 

  “전화로ᅠ사람을ᅠ상대하는ᅠ일을ᅠ했어. 사람들은ᅠ물건을ᅠ사거나, 반품하거나, 뭔가를ᅠ물어봤어.”

ᅠ 모하메드는ᅠ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ᅠ그리며ᅠ월급은 어떠냐는 제스처를 한다. 

  “백 구십 만원.”  

  “생활비는 얼마나 들어?”

  “응, 방세는 사십. 보일러비와 전기세, 에어컨비, 휴대전화비로 십. 식비는 사십... 그리고 그 밖의 비용들. 커피를 마시거나, 직장동료가 결혼하거나, 직장동료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거나.”  

  “한 달에 얼마나 모았어?”

  “오십에서 육십?”

  “우린 예멘의 가족들에게 백만 원은 송금해야 돼.”  

  “그러려면 많이 아껴야겠지.” 

  “일은 왜ᅠ그만뒀어?" 

ᅠ 민아는 머뭇거린다. 일이 그녀를 조금씩, 아주 조금씩 죽게 만들었다고 어떻게 말할까. 콜센터ᅠ사무실을 떠올리면 먼저ᅠ역한ᅠ냄새가 떠오른다. 뭔가가ᅠ썩고 있었다.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새벽에 민아는 캐비넷과 책상 서랍을 모두 열어ᅠ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에어컨과 환기구까지 닦았지만ᅠ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민아는 결국ᅠ원인을 찾아냈다. 전화선을 통해 사무실에 쏟아진 말들, 그 말들이 부패하고 있었다.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그 냄새를 맡은 사람은 민아뿐이었다.   

  “하루종일ᅠ사람들이ᅠ하는ᅠ말을ᅠ들어 주느라ᅠ피곤했어.”

  집에 가면 민아는 넷플릭스로 외국인들이 나오는 다른 시대 배경의 드라마를 봤다. 볼륨은 최대한 낮췄다. 한 달에 한 번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는 식당에 파리만 날린다고 앓는 소리를 했다. 그때마다 민아는 이십만 원을 송금했다. 엄마는 그 돈을 누구 코에 붙이냐고, 삼십만 원으로 올려 달라고 투덜거렸다. 민아가 제주도로 간다고 했을 땐 엄마는 자신에게 보낼 돈은 없으면서 여행갈 돈은 있냐고 비꼬았다.  

  “잘 때는 귀마개를 했어. 이렇게.”

ᅠ 민아는 웃으며 귤 두 개로 양쪽 귀를 막는다. 모하메드와 오마르도ᅠ따라 웃는다. 핫산은 물끄러미 민아를 바라본다. 그리고ᅠ두툼한 손을 뻗어 그녀의ᅠ오른쪽ᅠ귀에서ᅠ귤을ᅠ떼어낸다. 민아는 흠칫 어깨를 떤다. 

  “왜?” 

ᅠ 어리둥절한 민아를 향해ᅠ핫산은 노래를 부른다. 주문을 외우는 듯한 낮은 곡조의 노래다. 

 ᅠ와 라비수 피 카흐피힘 살라아사미 아틴 

  시니나 와즈다아두 티사아아 킬리라마후아 

  라무비마아 라비수라후가이부스 사마아와아티 와라디      

 ᅠ오마르와 모하메드는 그 노래를 듣기 위해 몸 매무새를 고쳐 앉는다.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노래라고 민아는 생각한다. 노래는 핫산의 목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어딘가 아득한 넓은 장소에서 핫산을 향해 흘러들어 오는 것 같다. 귤밭 위로 맹금류로 보이는 새가 멈춘 듯이 하늘을 날고 있다. 민아는 다른 쪽 귀를 막은 귤을 떼지 않는다. 흘러드는 노래로 몸속을 채우고 싶다. 노래가 끝나자 새는 보이지 않고, 핫산은 말없이 일어나 귤을 따러 간다. 

  “알-카프흐. 동굴의 장이야.”

ᅠ 민아가 노래의 제목을 묻자 오마르는 노래가 아니라 꾸란을 낭송한 거라고ᅠ말한다. 

