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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망 Oct 02. 2016

서울의 내 방

#제시어는 #지도 #할지도 #선발될지도 #미친라임

내 방에는 키티가 그려진 이불이 있다. 촌스러운 분홍색에 도저히 포근함이 연상되지 않을 만큼 낡았다. 키티 이불을 사랑하는 이유는 ‘안정감’ 때문이다. 키티 이불과 함께 서울에 왔고, 6개월마다 이사를 다녔다. 6개월마다 바뀌는 환경 속에서 안 바뀌는 건 키티 이불뿐이었다. 어떤 공간에서 잤고, 누구와 함께였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가 적혀있는 지도.      



서울에서 얻은 첫번째 공간은 기숙사였다. 네 명이 함께 살았고, 하나의 화장실을 함께 썼다. 안전하고 저렴한 데다 학교와 가까웠다. 한 학기에 60만원. 보증금은 없었다. 단, 상위권 성적을 유지해야 했다. 문제도 일으키면 안 된다. 통금시간을 잘 지켜서 그런지 4년 동안 살 수 있었다. 국문과였기 때문에 수능공부와 다른 채점방식도 도움이 됐다. 서울에서는 잠을 자려면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선발될‘지도’ 몰라 2년 동안 꾸준히 LH 주택 청약을 넣었다. 노인·다자녀 중산층·신혼부부들과 임대주택을 두고 경쟁해야 했는데, 수많은 선발 기준 중에 소득만 경쟁력 있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말 기준 에스에이치공사가 보유한 공공임대, 국민임대, 장기 전세, 희망하우징 등 12개 유형의 공공 임대주택 입주자 세대주 16만 1363명 중에 20대는 2790명(1.7%)이다. 2년 동안 저축된 돈은 50만원. 1% 안에 들려고 돈을 넣어놓고 기다리느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DSLR카메라를 샀다.      



주택 청약을 카메라와 바꿔먹고 비슷한 정책들을 찾아봤다. 행복 주택, 청년 전세임대주택, 역세권 2030청년 주택, 셰어하우스 형태의 사회적 주택에 대한 정책들이 넘쳐났다. 국토부, 서울시, LH까지 청년을 위한 주거정책을 만들겠다며 서로 정책을 만들었다. 하지만 도움받으려고 찾아보면 실체가 없다. 선발 기준이 까다로운 건 그렇다고 쳐도, 공급 물량 자체가 턱없이 부족했다. 신청방법을 찾으면서 가장 많이 본 문구가 ‘시범과 예정’이었다. 이런 게 보여주기식 행정일까? 운 좋은 확률로 선발됐다고 해도 감당할 수 없는 보증금이 필요했다. 2030을 위한 주택인데 보증금을 이렇게 비싸게 해놓다니...정책을 만드신 분들은 분명 자취 안 해봤을 거다. 이래서 주거정책이 뒤틀렸는‘지도’      



결국 졸업하자마자 월세방을 얻었다. 보증금 500에 월세 45. 어떤 청년주거정책보다 도움 됐던 것은 <피터팬의 방 구하기>라는 커뮤니티였다. 직거래로 인해 방을 싸게 구할 수 있었고, 복비도 아낄 수 있었다. 정부가 6월 28일 발표한 '2016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청년 임대 리츠가 있다. 기존에 계획했던 신혼부부 매입 임대 리츠 가운데 일부를 청년 리츠 시범사업으로 운영해 청년층에게 저렴한 임대주택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이번에는 물량이 많을까? 터무니없는 보증금은 아닐까? 월세방을 얻었지만 1~2년 뒤에는 분명 이사를 갈 것이다. 그 때는 정부의 청년 임대 정책의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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