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나는 그리 우수한 학생은 아니었다. 서울 명문대는 커녕, 지방의 평범한 대학을 다녔다. 남들처럼 유학이나 대외활동으로 스펙을 쌓은 것도 아니었다. 취업 후에도 한 회사에 뿌리내리진 못했고, 몇 번의 이직 끝에 다행히 대기업에 안착했다. 그나마 ‘다행히’라고 말할 수 있어 다행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누구와 비교를 하느냐에 따라 나는 언제나 부족하고 늦된 사람일지도 모른다. 친구들 중에는 일찌감치 의대에 진학해 개업한 이도 있고, 유학 후 교수로 자리 잡은 이도 있다. SNS를 켜면 눈부신 해외 생활, 성공적인 창업, 자녀들의 수상 소식이 넘쳐난다. 그런 걸 보다 보면 문득, ‘나는 뭐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교 없는 삶은 가능한가?
‘뒤쳐졌다’는 말에는 항상 기준이 존재한다. 그것은 곧 ‘비교’다. 우리는 남들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살아간다. 키, 외모, 성적, 직장, 연봉, 자녀 성취도까지. 심지어 은퇴 이후의 자산 상태나 여가생활의 질까지도 비교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 기준이라는 것이 과연 고정된 진리인가? 나보다 빠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보다 늦은 사람도 있다. 어떤 시점에서는 내가 뒤쳐졌다고 느껴지지만, 다른 시점에는 내가 앞서 있을 수도 있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이 ‘상대적 위치’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비교 본능’은 어디서 오는가?
한국인은 왜 이렇게 비교에 민감할까. 이 질문은 단순한 심리학적 호기심을 넘어, 한국 사회의 구조와 문화에 깊이 뿌리박힌 문제다.
첫째, 교육 경쟁이 뿌리다. 한국의 입시 제도는 어릴 적부터 상대평가에 기반한다. ‘너 몇 등 했어?’ ‘누가 전교 1등이래’라는 말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일상이다. 이 경쟁은 단지 대학 입시에서 끝나지 않는다. 대학교, 군 복무, 취업, 승진, 심지어 퇴직 이후의 노후까지 ‘경쟁’은 계속된다.
둘째, 공동체 중심 문화의 영향도 크다. 한국은 개인의 독립보다 사회적 관계 속의 위치를 중요시하는 문화다. ‘남들 눈’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하나의 통제 장치가 된다. 가족, 친척, 이웃, 직장 동료 사이에서 ‘어떻게 보이느냐’는 끊임없는 비교와 판단의 틀이 된다.
셋째, 압축 성장의 그늘이다. 불과 반세기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한국은, 빠르게 성공하고 앞서 나가는 사람을 칭송해왔다. 이 서사 속에서 ‘보통’은 쉽게 무가치하게 취급되며, ‘늦음’은 곧 실패로 낙인찍힌다.
상대적 관점, 벗어날 수 있을까?
‘상대적’이라는 말의 아이러니는, 내가 나를 볼 때조차도 타인을 거울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비교가 없으면 뒤쳐졌다는 감각도 없다. 하지만 삶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다. 때로는 쉬어가야 하고, 방향을 바꿔야 할 때도 있다. 더 중요한 건 ‘어디에 있는가’보다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아닐까.
비교하지 않는 삶을 위해,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것들
비교는 피할 수 없는 인간 본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깎아내리고 삶을 흐리게 만든다면, 그 본능에 맞서야 하지 않을까. 완전히 벗어나는 건 어렵더라도, 스스로 훈련하고 습관을 바꿔갈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나만의 기준’을 만드는 연습
다른 사람의 삶은 흥미롭고 때론 자극이 되지만, 그것이 내 삶의 잣대가 되어선 안 된다. 중요한 건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가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무엇에 시간을 쏟을 때 가장 의미를 느끼는가? 그런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내 기준’을 세우는 첫걸음이다.
둘째, ‘속도’보다 ‘방향’에 집중하는 태도
우리는 너무 자주 ‘언제까지 무엇을 이뤄야 한다’는 시간표에 쫓긴다. 하지만 삶의 만족은 때맞춰 목표를 이루는 데서보다, 그 목표가 나에게 맞는 방향이었는지에 달려 있다. 느리게 가더라도 방향이 맞다면 결국엔 도착하게 된다. 남들이 뛰는 속도보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자문해야 한다.
셋째, ‘기록’과 ‘성찰’의 루틴
비교에서 자유로워지는 데는 의외로 사적인 기록이 큰 도움이 된다. 하루의 의미 있는 순간, 나만의 성취를 메모하거나 정리해보는 것. 그게 블로그든, 노트든, 단 몇 줄의 일기든 좋다. 글로 남기고 되돌아보는 습관은 비교보다 성찰을 키워준다. 그것은 나의 시간을 ‘타인의 시간’에서 독립시키는 방식이기도 하다.
넷째, ‘결핍의 감정’과 공존하기
비교의 바탕에는 늘 결핍감이 있다. 나는 부족하다, 나는 늦었다, 나는 실패했다는 감정. 하지만 이 감정은 억지로 없앨 수 없다. 대신 그것을 그냥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도 나를 다독일 수 있어야 한다. 결핍을 인정하되 휘둘리지 않는 태도는, 성숙한 자아의 증거다.
다섯째, ‘함께 성장하는 관계’를 맺기
비교는 대개 경쟁의 관계에서 나온다. 하지만 서로의 삶을 지지하고 함께 성장을 나누는 관계를 맺으면 비교의 감정은 줄어든다. 친구, 가족, 동료, 혹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까지. 함께 살아가는 감각을 느끼면, 비교보다 연결이 중심이 된다.
비교하지 않는 삶을 위해 우리가 어떤 시도를 제안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실천하고, 더 나아가 자신을 바꾸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40대 이후의 삶에서는 이미 굳어진 습관과 성향이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루 10분이라도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 단순한 ‘혼자 있는 시간’이 아니다. 휴대폰도 내려놓고, 주변의 소음과 시선도 거두고,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이건 결코 쉽지 않다. 단 1분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자신과 마주한다는 건 훈련이 필요하다.
무엇을 하느냐고?
내가 오늘 어떤 생각을 했는지, 왜 그런 반응을 했는지, 어떤 감정이 내 안을 스쳤는지를 되짚어보는 일이다. 나의 생각, 나의 감정, 나의 말과 행동을 스스로 돌아보는 것이다. 그렇게 자주 자신을 들여다 보면, 자연스럽게 삶의 격이 올라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비교의 감정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지며, 온전한 ‘나’로 사는 법을 배우게 된다.
잘되지 않지만, 나는 위처럼 하려고 노력한다.
삶은 결국, 남의 것이 아니라 내 삶이 아니겠는가?