  “세속의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알라는 동굴에 가라고 했어. 그들이 삼백 년도 넘게 동굴에서 말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야.”

  “예멘 사람들은 다 꾸란 낭송을 잘해? 오마르도 할 수 있어?”

  “무슬림은 다 꾸란을 외우지만 핫산의 낭송은 특별하지. 그의 아버지는 아덴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무아진이었어.” 

  “무아진?”

  “예배를 알리고 꾸란을 낭송하는 사람.”

ᅠ 오마르는ᅠ멀리 있는 핫산을 눈으로 쫓으며 목소리를 낮춘다. 

  “핫산의 아버지는 폭탄 파편을ᅠ목에 맞았지. 간신히 살아났지만, 더 이상 신에게 기도할 수 없다는 것에 절망해서 자살했어. 아빠와 함께 있었던 핫산의 다리에도 작은 파편이 튀었어.”     

ᅠ 강은 민아와 게스트하우스의 같은 방에 머무는 마흔두 살의 독신 여성이다. 몸집이 작고, 늘 짙은 화장을 하고 있다. 그 이유가 뺨에 있는 손톱 크기의 반점을 가리기 위해서라는 걸 민아는 나중에 알았다. 

  “외노자들이랑 왜 친하게 지내는 거예요?” 

  강이 화장대 앞에서 파운데이션을 얼굴에 두껍게 바르며 묻는다. 민아가 갸웃거리자, 강은 “외국인 노동자들 말이에요.”하고 다시 말한다. 민아는 그들이 예멘 난민이고, 난민 지위가 인정되길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한다. 강은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민아는 강의 입은 아주 크다고 생각한다.

  “저 사람들이 있는 줄 알았으면 난 여기에 묵지 않았을 거예요. 저 사람들이ᅠ오고ᅠ나서ᅠ제주도의 범죄율이 높아졌대요. 피해자는ᅠ모두 여성이고요.” 

  민아는 “저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에요.”라고 우물쭈물 말하고 밖으로 나온다. 정원의 야자나무 아래에서 오마르가 샴스의 개를 쓰다듬고 있다. 꼬리가 말린 누런 진돗개이다.      “오름에 갈래?” 

  오마르가 묻는다. 민아가 그러자고 하자, 오마르는 숙소에서 모하메드와 핫산을 불러온다. 셋은 감귤 창고를 개조한 숙소에서 지낸다. 

  게스트 하우스를 벗어나자 개는 신이 나서 귤밭과 배추밭 사이의 길을 달린다. 오마르는 “장군!”하고 어색한 발음으로 개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간다. 민아도 뛰듯이 걷는다. 하늘은 눈이 올 것처럼 희고, 공기는 쌀쌀하다. 민아는 갑자기 침대가 있는 방으로 돌아가고 싶다. 

  오름 입구는 사람 키 만한 수풀로 뒤덮여있다. 민아는 오름 안내 표지판을 천천히 읽는다. 전에도 몇 번 왔는데도, 표지판을 처음 본 것 같다.“외진 곳이 많으므로 반드시 2인 이상이 동행하도록 합시다.” 민아는 덜컥 겁이 난다. 

  저 사람들. 저 사람들에 대해 내가 아는 게 뭘까? 저 사람들은 눈가가 너무 검고, 자기들끼리 하는 말은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다. 핫산과 오마르는 이십 대 후반이고 모하메드는 삼십 대 중반인데도, 그들은 나이와 상관없는 생김새를 하고 있다. 검은 모래바람 속에서 갑자기 모래로 빚어진 사람들처럼.  

  그때 장군이 거미줄을 뒤집어 쓴 채 수풀 속에서 뛰쳐나오고, 오마르는 개를 쓰다듬어 거미줄을 없앤다. 그 모습을 보자 민아는 마음이 놓인다. 장군은 다시 숲으로 사라지고, 민아는 수풀을 헤치며 오름 입구로 들어간다. 올라가는데 이십 분도 안 걸리는 작은 오름이다. 오를 때는 빽빽한 나무만 보이지만, 정상은 억새로 가득하고 시야가 트여 있다. 오마르와 민아는 정상에 놓인 벤치에 나란히 앉는다. 마을과 밭, 하얀 풍력 발전기와 먼 바다가 보인다. 오마르가 휴대전화로 사진을 보여주며 말한다. 

