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줄을 못 잡았나

by Yan

회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누구나 ‘줄’이라는 단어에 자연스레 익숙해진다.
조직 안의 힘 있는 사람, 영향력 있는 상사 곁에 붙어 신뢰를 얻고,
그 사람의 지시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충성을 다한다.
그런 사람은 결국 좋은 자리로 간다. 줄을 잘 탄 것이다.

줄은 단순한 인간관계가 아니다.
그건 곧 기회를 의미하고, 때로는 권한을 의미하며,
조직 내 안목 없는 평판마저 보완해주는 보이지 않는 배경이다.

누구나 줄 하나쯤은 기대지만,
나는 끝내 그 줄을 잡지 못했다.
줄이 먼저 나를 찾는 경우도 드물었고,
내가 적극적으로 줄을 타기엔 조건도, 성향도 맞지 않았다.


구조적 이유 – 조건이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대기업 중심의 산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서울대도, 해외 유학파도 아니었다.
인사팀이나 전략기획처럼 권력의 흐름과 가까운 조직도 아니었다.
나는 늘 ‘현장’에 가까운 자리에서, 수출입, 소싱, 영업을 다뤘다.
업무는 복잡했고 중요했지만, 사내 정치나 권력 게임에서는 멀리 떨어진 자리였다.

본사의 힘 있는 임원들과 자주 마주칠 기회도 없었고,
조직 안에서 눈도장을 받을 상황도 적었다.
말하자면, ‘줄이 나를 선택할 이유’가 희박했다.
줄은 흔히 말하는 ‘라인’이 있는 사람들을 향해 내려오지,
현장의 고생을 알아보는 데 쓰이지는 않는다.


성향의 문제

그렇다고 내가 줄을 잡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나는 아부를 잘 못했다.
누구에게 해바라기처럼 기대고, 그의 의중에 따라 내 언행을 바꾸는 게
성격적으로 맞지 않았다.

나는 나의 할 일을 묵묵히 하고,
실적으로 평가받기를 바랐다.
윗사람보다 고객을 먼저 생각했고,
눈앞의 상사보다 긴 호흡으로 내 일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자세는 때론 ‘무심함’으로, ‘까탈스러움’으로 비쳤고,
자연스레 줄에서 멀어지는 사람이 되었다.


줄을 잡지 못한 대가는 혹독했다

그 대가는 생각보다 컸다.
동기 중엔 나보다 실력도 부족하고 경력도 짧은 사람이
나보다 먼저 진급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내 상사가 되는 순간도 있었다.
그때 느꼈다. 회사는 실력으로만 굴러가지 않는다는 걸.

나는 늘 기대보다 늦게 진급했고,
회의석상에선 내 의견보다 ‘줄 있는 사람’의 말이 우선됐다.


어제 인사발령을 보고 나는 다시 한 번 놀랐다

일을 아무리 잘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결국 인간이 인간을 보고 평가하는 사회라는 것을.

일의 결과보다도,
누구와 어울리며 어떤 인상을 주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또다시 뼈저리게 느낀다.

그것이 이 사회의 이치인 것을
왜 깨달고 깨닫는다.
깨달으나 실행이 아니되니 나는 참, 어리석고 또 어리석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나의 인식이 잘못된 걸까.
나는 늘 ‘묵묵히 일만 잘하면 된다’고 믿어왔다.
줄을 잡지 않고,
아부하지 않고,
내 길만 성실히 걸으면 언젠가는 빛을 볼 거라 생각했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아니야, 그런 사람이 있기에 세상이 버텨가는 거야."
"당신 같은 사람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어."

하지만 오늘,
그 말이 왜 이리 공허하게 느껴지는 걸까.

무엇이 정답일까.
나는 이제,
내게는 더 이상의 가능성이 없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럼 나는,
내 자녀에게 무엇이라 조언해야 할까.

그저,
"행복하게만 살아라"
이 말밖에 할 수 없는 걸까?


깨달음은 실천도 포함한다 했는데,
나의 깨달음은 아직도 모자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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