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네버더레스 May 16. 2024

바람대로 살아보는 것


제주에 가고 싶어 제주에 왔습니다.

마음먹으면 그곳에 갈 수 있는 생활을 한 지 한 달이 넘은 지금 이제 조금씩 마음먹은 곳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 하나둘씩 알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두려움과 외로움이 먼저 엄습해 왔지만 이제는 술을 한 잔 안 하더라도 즐겁게 여행의 저녁을 보내는 법 정도는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행이 주는 놀라움에 감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마음먹은 곳에 가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여러 일들을 뒤로 잠시 미뤄두고 갈 정도로 그 여행이 의미가 있고 끌리는 게 중요하죠.


연애를 할 때면 좋아하는 이성을 위해 비바람이 몰아쳐도 마음을 사기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그 여행이 강한 바람처럼 마음을 흔들고 있냐가 중요합니다.

그걸 느끼는 감정이 개인마다 다르다 보니 누군가는 홀연히 떠날 수 있는 것이고 누구는 그렇지 못하는 것이겠죠. 


전 철저하게 그러지 못한 사람입니다. ENTJ 특유의 계획성과 준비성 덕분에 준비가 되지 않으면 계획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았죠.

항상 여행을 갈 때면 변수에 대비해 잔뜩 짐을 가져가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집에 수년 쨰 방치해 둔 튜브까지 챙겨갔으니 말이죠. 결국 튜브는 불지도 못하고 왔습니다. 발에 물을 담그지도 않았거든요.

여전히 튜브는 잡동사니 안에 들어있을 겁니다. 


몇 번이고 이러다 보니 이제는 티 한두 장에 바지 한두 개 정도면 일주일은 거뜬히 날 수 있게 됐습니다. 

마음속 바람이 강하게 불어 제주에 왔고 무작정 오니 노트북만 있으면 걱정할 것도 당장 급할 것도 없습니다. 

'급하면 다시 되돌아가죠 뭐...'

제주는 어차피 이곳에 있을 거고 모든 여행지는 그냥 그대로 거기에 있을 테니까 말이죠.

꼭 오늘이어야 하는 건 아니기도 하고요. 


인생도 점점 급하게 목적지에 도달해야 한다는 의지 안에 살았다면 

꼭 지금이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그 목적지는 언제나 거기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으니까요. 

빨리 가도 어차피 그곳이고 늦게 가도 어차피 그곳이죠.

빨리 올라가면 금방 내려오게 되겠지만 늦게 올라가면 조금이라도 더 목적지에 머물기도 하니까요.

주변도 한번 더 둘러보고 말이죠.


똑같은 성산일출봉이었지만 또 다양한 면의 성산을 보고 갑니다. 그때는 걷지 못했던 길을 걷고 어두운 밤길 새벽 3시 같지만 사실은 밤 9시였던 읍내를 돌며 보이지 않는 바다와 거대하던 성산이 잠든 모습을 어렴풋하게 보며 다른 면의 공허함을 느끼고 경외합니다. 


바람대로 살고, 하고 싶은 여행을 원할 때 가는 것이 행복한 인생인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것을 알기에 시간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단지 이러한 자유의 시간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못한다는 것은 조금 아쉽네요.

지나가다 다른 사람들에게 사진을 한 장 부탁해야겠습니다.

바람대로 살아가는 길에 사진 한 장도 나쁘지 않네요. 

어차피 사진에 바람은 잡히지 않을 테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여행의 첫 저녁식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