  “리트리버와 떠돌이 개의 잡종이야. 이름은 릴리.” 

  사진 속에서 베이지색 털의 날렵한 개가 혀를 길게 내민 채 웃고 있다. 

  “형제들 중에서 가장 작고 약해서 아무도 데려가지 않았어. 주인은 릴리를 길거리에 버릴 거라고 했지. 그래서 내가 키우겠다고 했어.” 

  오마르는 억새를 꺾어서 부들부들한 은빛 솜털을 쓰다듬는다. 

  “릴리는 내 유일한 가족이야. 엄마가 암에 걸려 돌아가시고 우울한 시기에 릴리가 날 위로해줬지.”

  “아버지는?”

  “내가 다섯 살 때 아버지는 어머니를 쫓아냈어. 이웃집 남자에게 눈길을 준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어서. 아버지는 재혼해서 새어머니와 살아.”

 ᅠ민아는 고개를 끄덕인다.   

  “징집을 피해 예멘을 떠나야 했어. 죽기도 싫고, 죽이기도 싫으니까. 릴리는 친구 집에 맡겼어. 그 친구는 장애가 있어서 징집을 당하지 않거든.” 

  오마르는 은빛으로 흔들리는 억새를 보며 꿈꾸듯 말한다. 

  “난 서울로 갈 거야. 공장에서 일해서 집도 사고, 가구도 들여놓고, 여자 친구도 사귀고, 릴리도 데리고 올 거야.” 

  민아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ᅠ “넌 분명 이 나라에서 받아들여질 거야. 너희 셋 다...“

  그때 민아는 핫산이 절뚝이며 올라오는 걸 본다. 모하메드도 함께다. 민아가 오마르에게 발이 안좋은 핫산을 왜 데려 왔냐고 묻자, 자기가 따라오겠다고 고집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강은 당장이라도 게스트하우스를 떠날 것처럼 굴며 열흘이 넘게 묵었다. 저녁마다 강은 민아에게 함께 맥주를 마시자고 졸랐다. 게스트하우스 옆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며 강은 늘 특수학급 교사로서의 고충에 대해 떠든다. 민아가 자신의 직업을 말하자 아, 콜센터요 라고 한마디를 하고 강은 다시 자기 직업으로 화제를 돌린다.   

  “나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사랑해요. 하지만 그 아이들은 제 마음을 모르죠. 그리고 장애아동의 학부모들, 그들은 지독한 사람들이에요.” 

  제주를 떠나는 날 밤, 강은 학부모에게 장애아동을 때렸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한 적이 있고, 그 일로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고 고백한다. 강은 “민아 씨, 난민들을 조심하세요.”라고 거듭 당부한다. 


 ᅠ모하메드는 무덤을 둘러싼 돌담에 앉아 매일 담배 두개피를 피운다. 어느 날 담배를 피우던 모하메드는 민아를 불러 휴대전화로 어떤 여자의 사진을 보여준다. 검은 히잡을 두르고 있는, 창백하고 슬퍼 보이는 여자다. “부인?” 민아가 묻자 모하메드는 오마르를 부른다. 

  “모하메드의 누나는 비쩍 말라서 남편에게 버림받았다고 해. 그리고 아들이 하나 있어.”

ᅠ 오마르가 모하메드의 말을 영어로 통역한다.  

  “바다를 건너 예멘에서 아프리카로 향하는 낡은 모터배가 있어. 배가 바다에 빠지는 확률은 십분의 일. 일종의 룰렛 게임이래. 아기를 안고 탄 엄마들도 있어. 그건 총구를 자신의 머리와 아기의 머리에 동시에 겨누는 셈이지.”

 ᅠ민아는 눈을 감는다. 무서운 일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모하메드는 누나에게 모터배를 절대 타지 말라고 했어. 하지만 누나는 어린 아들을 비행기에 태워 아프리카에 보내느라 돈이 모자랐어. 아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했지. 모하메드 누나는 결국 모터배를 탔어. 그 후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대.”

