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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망 Oct 04. 2016

단편이 아닌 장편 시스템

국민, 기초단체, 광역단체, 국가가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새 조직만 만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조직 신드롬’이라는 용어가 있다. 세월호 참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국가 재난대응 시스템의 허점이 드러났고, 국민안전처가 만들어졌다. 부처 간 협력을 유기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컨트롤타워를 기대했다. 하지만 역대 규모의 경주 지진에서 국민안전처는 두 번이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지 못했다.


혹시 ‘조직 신드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국민안전처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첫째, 지진 방재과에 지진 전문가라 불릴 만한 직원이 1명이라 전문성이 떨어진다. 일본 방재과에 지진 전문가만 300명이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둘째, 국민안전처는 직원 만명이 근무하는 예산 3조원의 거대 기관이지만 세부적인 매뉴얼이 짜여 있지 않다.


기본 지침이 되는 위기관리 표준매뉴얼도, 지진, 화산은 안전처가, 다른 재해는 각 부처에서 만드는 등 통일되어있지 않다.


국민안전처의 빈틈은 시민들이 채웠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지진 발생 제보글이 뜨면 이를 자동으로 알려주는 ‘지진희 알림’을 만들어냈다. 이 알림 서비스는 21일 경주에서 규모 3.5의 여진이 발생했을 때 기상청 트위터나 국민안전처 재난 문자보다 3~10분 먼저 알려줬다.


 일본의 상황별 지진대피메뉴얼을 SNS를 통해 서로 공유하고, 옆집 문을 두드려서 함께 대피소라 생각되는 곳으로 이동했다. 비상물품이 들어있는 생존배낭을 꾸려서 현관에 놓고 대피 준비를 하기도 했다. 국가 재난시스템이 제 역할을 못하자 시민들이 나선 것이다.


일본에는 자조(自助) 공조(共助) 공조(公助)라는 3조가 있다. 자조는 본인과 가족의 안전은 본인이 지키는 것, 공조(共助)는 지역사회는 주민이 협력해 지키는 것, 공조(公助)는 자위대, 소방서, 경찰 등이 구조하는 걸 말한다. 64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1995년의 한신·아와지 대지진의 경우 매몰되거나 갇혀 있던 사람 중 90% 이상은 본인, 가족, 친구, 이웃 등이 구출했고, 구조대가 구출한 사람은 1.7%에 불과하다는 조사도 있다. 이는 재난상황에서 본인과 이웃을 지키는 것에 대한 철저한 교육과 훈련의 결과였다.

방재선진국 일본의 경험은 잘 짜여진 국민-기초단체-광역단체-국가 재난시스템의 효과를 보여준다.


국민, 기초단체, 광역단체, 국가가 역할을 분담해서 재난에 대비해야 한다. 우선 학교-지역사회-기초행정기관을 기본으로 재난 교육과 자치소방대를 만들어야 한다. 부산시는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지진 전문가를 채용한다고 밝혔다. 지진전문가는 부산지역 지진 연구부터 방제교육 훈련 강화 등의 업무를 담당할 예정이다. 국가는 이들의 중앙에서 컨트롤타워와 재난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역할을 맡아줘야 한다. 이 역할을 국민안전처가 하지 못했지만, 또 다시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도 해결될 일은 없다. 국민안전처가 컨트롤타워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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