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이 무너졌다. 그러나 패배한 건 남베트남만이 아니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이, 전 세계 언론 앞에서 헬리콥터로 대사관 직원들을 탈출시키는 장면은 한 시대의 종말을 보여주는 아이콘이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충격 속에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베트남이 미국을 이긴 거지?”
그로부터 4년 뒤인 1979년, 북쪽 국경에서는 또 다른 침공이 벌어졌다. 이번엔 중국이었다. 공산주의 형제국인 두 나라가 총을 겨눈 것도 놀라웠지만, 이 전쟁의 결말은 또 한 번 세계를 당혹스럽게 했다. 그 작은 나라 베트남이, 중국마저 되돌려보낸 것이다.
“미국은 왜 베트남에 그토록 집착했을까?”
이야기는 1954년 프랑스군의 디엔비엔푸 전투 패배에서 시작된다. 베트남의 민족주의 세력은 오랜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려 했고, 미국은 그 빈자리를 공산주의가 채울까 봐 두려워했다.
미국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도미노 이론’을 들고 나왔다. “베트남이 공산화되면,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심지어 인도네시아까지 무너질 수 있다.” 그렇게 미국은 프랑스를 대신해 남베트남 정부를 후원하며 점점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처음엔 고문단, 그다음은 폭격기, 마지막에는 지상군까지. 1965년부터는 본격적인 미군 파병이 시작됐다.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시작한 자들”
베트남 전쟁의 전환점 중 하나는 1968년, 구정(뗏) 명절에 터진 테트 공세였다. 당시 북베트남과 베트콩은 100개 도시를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했다. 군사적 성과는 크지 않았지만, 미국 국민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텔레비전은 매일 베트남 전장의 시체를 보여줬고, 켄트 주에서는 반전 시위에 군이 발포해 학생이 사망하는 일도 벌어졌다. 전쟁은 점점 미 국민의 신뢰를 잃어갔다.
전쟁은 지리한 소모전으로 바뀌었고, 미국은 베트남을 "베트남화(Vietnamization)"하기로 결정했다. 닉슨 행정부는 미군을 철수시키는 대신 남베트남군이 전쟁을 대신하도록 했다. 그러나 병력은 많았지만 사기와 훈련, 국민의 신뢰를 잃은 군대로는 북베트남을 막을 수 없었다.
보 응우옌 지압 장군 – 두 제국을 무너뜨린 사나이
이 전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보 응우옌 지압(Vo Nguyen Giap) 장군이다. 그는 원래 역사 교사였다. 그러나 프랑스를 무찌르고, 이어 미국마저 굴복시킨 베트남의 전략 영웅이 된다. “전쟁은 숫자로 이기는 게 아니다. 의지와 지형, 그리고 인민이 함께할 때 비로소 승리할 수 있다”고 그는 믿었다.
지압은 정글 속 터널을 뚫고, 병사들을 소금과 고구마로 버티게 했다. 미국의 B-52가 아무리 하늘을 뒤덮어도, 그는 시간을 기다렸고 땅속에서 살아남았다.
사이공의 마지막 날, 그리고 미국의 교훈
1973년 파리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되자 미국은 전쟁에서 손을 뗐다. 그러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1975년 4월, 북베트남군이 남하하며 사이공을 포위했다. 미국 대사관 옥상에는 마지막 헬기가 떠오르고, 수백 명이 울부짖으며 매달렸다. 이것은 군사적 패배가 아니라, 정치적·문화적 패배였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도망치듯 철수했고, 냉전의 균열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4년 뒤, 또 하나의 침공이 시작된다
사람들은 몰랐다. 베트남은 전쟁에서 막 해방된 게 아니라,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북쪽에서, 중국의 침공이 시작된 것이다.
이유는 복잡했다. 베트남이 캄보디아에 들어가 폴 포트의 크메르 루주 정권을 몰아내자, 이를 지원하던 중국이 분노한 것이다. “베트남을 벌줘야 한다.” 등 떠밀리듯 중국군 20만 명이 국경을 넘었다. 랑선, 라오까이 등 북부 산악지대는 다시 총성이 울렸다.
지형을 이기는 병사는 없다
하지만 중국은 전장을 잘못 골랐다. 베트남 북부는 험준한 산악지대였다. 베트남군은 이 지역을 오랜 전쟁 동안 방어 훈련장처럼 만들어놨고,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군수 지원을 했다. 심지어 많은 병사는 미국과의 전쟁을 끝낸 직후 바로 복무를 이어갔다.
베트남군은 시가전을 유도하고, 중국군의 보급선을 교란했다. 중국은 2주도 채 지나지 않아 큰 피해를 입고 “징벌은 끝났다”며 스스로 철수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전략적으론 베트남의 완승이었다.
두 전쟁이 남긴 것
이 두 전쟁은 크고 작은 국가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 무기와 병력만으로 이길 수는 없다.
전쟁은 의지의 싸움이기도 하다. 베트남은 프랑스, 일본, 미국, 중국 등 모든 외세에 맞서 싸우며,
‘국가의 독립은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 미디어는 전장의 또 다른 무기다.
미국 언론이 생생하게 전쟁을 보도하면서 국민 여론이 바뀌었다. 베트남이 직접 전쟁에서 이기기보다,
미국을 내부로부터 무너지게 한 전술적 승리였다.
- 지리와 역사적 기억은 강력한 방패다.
베트남은 산악, 정글, 터널을 무기로 활용했으며, “1000년 중국, 80년 프랑스, 10년 미국”의 기억은
국민 모두를 군인으로 만들었다.
작은 나라,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나라
베트남은 전쟁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나라 중 하나다. 그러나 동시에, 자존을 지켜낸 나라이기도 하다. 두 제국을 상대로 싸우고 이긴 이 작고 가난한 나라는, 전쟁 그 자체보다는 전쟁을 바라보는 태도로 세계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전쟁은 총이 아니라, 기억으로 싸운다.”
이 말만큼 베트남을 잘 설명해주는 말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