  민아는 눈을 뜬다. 모하메드가 털이 부숭부숭 난 굵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는데, 민아는 그게 바다인지 하늘인지 알 수 없다.  

  “모하메드는 지금도 누나 소식을 기다리고 있어. 예멘인들은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야만 떠난 사람이 돌아올 수 있다고 믿거든.” 


 ᅠ모하메드와 오마르, 핫산은 게스트 하우스의 사장을 샴스라고 부른다. 예멘어로 ‘햇빛’이라는 뜻이다. 샴스는 놀랄 만큼 미인이고, 오십 살이고, 남자처럼 손이 크다. 남편과는 십 년 전에 이혼했다. 목소리는 걸걸하고, 흰 머리칼이 반쯤 섞인 숱 많은 머리칼을 두 갈래로 땋았다. 카페의 손님이나 게스트하우스의 투숙객을 상대하지 않을 때 샴스는 도끼로 장작을 패거나, 조각칼을 들고 나무로 새나 꽃 조각을 만든다. 

ᅠ 민아가 예멘인들에게 숙소와 일자리를 준 것이 대단한 일이라고 말하자, 샴스는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를 내리며 “대단하긴.”하고 웃는다. 

  “여기에 갑자기 폭탄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해 봐.”

ᅠ 샴스는 창밖을 가리킨다. 어제 도착한 여자 숙박객이 야자나무 사이의 해먹에 누워 책을 읽고, 장군은 잔디 위에 엎드려 자고 있다.

  “귤밭과 집들 위에 폭탄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죽는다고 생각해 봐. 너무 이상한 일이지. 그런데 그 일이 다른 나라에서 일어났다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예멘인들이 그 일을 이용해 먹으려 한다고 말하지. 자, 커피.”

 ᅠ민아는 두 손을 모아 따뜻한 머그잔을 든다. 샴스가 내려준 커피는 쓰고 진하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민아와 샴스가 앉은 소파 위에 매달린 드림 캐처가 흔들린다. 

  “칠십 년 전에 제주에서도 이상한 일이 있었어. 그때 내 할아버지도 돌아가신 것 같아.”

 ᅠ민아는 자신은 제주에서 있었던 그 일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머뭇거리며 말한다. 샴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부분 잘 몰라.”라고 말한다. 샴스는 자신의 어머니가 4·3 해설사 교육을 받았다고, 옆 마을에 사는데 종종 들리니까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라고 한다. 

  “할아버지는 행방불명 되신 건가요?”

  민아가 묻는다. 

  “군인들이 사람들을 끌고가서 학교 건물에 가둬놨다가 나중에 바닷가에 데려가서 죽였지. 할아버지도 끌려갔지. 할아버지를 학교에서 봤다는 사람은 있는데 도중에 사라져버렸어. 할머니는 누군가 남편을 육지로 빼돌렸다고 믿었지. 할아버지가 평소에 이웃에게 잘했거든. 할머니는 세월이 좋아지면 할아버지가 돌아올 거라고 했어. 헛묘를 세우자고 하는 시가와도 싸웠지. 내가 어릴 때, 할머니가 돌담에 기대 먼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기억이 나. 그쪽은 육지 쪽이 아니라 태평양 쪽인데 말이야.”

  샴스는 씁쓸하게 웃는다. 

  “그렇게 평생 할아버지를 기다리다 돌아가셨지.”     

 ᅠ샴스의 어머니는 바람이 몹시 부는 날에 왔다. 카페의 유리창ᅠ밖에는 야자수가ᅠ몸통까지 흔들린다. 샴스의 어머니는 갈색 입술이 쪼글쪼글하고, 코 밑에는 솜털이 잔뜩 난 뚱뚱한 할머니다. 할머니는 모하메드와 오마르, 핫산을 ‘내 아들’이라고 부르고, 셋은 그녀를 ‘엄마’라고 부른다. 

  “가만있어 봐. 이 이야기를 들으려면 따뜻하고 달달한 걸 마셔야 돼.”

