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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망 May 19. 2020

나의 코로나블루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한 나름대로의 블루가 있다. 나는 일단 학생이기 때문에, 집에 콕 박혀서 사이버강의를 듣고 있다. 문제는 일주일 단위로 공지가 바뀐다는 점이다. 3월과 4월은 집에서 2주마다 학교 갈 가방을 쌌다가 풀어놓는 걸 반복하는 과정이었다. 이런 일을 반복하다 보니 왠지 모르게 무기력해졌다. ‘인간 따위가 학교가려고 노력하면 뭐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할까.     

  

매뉴얼이 소용없는 세상에서 학교는 갈팡질팡하고 있다. 간호학과 특성상 실습도 해야하고, 학생들 머리에 지식을 좀 더 구겨넣어야 나중에 국시를 칠텐데 '정말 사이버강의로 학생들이 공부를 할까?'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등록금을 돌려주기 싫은 마음도 있을 테다. 그리하여 코로나가 괜찮아진다 싶으면 '일주일 뒤 학교에 나오세요'라는 공지가 온다. 솔직히 공부하기 싫은 학생들은 에브리타임으로 반발하고, 그때쯤 코로나바이러스가 알 수 없게 움직인다. '모두 다 취소'라는 공지가 내려온다. 이런 일이 3월부터 5월까지 다섯번이 있었다. 갈팡질팡하는 학교 때문에 '대기조'가 됐다. 언제 학교를 갈지 몰라서 집에 박혀있는 생활이 이어졌다.     


나는 3년째 봉사로 문화해설사를 하고 있다. 문화해설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충분히 비말을 퍼뜨릴 수 있는 위험을 가진 일이다. 코로나 시대에 사람들은 바깥보다는 집에 있어야하고, 사람 많은 관광지보다는 한적한 자연에 있어야한다. 그래서 관광지에서 사람들을 데리고다니며 비말을 튀기는 문화해설사는 모두 정지됐다. 그리하여 나의 소소한 봉사 겸 최저임금이 안되는 경제활동은 멈춰졌다.      


대학생 때만 갈 수 있는 한 달 장기여행은 오랜 버킷리스트였다. 한 달 여행할 돈을 모으기 위해, 2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돈을 모아왔다. 이제 여행 다니려던 차에 코로나를 만났다. 올해는 물론이고, 내년까지 여행이 힘들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년이면 졸업학년이라 병원으로 일하러 떠나는 30대의 나는 왠지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앞으로 장기여행은 60살 퇴직하고서야 갈 수 있지않을까    

 

5월 황금연휴의 집단감염은 모두가 예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코로나와 함께하는 일상을 그리고 있었지 않나. 그래서 이태원 집단감염이 일어났을 때, 마녀사냥식의 여론이 일어난 걸 보고 무서웠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니까 신속하게 대책을 세워, 해결해나가는 데 관심이 집중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데이터베이스가 될 줄 알았는데, 감염자에 대한 지나치게 자세한 동선공개와 욕설이 이어졌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쉽게 화를 내고, 남 탓을 한다.


보건인력들의 감염 소식까지 잇따르면서, 간호대생으로서 감염자가 되면 겪는 일들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일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고, 병원에서 돌봐야 할 환자들을 생각하며 항상 조심하는 삶. 예전에 한 교수님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간호사는 경건하게 살아야한다. 술도 마시면 안 되고, 유흥도 즐기면 안 되고, 항상 행동을 조심해야한다' 이 말을 들으면서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맞는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남은 건 무기력 뿐이었다. 2020년을 장식할 새로운 계획이 필요한데, 그저 무기력했다. 계획을 세우면 뭐하나. 난 거대한 우주의 작은 먼지 같은 인간이라 계획은 무의미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건 마치 더 이상 삶에서 주도적일 수 없는 느낌이었다. 지구 종말이 오는 날, 어떤 사람은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했다. 더 이상 주도적일 수 없는 삶에서 나는 작은 일상에 집중하기로 했다. 미래보다는 현재에 집중하는 삶이다. 오늘 내게 주어진 인강과 과제를 하고, 상쾌한 기분을 위한 운동을 하는 일.     


마스크 트러블에 대비해 마스크팩을 사고, 단기간의 미래를 위한 돈을 저축하고, 혹시 모를 여행 행운에 대비해 영어 공부를 하는 작은 일이다. 이제 우리는 무시무시한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야한다. 작은 일상을 지키는 법에 대해 고민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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