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차는 어떻게 동남아를 지배하게 되었는가?

-ASEAN 통합정책과 일본차의 구조적 우위

by Yan

동남아시아를 여행하거나 출장 다녀온 이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인상이 있다. "도시엔 일본차가 점령한 것 같다." 이 말은 단순한 체감이 아니라 실제 수치로도 입증된다. 2023년 기준, 태국·인도네시아·필리핀 등 주요 ASEAN 시장에서 일본차의 점유율은 70~90%에 달한다.

하지만 단순히 품질이 좋아서라기보다, 일본차의 성공은 보다 구조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의 결과였다. 그리고 최근 이 구조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본차의 조기 진출과 현지화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은 엔고의 압박 속에 생산기지를 해외로 분산하는 전략을 택했다. 그중 하나가 동남아였다. Toyota, Honda, Mitsubishi 등은 태국·인도네시아에 일찍이 조립공장을 세우고, 생산과 유통의 현지화를 이뤘다. 특히 연비가 좋고 고장이 적은 일본차는 동남아의 열악한 도로와 정비 인프라에 잘 맞았다.


ASEAN 통합과 일본의 '제도 활용력'

AICO 제도 (ASEAN Industrial Cooperation, 1996)

AICO는 ASEAN 역내 부품 조달 시 0~5%의 낮은 관세 혜택을 제공한 제도다. 일본차 메이커들은 이를 십분 활용해, 엔진은 태국, 변속기는 필리핀, 조립은 인도네시아처럼 국가 간 분업형 공급망을 구축했다. 이는 부품 조달비용을 낮추고, ASEAN 전역을 단일 생산기지처럼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AFTA (ASEAN Free Trade Area)

2003년부터는 완성차에도 역내 관세가 철폐되었다. 일본은 이를 기회 삼아 동남아를 '내수시장처럼' 운영하며 점유율을 공고히 했다.


동남아 주요국 일본차 점유율 (2023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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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SEAN Automotive Federation 2023 연례 보고서/ MarkLines Auto Intelligence (2023년 시장 점유율 기준)/ Vietnam Automobile Manufacturers’ Association (VAMA), 2023


균열의 조짐: ‘현대차’의 약진

특히 베트남 시장에서의 변화는 눈여겨볼 만하다. 2017년 현대차는 Thanh Cong 그룹과 합작해 현지 조립공장을 설립했고, 2020년 이후 현대 Accent, Santa Fe, Creta 등의 모델이 중산층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었다. 2023년 현대차의 베트남 점유율은 약 21~23%로, Toyota에 이어 2위다. 이는 동남아 전체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일본차의 장벽을 넘은 사례다.

또한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서도 전기차(EV) 부문에서는 현대 아이오닉5, 코나 등이 시장을 선도하며, 일본 브랜드들이 미온적인 전기차 전략을 펼치는 사이 포지셔닝 선점에 나서고 있다.


동남아의 자동차 시장은 일본차의 과점 상태지만, 이는 단순히 브랜드 선호를 넘어선 구조적 우위에 기반하고 있다. AICO와 AFTA는 일본차의 '동남아 내부화 전략'에 날개를 달아준 제도였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있다. 전기차 시대의 도래, 현지 브랜드(VinFast 등)의 부상, 한국차의 약진은 이 고착화된 구도에 변화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향후 10년, 동남아 시장은 여전히 일본차의 전략적 요충지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절대 강자'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존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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