  할머니는 개복숭아차를 여섯 잔 타온다. 할머니 주위로 모하메드와 오마르, 핫산과 민아, 샴스가 둘러앉는다. 자리가 모자라서 옆 테이블에서 등나무 의자를 두 개 끌고 온다. 할머니가 걸걸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샴스는ᅠ할머니의 말을 영어로 통역하고, 오마르는 영어를 다시 예멘어로 옮긴다. 할머니는ᅠ모두가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본다. 할머니의 얘기는 경찰이 마을 사람들을 골짜기로 데려가서 집단 총살하는 사건에서 시작된다. 아홉 살의 할머니는 가족과 함께 산 쪽으로 도망갔다. 이 동굴 저 동굴로 옮기며 석 달 넘게 버텼다. 총소리가 들릴 때마다 ‘오늘은 죽는구나’하고 가슴이 철렁했다. 동생이 굶어 죽자 엄마가 “죽 한 입만 줄 수 있다면 내가 뭔들 못할까.”라고 말한 걸 잊을 수 없다며 할머니는 긴 한숨을 쉰다. 가슴에 고이는 바람을 밖으로 내보내려는 듯이.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은 계속 죽는다. 동굴에서 죽고, 수용소 안에서 죽고, 해변에서 죽는다. 

  “엄마와 나는 아버지 시체를 찾으러 바닷가에 갔지. 바닷가 여기저기에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어.”

  바람 소리가 거세진다. 민아는 바람 소리가 죽은 사람들이 뱉은 마지막 신음 같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엎드려 있는 시체들을 돌아 눕혔어. 모두 아버지가 아니었어. 그 후로도 결국 돌아오지 않았지.”

  모하메드가 어린애처럼 흐느낀다. 할머니는 모하메드를 안는다. 샴스의 스타렉스를 타고 예멘인들과 민아가 4·3 평화센터로 간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후다. 전시관에 들어서자 둥근 구멍이 뚫린 천장에서 빛이 내려오고, 그 아래 백비가 눕혀 있다. 오마르는 관 같다고  했지만 민아는 그게 거대한 문진 같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농밀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어서 무겁고 깨끗한 것으로 지그시 고정해야 했다. 

  “언젠가 이 비에 제주 4·3의 이름을 세우고 일으켜 세우리라.” 

  표지판에 쓰여 있는 글을 민아가 읽는다. 모하메드는 백비에 입을 맞추고, 핫산은 빛이 들어오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꾸란을 왼다. 


  샴스는 민아에게 핫산과 병원에 가달라고 부탁했다. 핫산의 다리가 낫지 않는 것 같다며. 병원은 제주 시내에 있는데, 버스로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오마르도 제주 시내에서 친구를 만난다고 해서, 셋은 버스 가장 뒷좌석에 나란히 앉는다. 오마르는 중간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창가에 앉은 핫산은 말없이 창밖만 본다. 안개가 껴서 밖이 뿌옇다. 버스가 한라산을 지나는 동안 안개는 초원에서 거니는 갈색 말들을 한 마리씩 출현시킨다. 멀리서는 희뿌연 안개에 휩싸여 말의 유령처럼 보이지만, 버스가 가까워지면 말의 갈기와 털의 무늬, 긴 속눈썹 밑의 촉촉한 눈동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말의 출현이 민아에게 침묵을 깰 용기를 준다.

  “예멘에도 말이 많아?”  

  민아가 묻는다.  

  “낙타는 많지만, 말은 적어. 경찰들이 말을 타고 다니지.” 

  핫산이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한다. 

  “말들은 대부분 굶어 죽었어.”

  “왜?” 

  핫산은 그녀를 힐끗 본다.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듯이.  

  “예멘에선 모두가 굶지. 낙타도, 말도, 사람도.” 

  그 말을 끝으로 핫산과 민아는 더는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오마르가 얕게 코를 곤다. 버스 맨 앞자리에 앉은 파란 잠바를 입은 중년의 남자가 힐끔힐끔 뒤를 돌아본다. 그 시선이 적개심인지 호기심인지 민아는 알 수 없다.      

