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인연은 좋은 장소에서 만들어진다.

by 백소영

좋은 인연은 좋은 장소에서 만들어진다.

오늘도 낙동강과 다대포, 승학산을 비추는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천, 지, 인. 하늘과 땅과 사람. 시간, 공간, 인간. 이 세 간으로 세상은 만나고 이루어진다. 내가 나를 선택하여 태어날 수 없고, 하늘의 시간도 인간은 선택할 수 없다. 늘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산다. 그러나 그 중 단 한 가지, 공간만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공간이다. 어디서 살 건인지 말이다.

노을이 가장 아름다운 사하구의 하단동, 이곳이 내가 사는 곳이다. 내가 선택한 곳이자, 어린 시절의 기억과 추억이 곳곳에 선명히 남아있는 곳이다. 여고를 졸업할 즈음 가정형편이 어려워 친정아버지의 권유로 여군에 원치 않는 자원입대를 하였다. 병무청에 가서 신청하고 시험을 보고 친구들은 대학 갈 때 나는 군대에 갔다. 그렇게 사하구를 떠나며 나의 눈물 몇 방울을 낙동강에 흘렸다. 삶은 유구한 강처럼 굽이굽이 휘감아 돌며 행복과 불행이 늘 세트 메뉴처럼 다가왔다. 전역과 함께, 대전에서 야간 대학을 다니며 공무원 생활을 하였고 이후 결혼과 출산, 육아로 바쁜 시기를 보냈다. 그럴 때마다 바다 내음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다시 또 위기가 닥쳤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했던가. 남편의 사업을 정리하며 이사를 해야 했다. 나는 내 고향 부산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친정엄마의 곁인 하단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처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라는 마음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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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나는 아이들을 키우며 할 수 있는 독서공부방을 열었고, 삼 개월 만에 스무 명이 넘는 학생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기쁨이 이런 거구나 느끼는 순간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수원에서도 하던 독서회를 ‘하단어머니독서회’라는 이름으로 더 시작하였다. 독서회 이름은 ‘책 읽는 엄마가 행복한 아이를 키운다.’는 평소의 나의 소신에 의한 것이다.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을숙도 나무 심기 행사’에 독서회원들과 참여해 독서회 나무를 심고 오던 날, ‘을숙도에서 어린이날 어린이 한마당 축제’에 참여해 독서회가 읽었던 책을 소개하고 함께 책을 읽었던 일들, 곳곳에 우리의 발자국이 새겨져 있다. 아마도 을숙도의 철새들도 우리의 책 읽는 소리를 들었으리라. 그렇게 좋은 곳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의 추억은 붉은 노을처럼 더 짙어졌다.

사하구자원봉사센터의 작은도서관에 자원 봉사자를 구한다는 소식을 접하며 독서회원들은 봉사를 시작하였다. 이후 하단2동에 있는 문고를 지역주민들의 힘으로 작은도서관으로 만든다고 독서회장인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동장님 외 많은 지역주민들의 기부와 봉사로 이루어진 ‘노을나루길 작은도서관’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도서관이 개관하고 ‘나눔독서회’가 만들어졌다. 나눔독서회는 지역주민들의 참여로 북 아카데미, 낭독회, 북 콘서트 등 많은 행사가 이루어졌다. 또 좋은 인연들로 좋은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참, 우리 지역민들이 정한 도서관 이름, ‘노을나루길 작은도서관’이 얼마나 우리 동네에 맞는 이름인가. 낭독회를 할 때면 자작시도 낭독하는데 정말 내가 사는 곳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들로 모인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데우기도 했다.


행사를 진행하며 다른 지역의 지인들이 올 때면 사하구는 을숙도, 낙동강, 승학산, 다대포, 산과 강과 바다를 다 가진 자, 다 누리는 자의 배포로 침 튀기며 소개했다. 특히 ‘수원 세류3동 어머니독서회’와 ‘하단어머니독서회’의 만남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살아온 곳과 사는 곳의 독서회원들 만남을 주선하고 사하구의 곳곳을 누비며 좋은 시간에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의 교류는 천지인의 합체였다. 태양이 하루를 잘 지내고 바다와 조우하는 순간처럼 말이다. 유년의 시간이 지금을 만나고, 행복이 불행을 만나 하나가 되듯이 나는 이 순간 이 곳에서 나를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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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을 잘 선택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시간에 왜 지금은 아침이 아니고 저녁이냐고 말해봤자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또 왜 나는 네가 아니고 나냐고 물어도 누구도 듣지 않는다. 내가 사는 곳, 내가 선택한 곳에서 내 발로 딛고 일어선다. 삶이 녹록하지 않아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여러 일을 거치면서도 마음은 늘 고향을 향해 있었다. 이것은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나만의 은신처가 있어 나를 달래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 사람은 승학산에서 지는 노을을 바라보시라. 내일 나는 다시 일어서리라는 마음이 들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즐거운 일이 있다면 강변대로를 걸으며 다대포의 분수대로 향해보라. 솟구치는 분수처럼 드넓은 하늘을 향해 기쁨이 샘솟으리라. 내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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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가꾸는 것은 인간의 시간이다. 그 시간에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천양지차다. 누군가에게는 관광지이지만 그 땅에 몸담고 사는 사람은 자연과 하나가 된다. ‘노을나루길 작은도서관’에서 독서회장으로 책과 지역주민을 만나는 그 시간은 슬픔이 녹아내리지 않은 때가 없었고, 기쁨은 배가 되었다. 부모님은 나를 낳았고, 땅은 나를 길렀고, 그 곳에서 인생을 배우고 사람을 만난다.

자, 이제 노을나루길 작은도서관에서 나와 노을정에서 지는 노을을 바라보자. 헛헛한 마음은 가라앉고 하늘의 시간과 땅의 기운, 그리고 사람의 온기까지 가득하여 그 향기가 멀리멀리 퍼져나가리라. 좋은 곳엔 좋은 사람들이 있다. 좋은 사람으로 좋은 인생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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