  제주시에 도착한 그들은 할랄 음식을 파는 인도 레스토랑에 갔다. 커리와 난을 먹는 동안 오마르는 시무룩한 기색으로 휴대폰을 들여다보더니, 릴리가 주둥이에 손바닥 크기의 난을 물고 있는 사진을 보여준다. 

  “릴리도 난을 좋아했어.” 

  레스토랑을 나오니 연한 비가 내리고 있다. 병원의 예약 시간까지는 한 시간이 남았다. 오마르는 친구를 만나러 떠나고, 핫산과 민아는 시내를 조금 걷기로 한다. 민아는 편의점에서 투명한 비닐우산을 사온다. 핫산과 민아는 같은 우산 아래 있다. 우산을 들고 있는 핫산의 손바닥은 이상할 정도로 하얗고, 민아는 그 손바닥을 보는 것이 어쩐지 부끄럽다. 

  차들이 달리며 내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민아는 대로변에서 한 블록 안쪽으로 들어간다. 대로변과 다른 소리가 들린다. 피아노 교습소에서 들리는 서툰 바이엘, 주택의 열린 창문으로 들리는 티브이 소리, 담장 너머 개가 짖는 소리, 빗방울이 비닐우산에 툭툭 부딪치는 소리… 

  “불법 난민 입국시킨 법무부장 고발한다!” 

  처음에 민아는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한다.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지는, 부정확한 발음. 

  “여자는 때려, 성노예 시켜, 알라신에게 목숨을 바쳐!”

  민아는 멈춰 선다. 넓고 딱딱한 것에 얼굴이 부딪친 것처럼 이가 아프다.  

  “고발한다! 고발한다!” 

  여러 사람이 따라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담장 너머 시청 쪽에서 오는 소리다. 민아의 심장이 쿵쾅거린다. 

  “여러분 목숨을 걸고… 나는 난민법 대사다!”

  민아는 핫산을 본다. 그는 담담한 얼굴이다. 민아는 도망친다.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소리의 근원지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뛴다. 

  “민아!” 

  우산을 든 핫산이 절뚝이며 쫓아오지만, 민아는 계속 달린다. 빗방울이 그녀의 눈가와 뺨에서 흘러내린다. 차갑고 점성이 있고 집요한 물방울. 십 분이 지났을까? 아니면 삼십 분? 민아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 멈춘다. 숨을 고른다. 

  “가짜 난민 쫓아내라! 쫓아내라! 쫓아내라!” 

  목소리들이 다시 나타난다. 이제 더 크고 우렁찬 목소리가 되어 행진하고 있다. 썩는 냄새가 난다. 민아는 손바닥으로 귀와 코를 막고 눈을 감는다. 빗줄기 속에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무릎에 파묻는다.

  목소리들이 떠난 후, 민아는 눈을 뜬다. 핫산이 허리를 숙이고 그녀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있다. 핫산의 앞머리는 푹 젖어서 이마를 가렸고, 안경 아래 거무스레한 눈가는 물기로 번들거린다. 입가의 짧게 난 수염에 맺힌 물방울. 그의 입이 뭔가를 말하고, 민아는 듣는다. 

  “저런 말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난 신경 쓰지 않아. 고마워.” 

  민아는 우산을 들지 않은 핫산의 손을 잡는다. 그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빗물에 젖은 뜨거운 손. 핫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크고 깊은 눈으로 민아를 바라본다.      

  복숭아뼈 근처의 파편을 빼내는 시술을 받은 후로, 핫산은 한 쪽 발에 깁스를 한 채 귤을 딴다. 샴스가 쉬라고 했지만 핫산은 듣지 않는다. 

  정오 즈음이 되면 핫산, 모하메드, 오마르는 귤따기를 멈춘다. 그들은 귤껍질과 나뭇가지를 치우고 기도 카펫을ᅠ깐다. 기도시간이 몇 시냐고 민아가ᅠ묻자 핫산이 대답한다. 

  “사물들의 그림자와 실제 크기가 같을 때.”

 ᅠ민아는 귤나무 밭을 훑으며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의 그림자를 본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은, 자신과 크기가 정확히 같은 어둠을 갖는 것은 멋진 일이다. 민아는 자신도 기도에 참여해도 되냐고 묻는다. 모하메드와 오마르는 웃으며 이슬람이 되고 싶은 거냐고 놀린다. 핫산은 “머리카락을 가리면.”이라고 말하며 민아의 옷에 달린 후드를 뒤집어씌운다. 민아는 자신의 심장이 두 배로 커진 것 같다고 느낀다.   

  “알라후ᅠ아크바라.”

ᅠ 알라는ᅠ위대하다고ᅠ말하며 핫산은 손을 귀 가까이에서 활짝 펼친다. 먼 곳에서 희미한 목소리를 끌어 모으듯이.    

  “알라후ᅠ아크바라.”

 ᅠ모하메드와 오마르, 민아도 따라서 말한다. 민아가 손을 귀 가까이에서 펼치자, 갑자기ᅠ모든ᅠ소리가ᅠ볼륨을ᅠ키운ᅠ듯ᅠ선명해진다. 귤나무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붉은 깃이 달린 큰 새의 노랫소리, 동굴 속에서 울리는 듯한 기도 소리… 민아는 자신ᅠ안에ᅠ쌓여있던ᅠ낡고 지친ᅠ언어들이ᅠ빠져나간다고ᅠ생각한다.

  오후에 민아가 백팩을 메고 걷고 있을 때, 푸른색 스쿠터 한 대가 그녀를 지나 멈춘다. 핫산은 무심하게 묻는다. 

  “어디 가?” 

  민아는 목적지 없이 걷고 있지만, 그냥 이렇게 대답한다.  

  “도서관.”

  “멀어?”

  “오키로 정도.”

  “타.”

  핫산은 자신이 쓰고 있던 헬멧을 벗어 민아에게 씌워준다. 민아는 핫산의 허리를 안고 몰려오는 풍경을 만끽한다. 돌담을 따라 귤밭 사이의 길을 지나고, 야자수가 늘어선 해안도로를 달린다. 바람이 스쿠터를 따라다니고, 침묵은 새처럼 가볍게 날아다닌다. 민아가 도서관이 아니라 해변으로 가자고 했을 때 핫산은 왜냐고 묻지 않는다. 왜냐고 묻는다면 민아는 이렇게 말할 생각이었다. 바닷가는 손을 잡거나 입을 맞추기에 좋은 장소라고.  


  샴스의 귤나무에는 이제 귤이 거의 매달려 있지 않다. 모하메드는 귤로 저글링을 하고, 오마르는 개의 털을 빗어준다. 핫산과 민아는 매일 스쿠터를 타고 해변에 간다. 

  어느 날 모하메드의 누나가 에티오피아의 난민기구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저녁에 샴스가 카페에서 파티를 연다. 안주는 샴스가 부친 감자전이다. 대여섯 명의 한국인 게스트들은 막걸리를, 오마르와 모하메드, 핫산은 홍차를 마신다. 모하메드와 오마르는 유투브로 예멘 음악을 틀고 전통춤을 춘다. 카페 중앙의 난로에서 땔감 타는 소리가 타닥타닥 들리고, 흥겨운 분위기가 퍼져나간다. 핫산은 방수포를 두른 것처럼 분위기에 조금도 젖지 않는다. 핫산은 구석에 앉아 민아만 바라본다. 그러다 막상 민아가 그쪽을 보면, 핫산은 고개를 돌린다. 

  “게스트하우스를 옮겨야 해.”

  샴스가 막걸리를 마시며 말한다. 게스트하우스의 부지는 전남편의 것인데, 전남편이 땅을 일 년 안에 돌려달라고 했다. 

  “그러면 여기는요?”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게스트가 놀라워한다. 그는 타인의 불행에 쉽게 감응할 정도로 어리다. 민아는 그렇지 않다. 누구나 각자의 불행을 견디며 산다고 생각한다. 

  “다시 시작해야지.”   

  샴스는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그러나 낮게 매달린 전등갓 너머로 샴스는 그림자에 삼켜버린 사람처럼 어둡다. 민아는 카페를 둘러본다. 카페 곳곳에 달려있는 버드나무 가지로 만든 드림 캐처, 삐그덕거리는 삼나무 탁자, 레이스로 짠 테이블보… 어디 하나 샴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민아가 막걸리를 몇 잔 더 마시고 카페 밖에 있는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핫산이 야자수 아래서 기다리고 있다. 

  “정말 내일 떠날 거야?”

  핫산은 화난 듯이 말한다. 야자수 위로 초승달이 떠있다. 모서리가 날카로운 달이다. 

  “그래.” 

  민아는 눈을 내리깐다. 파란 슬리퍼를 신은 핫산의 발등은 검고 구불구불한 털로 덮여 있다. 핫산이 말한다. 

  “돈을 많이 모으면, 너에게 연락할게.”

  민아는 아찔하다. 달의 모서리에 어딘가가 베인 것처럼. 손가락이나 심장이.  

  “왜?”

  “부자가 되면, 너에게 연락하겠다고.”

  핫산은 뒤돌아 어둠 속으로 걸어간다. 핫산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민아는 모르는 척 묻고 싶다. 그러나 핫산은 돌아오지 않는다. 다음 날 아침 모하메드와 오마르가 민아와 작별 인사를 할 때도 핫산은 보이지 않는다. 


  샴스가 전화로 난민 신청 결과를 알려준 건 반년 후다. 셋 모두 난민 인정이 되지 않았다. 핫산과 오마르에게는 인도적 체류가 허용되었고, 모하메드에겐 추방 명령이 떨어졌다. 모하메드는 한국을 떠날 준비를 하는 중이고, 핫산과 오마르는 육지로 넘어가 공장에서 낮은 임금을 받으며 험한 일을 한다. 왜 모하메드만 추방되냐고 민아가 묻자 샴스는 모른다고 한다. 누가 떠나고 누가 남는지, 그 기준은 아무도 모른다. 

  샴스는 자신의 어머니가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인다고, 그래도 해설사 일은 계속한다는 말도 한다. 

 “사람들에게 사삼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아빠가 장날에 강아지를 사왔다든가, 목말을 태우고 바닷가에 간 얘기를 해.” 

  샴스는 웃으며 말을 잇는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자상한 사람이 아니었어. 오히려 한밤중에 어린 딸에게 불빛 하나 없는 길을 몇 키로나 걸어서 담배를 사오게 하는 무심한 분이었지. 엄마는 어둠 속에서 도깨비불을 보고 오줌을 지린 적도 있다고 원망했어. 이제 엄마가 기억 속에서조차 길을 잃었구나 싶어.” 

  민아도 자기 얘기를 한다. 구청에서 하는 인디언 피리 교습을 받고 있다고, 멀고 깊은 곳에서 울리는 소리가 듣기 좋다고, 함께 교습을 받는 남자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고. 일은 여전히 힘드냐는 샴스의 물음에 민아는 콜센터 교육 강사가 되었다고 대답한다. “더는 직접 고객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지만, 새로 콜센터 직원이 된 사람들에게 견디는 법을 알려줘야 해요. 그건 그거대로 힘든 일이에요.”     

  핫산에게 전화가 온 건 그보다 한참 후의 일이다. 민아가 인디언 피리 수업을 함께 받던 남자와 만났다가 헤어졌을 정도로 한참. 더는 예멘인들이 티브이나 온라인 신문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한참.

  “돈을 많이 모았어.”

  핫산은 인사나 안부 없이 그 말부터 한다. 민아도 잘 지내냐든가 일하는 곳은 어떠냐는 말은 하지 않는다.    

  “잘됐네.”

  민아가 말한다. 약간 심드렁하게. 핫산이 오래 쌓아올린 마음이 단번에 휘청거릴 정도로 약간. 

  “오마르의 개가 죽었어.”

  핫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민아는 그 떨림이 가라앉기를 기다린다.  

  “핫산… 나는 몰라.”

  민아가 말한다. 핫산이 아니라 허공에 대고 말하는 사람처럼.  

  “길을 잃은 사람이 또 다른 길 잃은 사람을 만나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핫산은 침묵한다. 민아는 침묵을 듣는다. 전화기 너머로 맹금류로 보이는 새가 멈춘 듯이 높은 하늘을 날고 있다. 민아는 입 안이 시큼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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